[향토문화]'잃어 버린 마을'..화북1동 곤을마을터 말방아
상태바
[향토문화]'잃어 버린 마을'..화북1동 곤을마을터 말방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8.02 19: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방아가 있는 동남쪽 가까운 곳에는 작은 샘도 있고 마을길도 그대로 남아 있다.

화북1동 곤을마을터 말방아

위치 ; 화북1동 4443-2번지 일대. 화북1동 비석거리 서쪽 곤을마을터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잃어버린마을터

 

화북1동_곤을마을터 불탄집어귓담.

 

화북1동_곤을마을터 말방아


화북천의 하류는 비석거리 부근에서 둘로 갈라져 바다로 들어간다.(2007년에는 동쪽 지류를 막아 버렸다.)

마치 삼각주처럼 된 곳이 있었는데 이곳을 '가운뎃곤을'이라 하고, 내의 서쪽을 '안곤을'이라 하였으며, 내의 동쪽은 '동곤을' 또는 '밧곤을'이라 하였다.

1948년 이전에는 안곤을 22가구, 가운뎃곤을 17가구, 밧곤을 28가구 이렇게 세 마을 합하여 약 75∼6호 정도가 살았던 곳이다.

4·3 이후 잃어 버린 마을은 모두 중산간 마을인데 비하여 곤을동만은 해안마을임에도 토벌대에 의해 방화되었으며 복구되지 않아 '잃어 버린 마을'이 되었다.


군인토벌대 1개 소대(42명)는 1949년 1월 4일(음력 1948년 12월 6일) 오후 3∼4시경 곤을동을 포위하였다. 그리고는 서서히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각각 집에 들어가서 마을 사람들을 무조건 나오라고 했다. 이들을 바닷가에 데리고 가서 10여명을 총살하였다.

그리고는 집집마다 불을 붙여 안곤을과 가운뎃곤을을 모두 태웠다. 당시 집에는 석유병을 기둥에다 걸어두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그 석유를 촐(목초)이나 조짚, 보릿낭에 뿌려서 불을 붙이고 집을 불태우니 마침 사나운 북서풍에 삽시간에 다 타버린 것이다.


일부(12명)는 '화북국민학교'에 가두었다가 다음날(1월 5일) '연디밋'에 데려가서 총살했다. 그리고 곤을동 출입을 통제하고 동곤을도 불태웠다. 그래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마을은 없어져 버렸고, 지금까지 복구되지 않았다.


그러면 왜 바닷가 마을인 곤을동이 군인들의 토벌 대상이 되었던 것일까?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화북동 '남문' 주변 도로에서 군용차가 무장대의 습격을 당해 군인들이 죽었는데 그 중 살아남은 한 사람이 보니까 무장대 한 사람이 곤을동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군인들은 곤을동을 '폭도마을'로 규정하고 보복살인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그 무장대는 곤을동 사람도 아니고 곤을동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는 별도봉으로 숨어 버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 163∼210쪽에서 발췌)


2009년 마을터 잡초를 깨끗이 제거하니 말방아돌이 고스란히 나타났고, 집터의 벽과 굴묵 어귀도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말방아가 있는 곳에서 동남쪽 가까운 곳에는 작은 샘도 있고, 그 옆에는 작은 연못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돌이 쌓여 있다. 마을길도 그대로 남아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