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비교적 물이 좋은 곳에 설치..화북1동 동제원(東濟院)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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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비교적 물이 좋은 곳에 설치..화북1동 동제원(東濟院)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9.13 0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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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제원은 제주성-조천진성 사이를 오가는 길손들을 위해 마련된 숙소였다.

화북1동 동제원(東濟院)터

 

위치 ; 제주시 화북1동 오현중고등학교 동쪽 4거리
유형 ; 관아터
시대 ; 조선

동제원터 전경


화북1동 오현중고등학교 동쪽 4거리는 속칭 ‘동주원’, ‘동지원’이라고 부른다. 원이 있었던 곳이어서 부르는 명칭이다.

원(院) 제도는 고려 말부터 도입됐는데 조선시대에 다시 정비되었다.

세종21년(1439) 제주 도안무사(都按撫使) 한승순(韓承舜)이 아뢰기를 ‘왜적을 제어하는 방법은 마병(馬兵)만 같지 못한데, 본주(本州)에는 참(站=역로를 중계하는 곳으로 역과 원의 중간 숙소), 역(驛=관청간의 공문을 전달하고 외국사신의 왕래와 관원의 출장, 부임 여행 등에 마필을 공급하는 곳)을 설치하게 해 달라’고 하니 그대로 따랐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로 미루어 제주에 원제도가 도입된 것은 참과 역이 설치된 이 때부터가 아닌가 추정된다.


제주에는 제주목-정의현을 잇는 중간지점에 동원을, 제주목-대정현 중간지점에는 서원, 대정현-서귀진 사이에는 중문원(中文院) 등 여러 곳에 원을 두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제원은 제주성-조천진성 사이를 오가는 길손들을 위해 마련된 숙소였다.


도내 설치됐던 원은 물이 귀한 지역 특성을 감안하여 비교적 물이 좋은 곳에 설치되었다. 지금의 오현학원 동남쪽에 설치됐던 동제원의 경우, ‘동주원물’이 유명했으나 60년대부터 시작된 일주도로 확․포장 사업으로 인해 매립돼 자취를 잃고 말았다.

필자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제주시내에서 고향인 서회천을 걸어서 오갈 때 이 물가에서 쉬고 물을 마셨었다. 물의 크기는 매우 작아서 지름이 2m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솟아나는 물이어서 물맛이 참 좋았었다.

행기물이라고도 했는데 호종단이 수맥을 끊으려고 했다가 실패했다는 전설이 이곳에도 적용된다. 물의 위치는 사진에서 검은색 자동차가 있는 위치쯤이다.


동제원은 고려 원종 11년(1270년) 11월 영암부사(靈岩副使) 김수(金須)와 장군 고여림(高汝霖)이 거느린 관군과 삼별초의 이문경(李文京)이 거느린 군사가 접전할 때 고려관군이 진을 쳤었다는 곳이다.

이곳 전투에서 삼별초군이 승리함으로써 삼별초가 제주를 2년간 점거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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