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방어전투 목적의 석성..화북1동 환해장성②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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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방어전투 목적의 석성..화북1동 환해장성②西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8.28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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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분 바다쪽으로 허물어진 채 방치된 상태.. 곤을마을의 장성 일부는 집 울타리로 쓰이고 있다.

화북1동 환해장성②西

 

제주도 기념물 제49-1호
위치 ; 화북1동 4363번지 일대. 화북 포구 서쪽에서 베릿내 하구까지 약 400여m 구간에 띄엄띄엄 남아 있다.
시대 ; 고려~조선
유형 ; 방어유적(성)

화북1동_환해장성西

 

곤을마을환해장성(문화재청)


원종11년(1270) 9월 고려 군사들이 진도에 웅거해 있는 삼별초 군사들이 제주도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영암부사 김수, 사랑 고여림 등을 탐라에 보내 군사 1,000명을 거느리고 방비하게 함에 따라 축조한 방어전투 목적의 석성이다.

같은 해 11월 삼별초 별장 이문경이 거느린 선발대가 들어와 제주도에 있던 고려군 수비대를 물리치고 제주를 점령한 후 여몽 연합군을 막기 위해 다시 정비했다.

그 후 헌종11년(1854)까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증축, 수리된 것으로 보인다. 김상헌이 지은 『남사록』에는 환해장성을 일러 ‘탐라의 만리장성’이라 기록되어 있다.

외벽은 단일 경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궁형(弓形)인 곳도 있다. 성의 높이는 3m이고 길이는 800m에 이르는데 무너진 곳이 대부분이다.

성석의 평균 크기는 하단부 70×20㎝, 53×35㎝, 53×40㎝이고, 중단부 48×27㎝, 28×34㎝, 20×25㎝이다. 상단부는 유실되어 크기를 알 수 없다.

바닷가의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축조했으며, 막돌허튼층쌓기를 하고 있다. 속은 잡석으로 채워져 있다.

성석과 면석은 구분이 뚜렷하지 않으며, 틈새에는 잔돌을 끼웠다. 현재 남아 있는 곤흘동 환해장성의 성벽은 바깥쪽으로 배가 부른 형태로, 성 위에는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도록 구멍이 뚫린 여장이 있었다. 여장은 단일경사에 가까운 형태이다.(2011년 현재 여장은 확인할 수 없음)

화북 포구 서쪽 전투경찰대 초소가 자리잡은 곳은 흔적이 완전히 없어졌고, 베릿내 하구까지 약 300여m가 남아 있다.

많은 부분이 바다쪽으로 허물어진 채 방치된 상태이고 곤을마을의 장성 일부는 집 울타리로 쓰이고 있다.

곤을마을 바로 동쪽에는 사각형으로 돌출된 부분이 있는데 이 구역의 용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2011년 10월 현재 이곳 환해장성에서 약 20~30m 간격을 두고 해안도로 개설공사가 진행중이다.
《작성 100608, 수정보완 1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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