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다른 지역과 달리 생수 나는 곳 없어..비양리(비양도) 수도시설송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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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다른 지역과 달리 생수 나는 곳 없어..비양리(비양도) 수도시설송덕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3.31 0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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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수가 공급되기 전까지는 빗물을 받아 저장해 두었다가 이용

비양리(비양도) 수도시설송덕비

 

위치 ; 비양도 포구 앞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비석(송덕비)

비양도_해저송수관연결

 

비양리_수도관련공덕비


비양도에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생수가 나는 곳이 없어 상당히 어려웠다고 한다. 식수가 공급되기 전까지는 빗물을 받아 저장해 두었다가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시멘트로 바닥을 했지만 옛날에는 흙바닥이었다. 한림에 가서 진흙을 사다가 다져서 썼다. 이곳은 매립지라서 비가 오자마자 밑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진흙이든 시멘트이든 바닥을 만들어야 한다.

비가 오면 초가지붕에서 물을 받고, 마당에 고인 물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물이 부족하면 협재나 옹포에 나가 실어왔다고 한다.


본도와 비양도 사이에 해저송수관이 연결된 것은 1965년 10월 15일이다.


제주도와 제주해역사령부의 자매결연 사업의 하나로 한림읍 협재리에서 비양도까지 식수를 공급하기 위한 해저송수관 연결 사업이 추진되었다.

1965년 6월25일 착공하여 4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완공을 본 것이며 한국 최초의 해저통수였다. 이렇게 수도꼭지를 통한 식수가 주민 300여명의 물 문제를 해결하였다.

당시 제주신문에는 비양도에 물이 나오던 날이라는 제하에 天水(천수)가 나온다 두둥실, 오래 살고 보면 이런 물이라는 부제로 온 동네가 법석대던 통수식을 보도하였다.

사업으로 비양도에 본도에서 식수가 공급되자 1988년 7월에는 비양도 집집마다 개인수도가 설치되었다. 수도시설과 견련된 송덕비 2기가 포구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濟州海軍警備府司令官海軍大領許承龍頌德碑(제주해군경비부사령관해군대령허승룡송덕비)


1) 건립연대 : 1998
2) 위치 : 비양리 포구 앞
3) 규격(㎝) : 높이 108, 너비 37, 두께 18


4) 비문
정면 : 濟州海軍警備府司令官海軍大領許承龍頌德碑頌德碑

후면 ; 우리 飛揚里는 섬마을로 奉天水를 食水로 利用하므로서 生活用水 供給과 住民 保健衛生에 많은 支障을 招來하여 오던 중 許承龍 濟州海軍警備府司令官께서 우리 마을과 姉妹結緣을 맺고 住民에 대한 無料診療活動 등 物心兩面으로 支援하여 주셨고 또한 食水問題의 深刻性을 헤아리시고 北濟州郡 當局과 협의하여 서기 1963년 狹才~飛揚간 海底水道를 施設하는데 積極 힘써 주셔서 그 고마운 뜻을 오래 기리기 위하여 當時 頌德碑를 건립하였으나 30余년이 지나면서 風化作用에 의하여 破損되어 오늘 再建立하여 그 뜻을 永遠히 기리고져 한다.
1998년 9월 일 翰林邑 飛揚里民 一同
좌측 : 書 碧泉 姜哲龍(翰林邑 老人會長)

北濟州郡守金泰秦頌德碑(북제주군수김태진송덕비)
1) 건립연대 : 1998
2) 위치 : 비양리 포구 앞
3) 규격(㎝) : 높이 108, 너비 37, 두께 18
4) 비문
전면 : 北濟州郡守金泰秦頌德碑頌德碑
우리 飛揚里는 섬마을로 奉天水를 食水로 利用하므로서 生活用水 供給과 住民 保健衛生에 많은 支障을 招來하여 오던 중 金泰秦 北濟州郡守께서 事業費 130余萬원을 投資하여 狹才~飛揚間 총연장 1.3㎞의 해저수도를 施設 西紀 1965年 10月 15日 通水함으로서 우리 마을의 食數問題를 완전 해결하여 주셔서 그 고마운 뜻을 오래 기리기 위하여 當時 頌德碑를 건립하였으나 30余년이 지나면서 風化作用에 의하여 破損되어 오늘 再建立하여 그 뜻을 永遠히 기리고져 한다.
1998년 9월 일 翰林邑 飛揚里民 一同
우측 : 建立者 里長 姜榮哲 老人會長 尹萬先 開發委員長 張性薰 漁村契狀 孔政龍 婦女會長 朴蓮花 靑年會長 尹承國
《작성 110619, 보완 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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