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올레걷기) 너도 걷고 나도 걷는 올레, 서로가 무심하게 걸어가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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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 너도 걷고 나도 걷는 올레, 서로가 무심하게 걸어가다 보면..
  • 고현준
  • 승인 2021.08.01 0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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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13코스 하프올레, 용수포구-아홉굿마을은 물이 좋은 따뜻한 길

 

 

 

매주 올레길을 계속 걷다 보니 어느덧 완주만 4번째가 된 하프올레걷기..

아직, 여전히 추자도를 빼놓는 바람에 100% 완주라 말할 수는 없지만..

올레걷기의 묘미가 꼭 완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언젠가 다시 한번 가리라 생각하고 있다.

걷기의 시작은 건강을 먼저 생각했던 것이 그 시초였던 것 같다. 하지만 걷다 보니 이제 몸이 스스로 나를 일으켜 세우며 지속적으로 걷게 만든다.

올레를 걷는 우리에게 올레길은 이제 거의 문화생활이 되었다.

언제든 올레길에 나서면 늘 올레꾼들과 만난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만 해도..

한달을 제주에 살면서 올레길을 전부 걷는 사람..

한달에 한번씩 제주에 내려와 1-2개 코스를 걷는 사람..

혼자 걷거나..

단체로 걷거나..

좋은 사람과 함께 걷거나..

올레길의 특별한  볼거리는 항상 다양한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다른 길을 걷게 된다는 점에서 얘기할 일도 많다.

 

 

 

올레가 예전과 달라진 점은 같은 올레를 걷는 사람이라는 동류의식이랄까..하는 그런 친근감 같은 것이 많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올레길에서 누군가와 만나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서로 잠깐의 인사만을 하고 지나칠 뿐이다.

'너도 걷고 나도 걷는다'는..

올레는 일종의 그런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서 걷는 길 정도로 여겨지는 올레길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하기야 요즘은 코로나 사태로 사람들이 더 많이 줄어들기는 했다.

사람들이 넘쳐날 정도의 올레길의 인기는 예전에 이미 가버렸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넘쳐나던 그런 올레길은 또 언제 올것인가.

그런 점이 올레길을 걸으면서 늘 느껴지는 아쉬움이다.

 

 

지난주에는 서귀포시에서 제주시 경계를 지나, 다시 제주올레 13코스인 용수포구에서 하프올레걷기를 시작했다.

지난 24일은 날씨는 더웠지만 간간이 바람이 불어 걷기에 무난한 날이었다.

다행히 제주올레13코스는 해안가가 아닌 들길을 따라 걷는 코스라, 열기가 올라오는 아스팔트길이 아닌 흙길이 많아 다행이었다.

이날 올레걷기는 올레꾼 고광언과 안건세 선생이 함께 했다.

13코스가 시작되는 용수포구는 처음부터 우람한 아름드리 나무들이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더욱이 차귀도가 마주 바라보이는 마을 입구는 그야 말로 환상적이다.

이번에 이곳 마을 입구 작은 동산을 올라 보니 이곳 아름드리 나무 아래쪽에 오래된 작은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

 

 

‘관광정’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단기 4295년 10월에 용수리민 일동이 만들었다는 표지였다.

1962년에 만들었다는 비석이었다.

하지만 관광정이라는 이름과 날짜가 적힌 것이 전부였다.

석양이 아름다운 이곳에 예전에는 이를 조망하는 정자라도 있었다는 말일까..

지금은 예전엔 있었음직도 했을 팔각정이 사라져 버렸지만 이들 나무들이 주는 풍광은 이곳에 영이 서려있음을 느끼게 할 정도로 경이로운 곳이라 느껴졌다.

이날 13코스 하프올레걷기는 용수포구에서 낙천리 아홉굿마을까지 걷는 코스였다.

약 9.5km 정도를 걸어가야 했다.

시작부터 만만찮은 위용을 자랑하는 이 마을은 아직 개발의 흔적이 덜한 곳이라 그런지 걸을 때마다 인간미가 물씬 풍긴다.

 

 

이 마을 작은 하얀집에 생긴 조그만 전시장 하나..

안으로 들어가니 소품으로 만든 작품들이 여러 개 걸려 있었다.

멀리 보이는 한라산은 구름모자를 쓰고 있었고, 길가에는 옥수수가 자라고..

밭돌담에는 해바라기가 피었지만, 그런 뙈약볕 아래에서 뭔가를 심는 농부도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산방산이 보이는 교회 목사님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작은 용수무인교회가 나타났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이 교회에는, 이날도 나이 든 부부와 딸이 이곳을 찾았던 듯 잠시 들어갔다 나오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걸어..

용수저수지에 도착해서 보니.. 몇 년전까지만 해도 별탈 없었던 기와집이 한쪽이 주저앉아 무너진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마을 주민들이 제를 지내는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미 한쪽은 무너져 망가져가고 있었다.

저수지 둑에 오르니 겨울이면 철새로 가득 했던 저수지 물과 만났다.

물은 언제나 편안함을 준다.

 

 

 

그래서 그런지 이 저수지 곳곳에 무심하게 앉아 낚시를 즐기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에게 고기가 잘 잡히나 물어보니 잘 안 잡힌단다.

보통 잉어와 붕어를 낚는다고 했다.

아마 제주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제주사람들은 바닷고기를 좋아하지 민물고기를 선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을 만나 호젓한 길을 걷는데 이 ‘용수저수지는 지난 1957년 제방을 쌓아 조성한 저수지로 인근 논에 물을 대는 용도로 유용하게 활용돼 왔다’는 올레안내판이 서 있었다.

‘이곳의 소나무숲과 갈대, 부들군락지는 겨울을 지내러 오는 철새들의 보금자리로 더 유명하다’는 소개가 덧붙여졌다.

13코스 올레길은 그런 용수저수지가 있어서 더 친근하다.

 

 

 

황근꽃이 피고, 깨가 잘 자란 밭을 지나..

아홉굿마을 낙천리로 들어서는데..

안건세 선생이 “아홉굿이 무슨 말이에요” 라고 묻는다.

재빨리 네이버 검색창을 찾았다.

“아홉개의 샘물이 있는 마을”이라는 설명이 나와 있었다.

그러나 고영철 제주문화답사회장의 설명을 다음과 같다.

 

한경면 낙천리의 옛 이름은 섯세미다. 서쪽에 있는 샘이라는 뜻으로, 좋은 샘의 한자 표기가 낙천이다. 낙천리는 중산간지대이나 분지형으로 되어 있고 점토질 토양이어서 물이 잘 고이는 곳이다.

낙천리는 아홉굿 마을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굿’이란 구덩이의 뜻이다.

옛날 낙천리에서는 쇳물을 녹여 솥이나 농기구를 만드는 불미에 종사하면서 뎅이(거푸집)에 필요한 점토를 계속 파내다 보니 연못이 되었고 그렇게 형성된 연못이 여러 개 생긴 것이다.

 

예전에 이 길은 곳곳에 만들어진 의자를 보며 지났던 길인데..

이번에 걸어보니 코스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의자들은 볼 수가 없었고..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아홉굿 물에 당도했다.

아홉굿물의 내력이라는 안내판은 쓰러져 널브러져 있었지만..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홉굿물의 내력

1, 1670년경부터 풀무(주조업)가 시직되면서 뎅이(틀) 재료를 채취한 찰흙구덩이에 고인 물을 4개리(저지, 청수, 조수, 낙천) 주민이 음용수로 공히 이용하여 왔음(1-6)

2, 1910년경 4개리 마을 주민들의 결의에 의해 인접 토지를 기부받아 공동역사로 2개의 못을 조성 이용하였음(7-8)

3,1970년도부터 4개리에 어승생 및 조수 상수도가 공급되자 1995년 북제주군의 지원으로 아홉 개의 연못을 통합 저수지로 조성, 농용수로 이용함

4, 2003년 불무의 상징적 유산인 아홉굿물을 테마마을 주테마로 결정, 역사적 실체를 보전키 위하여 2012년 제주시의 지원으로 고증을 거쳐 복원 하였음

 

이 내용이 이곳 안내판에 적혀 있는 아홉굿물에 대한 설명이다.

 

 

 

실제로 이 연못은 아홉 개의 크고 작은 연못을 만들어놓은 듯 9개의 연못으로 조성돼 있었다.

작은 참새들이 부리에 먹이를 물고 왔다갔다 하는 이 곳 9개의 각 연못에는 수개의 종류가 다른 수련이 자라는 모습도 관찰됐다.

 

이 낙천리 새물(봉천수연못)에 대해 고영철 제주문화답사회장은 지난 2012년 답사내용에서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새물(봉천수연못)

 

위치 ; 한경면 낙천리 2138번지

유형 ; 수리시설

시대 ; 조선

‘새물’은 말 그대로 새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현장의 안내판에는 〈새물(新水) ; 풀무의 번창과 함께 형성된 이 물은 이 주변에 새 동네를 조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수백년 동안 식수와 생활용수로 이용하다가 상수도의 발전으로 농업용수로 전락하였음.〉이라고 되어 있다.

새물은 4개의 연못으로 구분돼 있다. 못과 못의 경계는 논둑처럼 흙으로 좁은 길을 만들었다. 이 가운데 2개 연못은 수련으로 가득 차 있다. 면적은 600㎡가량 된다. 수량이 풍부해 가장 안쪽의 못에서 넘친 물이 바깥 못을 채우는 식으로 자연스레 흘러간다.

 

이곳에는 현재 수련·골풀군락을 비롯 마름·말·개기장·피막이·가막사리·빗자루국화·병풀·물방동사니·미나리·부들·사마귀풀 등 습생식물들의 영역싸움이 한창이다.

못 입구에 서 있는 팽나무는 흔히 ‘새물 폭낭’이라 불리워지고 있고 수령이 500년이 넘은 것이라고 한다.(제민일보 001226)

‘새물습지’ 일대는 2005년 친환경적으로 복원되었다. 이들 연못은 한 곳에서 넘친 물이 다른 곳으로 자연스레 흐르고 곳곳에 마름. 가래. 부들 등 많은 수생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또 연못 주변에는 골풀군락이 형성돼 있다. 특히 생태관찰로는 과다하게 번식된 식물을 적절히 제거하는 대신 창포류와 노랑원추리, 좀어리연꽃 등 수생식물을 심어 놓았다.

《작성 12년 2월3일》

 

올레꾼 고광언(오른쪽)과 안건세 선생(왼쪽)
올레꾼 고광언(오른쪽)과 안건세 선생(왼쪽)

 

올레길을 걸으면 그동안 잘 몰랐던 제주도 곳곳의 새로운 역사와 문화도 알게 된다.

그래서 마을을 사랑하고 제주도를 더 사랑하게 된다.

제주도를 아름답게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직접 땀 흘리고 알게 되는 새로운 지식은 잘 잊혀지지도 않는다.

우리에게 손오공의 삼장법사로 더 잘 알려진 당나라 현장법사는 19년동안 인도 등 110여개국을 여행하고 돌아오면서 많은 불경을 인도에서 중국으로 가지고 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반야심경도 그가 인도에서 가져 온 후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번역해 놓은 것이다.

당시 당태종은 불경번역보다 여행기를 먼저 쓰라고 했다고 한다.

그 책이 '대당서역기'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서유기의 모태가 된 책이기도 하다.

여행은 작은 일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인간들의 삶을 바꿀 위대한 여정이 되기도 한다.

올레길은 전체 길이가 425km정도이지만..

그렇게 해서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의미를 바꾸는 중대한 기회가 될 지도 모를 길이다.

올레길은 우리 제주도의 문화이면서 점점 역사가 되어갈 것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배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라는 책처럼 수준 높은 글을 쓰는 사람도 나타날 것이니..

올레길은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남아 있다.

드디어 아홉곳을 지나 마을에 당도하니 마을 곳곳에 연꽃 무늬가 담벽에 가득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제주올레13코스의 중간 스탬프를 찍는 곳은 마을회관 앞으로 바뀌어 있었다.

의자를 놓고 전시중인 그곳이 아니었다.

13코스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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