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비녀를 닮았다고 하여 ‘빈녀코지’.. 강정동 빈여코지 소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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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비녀를 닮았다고 하여 ‘빈녀코지’.. 강정동 빈여코지 소금밭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7.2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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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을 가두어 두는 시설을 시멘트로 했었다. 지금도 시멘트 시설 일부가 남아 있다

강정동 빈여코지소금밭

 

위치 ; 강정동 서쪽 월평포구와의 중간 지역
유형 ; 생산기술유적
시대 ; 조선~일제강점기

 

강정동_빈녀코지소금밭둑

 


제주도는 사면이 바다이면서도 소금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서해안처럼 넓은 갯벌이 없고 게다가 비가 많이 오기 때문이다. 미역을 싣고 서해안으로 가서 소금을 사와야 했다.

그래서 해안 갯바위에 평평한 곳이 있어 조금이라도 바닷물을 담아 놓을 수 있으면 그곳을 소금밭으로 이용했다.

빈녀코지는 강정마을 바다밭 중 맨 서쪽에 있는 코지의 이름이다. 코지는 물속에서도 길게 뻗어 있다. 그 모양이 마치 비녀를 닮았다고 하여 ‘빈녀코지’라고 한다.

‘비녀’의 제주어는 ‘빈녀·빈녜’이다.(지식) 지명유래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다. 빈여코지이다. 빈(空) 여(礖)라는 것이다.

해산물, 어류가 다른 여에 비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전자가 다수 의견이나 필자는 후자에 공감한다.

인근 지역은 삐죽삐죽 불규칙한 바위투성이인데 비하여 이곳은 비교적 평평한 바위가 펼쳐져 있다. 이곳에 진흙으로 구획을 지어서 바닷물을 올려 증발시키는 과정을 거쳐 농축바닷물을 만들고 솥에서 끓여 소금을 만들었다.

이른바 삶은소금이다. 나중에는 바닷물을 가두어 두는 시설을 시멘트로 했었다. 지금도 시멘트 시설 일부가 남아 있다. 강정동 거주 1939년생 홍영옥씨가 철이 들었을 때는 이미 폐업한 뒤였다고 한다.(120101 면담)
《작성 1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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