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신성한 천상의 대나무, 남천(南天)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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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신성한 천상의 대나무, 남천(南天) 앞에서..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21.01.1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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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의 눈 속에서 더욱더 빛나는 남천의 붉은 열매, 전화위복의 꽃말을 지닌 남천

신성한 천상의 대나무, 남천(南天)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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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 (南天), 매자나무과, 학명 Nandina domestica

 

너무도 바쁜 하루하루를 살며 한가한 휴가를 탐했던 것도 사치였나 봅니다.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먹고살기 위한 어찌할 수 없는 활동과 만남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사회활동을 억제해야만 했던 경자년은 참으로 지루하고 답답했습니다.

코로나 19 이전까지만 해도 일상이 시간에 쫓겨 마음이 조급한 아등바등한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바랐던 한가함이 넘쳐나니 이 또한 원했던 편하고 즐거운 시간이 아님을 체득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과유불급(過猶不及)임을 절실히 느낍니다.

바쁘게 사나, 하릴없이 지내나 간에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나 봅니다. 코로나 19의 위협 속에서도 어느새 봄, 여름 후딱 지나가고 산천에 고운 단풍이 일렁이는가 싶더니만 겨울이 되었고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지난해는 꼬박 사회적 거리 두기의 지겨움 속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나마 필자에게 다행인 것은 야생화를 찾아다니는 취미 덕에 사람 틈새 벗어나 산으로나마 피신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겨울이 되어 날은 춥고 황량한 산천에 풀도 꽃도 없으니 빈방에 홀로 갇혀 있기 일쑤입니다.

귀원전거(歸園田居)를 노래했던 도연명(陶淵明) 시인이라면 ‘집 마당에 잡스러운 것 없고, 휑하니 텅 빈 방엔 여유와 한가함이 감돈다.’(戶庭無塵雜 虛室有餘閒)라고 스스로 만족해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넘쳐나는 한가함에는 신물이 납니다. 과유불급입니다.

새해 들어 모처럼 간밤에 함박눈이 내리 쌓였습니다. 하릴없는 일상 반복의 지루함을 깨는 천지의 변화입니다. 기다리던 겨울눈입니다.

세찬 한파 속이지만 카메라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겨울 열매의 눈 쌓인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얀 눈 속에서 홍보석처럼 빛나는 빨간 열매들, 산수유, 가막살나무, 백당나무, 장구밥나무들이 그 대상입니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눈에 덮인 아침입니다. 눈이 녹고 바람에 흩날리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 하기에 이른 아침에 서둘러야 합니다. 잎새 떨군 빈 가지의 앙상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 사이에 가지가 휘도록 눈을 뒤집어쓴 소나무의 위용이 장엄해 보입니다. 공원길 도로변에 심어진 남천(南天)을 찾았습니다. 눈을 흠뻑 뒤집어쓴 남천의 푸르고 누런 단풍과 붉은 열매가 반가이 맞아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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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邪惡)을 쫓고 복을 불러온다는 Sacred or heavenly bamboo

 

남천은 중국 산둥성, 구이저우성 일대와 인도가 원산지인 나무로 남천촉(南天燭), 남천죽(南天竹)이라고도 합니다.

이름의 유래는 옛 중국 남부 이름인 남천축(南天竺)에서 비롯하였으며 겨울의 붉은 열매가 촛불을 닮아 남천촉(南天燭), 뿌리에서 자라나는 줄기가 대나무처럼 보인다 해서 남천죽(南天竹)으로도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높이는 3m 정도인 키 작은 나무입니다. 밑에서 여러 대가 대나무처럼 올라 자라지만 가지는 치지 않습니다. 목질(木質)은 황색입니다. ​​

남천 잎은 색깔이 변할 뿐 사계절 떨어지지 않습니다. 남천은 계절마다 각기 다른 빛깔과 모습으로 그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봄에는 연둣빛 새순, 여름에는 하얗고 조그마한 무더기 꽃송이, 가을에는 초록빛 잎새 사이의 붉은 열매, 그리고 겨울에는 촛불 모양의 빨간 열매와 불타는 듯한 단풍이 곱습니다.

남부지방에서는 주로 정원수로 심었고 북부지방에서는 분재(盆栽)로 많이 길렀습니다. 요즈음은 온난화 현상으로 기후가 따뜻해져서인지 서울 도심 도로 주변이나 분리대, 공원의 산울타리로 많이 심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풀꽃 나무는 가을이면 낙엽이 지고 겨울이면 열매마저 떨어져 나가는데 남천은 가을에도 잎은 초록 그대로이고 열매만 붉게 익어갑니다. 겨울이 깊어 가면 가을에도 파랗던 남천 잎은, 특히 새순에 자리를 양보하고 낙엽이 될 줄기의 아랫잎들은 점차 붉게 단풍이 들어갑니다.

새순이 돋아날 봄이 가까워지면서 석별의 아쉬움이 커가는 듯 아랫잎은 더욱 진하게 홍조를 띠며 정든 나무 둥치를 떠날 채비를 갖춥니다. 차갑고 삭막한 겨울에, 열매는 타오르는 한 자루 촛불처럼, 이파리는 곱디고운 붉은 단풍으로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전합니다. 하얀 눈에 덮이면 붉은빛 열매는 더욱더 선명하게 빛이 납니다.

한겨울에 돋보이는 남천의 열매와 단풍의 붉은빛은 악귀를 물리친다고 하여 담벼락 주변과 집안 출입구에 많이 심었으며 일본에서는 ‘귀신 쫓는 나무’라는 별명이 있다고 합니다.

남천의 영명(英名) 또한 무슨 까닭에서인지 sacred bamboo, heavenly bamboo라고 하여 신성한 이미지의 나무로 불리고 있습니다. 남천의 꽃말은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 합니다. 붉은빛이 양기(陽氣)를 뜻해 음기(陰氣)를 쫓는다는 뜻에서 나쁜 것을 쫓아내고, 행운을 불러오는 나무로 사랑을 받았나 봅니다.

새해 벽두에 만난 신성한, 천상의 대나무(sacred, heavenly bamboo) 남천(南天)을 신년 첫 칼럼으로 올립니다. 힘겹고 지루하고 음산했던 경자년의 악몽을 털어버리고 즐겁고 신나고 밝은 새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혹한의 눈 속에서 더욱더 빛나는 남천의 붉은 열매, 전화위복의 꽃말을 지닌 남천 앞에서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코로나 악귀는 물론이고 편 가르기, 내로남불에 나만이 옳다는 과대망상과 뻔뻔함 그리고 지나친 편향 의식에 사로잡힌 적대감, 상식을 벗어난 요변(妖辯)에 휘둘려 힘들었던 지난해의 좌절과 실망이 전화위복이 되는 새해가 되었으면 하고서 말입니다.

(2021. 1월 남천의 붉은 열매를 바라보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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