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자연지형물인 ‘코지’와 ‘여’가 방파제.. 고내리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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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자연지형물인 ‘코지’와 ‘여’가 방파제.. 고내리 포구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9.01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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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을 드리우면 찢겨져 올라오기 일쑤여서 채낚기에 종사할 수밖에 없다.

고내리 포구
 

위치 ; 애월읍 고내리 1156-4번지의 동쪽 바닷가
유형 ; 어로시설
시대 ; 고려~현대

 

 


고내포구는 고내마을의 중심부에 있다. 대부분의 제주의 포구들처럼 고내포구도 자연지형물인 ‘코지’와 ‘여’를 방파제 삼아 만들어진 포구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던 갯바위들을 없애고 콘크리트 방파제를 만들었다. 다만 안쪽에 옛모습을 간직한 접안시설이 한 줄기 남아 있어 옛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고내성창은 대략 고려 원종11년(1230) 무렵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탐라기년(耽羅紀年)에 따르면 당시 삼별초가 제주에 들어와서 귀일촌에 항바드리성을 쌓아 이를 근거지로 삼았고 외곽성으로 애월에 목성을 구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애월에 인접한 고내리 해안에 환해장성의 자취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1940년대에는 15톤급 화물선이 드나들기도 했지만 성창의 규모는 열악하다.


고내리 바다는 ‘요강터’라고 한다. 애월리와 신엄리 경계지역인 ‘강척코지’에서 ‘개구미’에 이르는 바다 바닥은 요강처럼 움푹 패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내성창 정면에서는 ‘고돌이왓’이 시작된다. 근해어장으로서는 1㎞ 가량 쭉 뻗어나가 있어 매우 큰 편이다. 밀물을 타고 고기떼가 들어오면 영락없이 잡힌다고 할 만큼 황금어장이다. 고내리 사람들의 삶도 누대로 이 ‘요강터’에 모아졌다.


고내성창에 터잡고 있는 어선은 대부분 1톤 미만의 채낚기어선들이다. 동력선이라 부르기도 어려울 7~10마력 짜리 경운기 엔진을 장착한 어선이 대부분이다. 요강터 일대에는 자갈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에 그물을 드리우면 찢겨져 올라오기 일쑤여서 채낚기에 종사할 수밖에 없다.


방파제 공사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포구 왼쪽 ‘가막여’를 타고 7m의 방파제를 축조했다. 이어 1975년에 30m, 1991․1992년에 23m 등 60m의 방파제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고내성창은 서하늬바람에는 속수무책이다. 방파제 공사가 ‘가막여’, ‘자지린여’ 등의 여 줄기를 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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