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병선(兵船)도 감출 수 있는 포구..김녕리 김녕포(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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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병선(兵船)도 감출 수 있는 포구..김녕리 김녕포(대포)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9.17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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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가 포구 입구를 막으면서 지나치게 건설되어 김녕포로는 배가 들어올 수 없다.

김녕리 김녕포(대포)
 

金寧浦(大浦)
위치 ; 구좌읍 김녕리 마을 서쪽
유형 ; 포구
시대 ; 조선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있었던 포구. 1601년 제주어사로 파견되어 1602년 1월 말에 떠난 김상헌(金尙憲)은 『남사록(南槎錄)』에서, 구좌읍 김녕리의 한개를 대포(大浦) 또는 김녕포(金寧浦)라고 하였다.

대포는 한개라는 포구 이름이다. 김녕포는 마을 이름을 취한 포구 이름이다. 이 포구를 김녕포라고 하면서 병선(兵船)도 감출 수 있는 포구라고 하였다.


안핵겸순무어사 이증(李增)은 1679년 9월 한양을 떠나 제주에 도착한 경위와 그 뒤의 행적, 귀경 과정을 일기체로 수록한 『남사일록(南槎日錄)』에서, 대포를 달리 김녕포라고도 하였다.

이는 그 당시 대포는 포구 이름, 김녕포는 김녕촌(金寧村)이라는 마을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또한 어등포(於等浦)와 함께 대강(大舡)도 댈 수 있다. 상선(商船) 역시 통한다(可容大舡 商船亦通).라고 하였다.


영등포(迎登浦)는 지금의 구좌읍 서김녕리 영등물당(서문할으방당) 주변, 그리고 대포는 영등물당의 동쪽에 있는 한개를 두고 이른 말이다. 두 포구는 계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개는 드넓어 예로부터 소문난 포구였다. 그러나 물때나 파도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는 포구는 아니었다.

그래서 사리 썰물 때는 한갯골에 배를 세워 두었다가 밀물 따라 일정한 자리로 배를 들여 매었다. 그리고 하늬바람과 마파람이 일 때는 피해가 없지 않았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집필자 고광민)


현재는 김녕항 방파제와 연결되는 도로가 포구 입구를 막으면서 지나게 건설되어 김녕포로는 배가 들어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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