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상대리의 생산․물고․호적 관장.. 상대리 종구실고한이축일본향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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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상대리의 생산․물고․호적 관장.. 상대리 종구실고한이축일본향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4.0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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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리는 옛이름으로 '종구실'이라 불리지만 종구실은 상대리의 여러 자연마을 중 하나

상대리 종구실고한이축일본향당

 

위치 ; 한림읍 상대리 4134, 4132-1번지
시대 ; 조선~
유형 ; 민간신앙

상대리_종구실고한이축일본향당

 

상대리_종구실고한이축일본향당


상대리는 1630년대에 종구실 동쪽에 정착한 안동장씨에 의해 설촌되었다. 서쪽 못거리에는 제주양씨가 거주했다. 마을이 커지자 중대(中大=대림리), 하대(下大=한림리)로 나뉘었다.

이전에는 14개의 마을이 흩어져 있었으나 4·3 사건이 발생하면서 무장대의 거점으로 변하였고 이에 토벌대의 대대적인 초토화 작전이 연일 자행되었다.

그 결과 상대리 대부분의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거의 폐동되고 종구실, 못거리(지항동), 하동(알동네)만이 남아 현재 상대리를 구성하고 있다.

상대리는 옛이름으로 '종구실'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종구실은 상대리의 여러 자연마을 중 하나이다.


당은 잡석으로 두른 울타리 안에 큰 팽나무를 신목으로 모신다. 제장 안 동쪽에는 시멘트로 3단으로 만든 제단이 있다. 상단 앞쪽 모서리에 궤가 3개 있고 그 구멍마다 돌멩이로 막아 두었다. 제단 뒤쪽 울타리에 많은 물색이 걸려 있다.


‘종구실고하니축일한집술일한집’을 모시는데 금악본향신의 첫째 아들이라고 한다. 상대리 사람들의 생산․물고․호적을 관장한다. 제일은 축일․술일이다. 제수로는 육류도 쓴다.(한림읍지 616~617쪽)


한편 저지리 허릿궁할망 본풀이를 보면 〈대정 호근모르 정좌수의 부인이 남펜네 부베간 정리는 아니 무어도 유태를 가져 아방눈에 골리나고 어멍 눈에 시찌나.

귀양정배 보내멍 '어서 느 가고픈 데로 가라' 하니 '어딜 가린?' 해서 나산 게 검은오름 또신머들에 의질 허연.

애긴 낳는 게 한살모지로 하나, 두 개, 일곱갤 낳고 그 애길 업을 수가 엇어 업고 안고 걸루고 하니 이젠 일곱 애길 질룰 수가 엇어.

'어떵 질루린?' 허연 '마을마을마다 만민자손에 서천제민(모든 단골의 온갖 정성) 공연을 받자' 허연. 민(面) 차지 마을 차지 인물도성책 차지하여. '큰아들랑 어딜 이 애길 보내리?' 생각하다가 괴수풀(명월리 고림동) 삼백관 산신대왕으로 보내고. 샛아들은 멩월 종구실 고완이 본향으로 차질 보내고.… 〉라는 구절이 있다.

즉 상대리 본향신은 대정 호근머르에서 출발한 정좌수부인이 금악에 의지하여 7남매를 낳았고 그 중에서 둘째가 상대리로 왔다는 것이다. 상대리 본향에 대한 본풀이는 자료를 구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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