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개척마을은 1950~1970년에 걸쳐 형성..유수암리 개척단지단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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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개척마을은 1950~1970년에 걸쳐 형성..유수암리 개척단지단결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1.12 2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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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중심에 둥근 광장을 만들고 이 광장을 따라 가옥을 둥글게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유수암리 개척단지단결비

 

위치 ; 유수암리 개척단지 입구
유형 ; 비석(기념비)
시대 ; 대한민국

 

유수암리_개척마을 회관

 

유수암리_단결비

 


개척마을은 1950~1970년에 걸쳐 형성되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유입된 피난민들과 미개척지로 진출하려는 의욕적인 청년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피난민 중 일부(주로 기독교 신자)가 정부 지원을 받아 현재의 상효동에 만든 법호촌이 개척마을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유수암리의 개척단지는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9명으로 조직된 척우청년회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다. 마을 중심에 둥근 광장을 만들고 이 광장을 따라 가옥을 둥글게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2005년 초에는 이 광장에서 장승축제가 열리기도 했지만 2010년 현재 이 광장에는 확성기를 단 마을사무소만 빈 집으로 남아 있다.

기념비에는 ‘단결 미래 개척의 기수 척우청년회’라고 앞면에 새겼고, 옆면에 보면 1981. 10. 17.이라는 날짜 표시가 있다.

반대편에는 ‘축 발전 자문위원 김윤□ 송성경 김준용 고기수 청년회원 이건재 한주복 양창길 박명돈 고학관 윤재옥 박완수 김도광 임동연 후원 김삼욱 단민 일동’이라는 글씨가 못 같은 뾰족한 물건으로 새겼다.

세운 날짜를 보면 마을 형성 당시에 세운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후에 누군가가 후원하여 세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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