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올레걷기) 샘이 많아 '낙천', 아홉굿마을..쓸쓸한 나그네처럼 걷는 올레, 땀의 대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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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 샘이 많아 '낙천', 아홉굿마을..쓸쓸한 나그네처럼 걷는 올레, 땀의 대가는..
  • 고현준
  • 승인 2021.08.09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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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한경면 낙천리-저지오름 400년된 나무와 얘기하는 수행의 길

 

 

지난 7일 하프올레걷기는 아홉굿마을, 의자마을로 널리 알려진 제주시 한경면 낙천리에서 닭모르오름(저지오름)까지 걷는 코스였다.

이날 제주올레13코스 중간 스탬프가 있는 낙천리사무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45분.

일주도로가 아닌 중산간도로를 따라 가다 보니..제주시에서 그곳에 도착한 시간이 생각보다 조금 더 걸리는 듯 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리쬐는 햇볕이 “오늘 걷기도 만만치 않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타고 간 차라도 그늘에 세우고 싶었지만 변변한 나무 그늘조차 보이지 않았다.

13코스 중간지점은 이제, 예전의 의자전시장(?) 공원이 아닌 낙천리사무소 앞으로 이전해 있었다.

 

 

 

낙천리라는 마을이름도, 아홉곳마을이라는 그 이름도 특이한 이 중산간마을은 옛 이름은 섯세미라고 불렀다고 한다. 서쪽에 있는 샘이라는 뜻으로, ‘좋은 샘’의 한자 표기가 낙천이라는 것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됐다.

지난 1660년경 전라남도에서 입도한 송(宋)씨 일가가 주물 공예에 필요한 양질의 토지를 찾아 안착하며 거주가 시작되었고 18세기 중반까지 독립된 행정 마을이었다가 이후 조수에 속했다가 1894년에 분리되어 낙천리가 되었다고 한다.

‘샘이 많으므로 낙천’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낙천리가 되었다고 한다.

분지형의 이 마을에 많이 산재해 있는 연못들은 예전 풀무업과 관련이 있는데, 설촌 때부터 시작된 풀무에 사용할 흙을 채취해 웅덩이가 생긴 곳이 점차 연못처럼 변해 9개의 못이 집단 조성된 지역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지역이다.

의자마을로도 유명해진 이곳은 제주올레13코스가 만들어지면서 마을주민들이 1천 개의 의자를 마을 곳곳에 만들어 놓았는데..

이번에 보니 나무로 만든 의자들은 대부분 썩어가고..하나 둘씩 의자마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스러져 가고 있는 중이었다.

차라리 올레꾼들이 쉴 수 있는 곳에, 전시용이 아닌 튼튼하게 만든 의자라도 몇 개 만들어 놓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 의자마을에는 지금 전망대 공사를 하는 것인지..엄청난 높이의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그래서 올레 중간스탬프를 찍는 곳도 임시로 이전한 것인 듯 보였다.

푹푹 찌는 날씨..

이렇게 더운 날..

올레를 걷는 사람이 있을까..하며 걷는데 웬걸..

이날 많은 올레꾼들과 길에서 만났다. 성격 좋은 안건세 선생이 지나가던 올레꾼에게 말을 걸었다.

이날 처음 만난 올레꾼은 "휴가를 9일이나 받아 제주로 내려와 8일간 7개 코스를 걸었다"고 하는 부부였다.

“하루는 너무 힘들어서 쉬었다”는 그들은 “내일은 올레걷기를 포기하고 한라산으로 가야겠다”는 올레꾼이었다.

다음에 만난 올레꾼은 외국인들이었다.

이들과는 우리와 몇 번이나 스쳐 지나다 만나기를 반복했는데..

종점 스탬프를 찍는 곳에서 다시 만나 “제주에 사느냐”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대전에서 왔다”는 외국인 올레꾼이었다.

이날 하루 중간 중간 길에서 쉬고 있던 올레꾼 까지 모두 5-6개 팀의 올레꾼들과 만났다.

더위도 추위도 사실 올레꾼들에게는 의미가 없긴 하다.

더울 때나 추울 때나 그냥 걷는 길이 올레길이니...

올레길에 올레꾼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지난 7일 올레13코스 하프올레걷기는 올레꾼 고광언과 안건세 선생이 함께 했다.

 

올레꾼 고광언(오른쪽)과 안건세 선생(왼쪽)

 

 

날씨는 무더웠고..

조금만 걸어도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었다면 더위를 먹어 쓰러진다 해도 그러려니 해야 할 날씨였다.

이렇게 더운 날은 바람이 부는 언덕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을 때가 가장 좋다.

그런 곳이 13코스에는 딱 한 곳이 있다.

용선달리(용선달이)이라는 습지가 있는 곳이다.

 

다음은 이곳에 서 있는 용선달리에 대한 설명이다.

 

용설달리(용선달이)는 한경면 중산간 4개 마을(조수, 낙천, 저지, 청수)의 설촌지이다.

1610년경 전주이씨 이몽빈 일가가 용선달리에 입주한 것이 설촌의 시작이었고 거주민이 늘어남에 따라 조수, 낙천 저지 청수 등으로 퍼져 살게 되었다.

처음 설촌 당시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속칭 구멍목이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식수로 사용하여도 양이 충분하였다. 이 구명목이 물은 땅속으로 흐르는 물이었다.

설에 의하면, 한라산(물장오리)에서 땅속 물줄기를 따라 흘러내려서 이곳에서 흐른다고 한다. 여름철에 큰 비가 오면 구명목이가 터졌다고 해서 이곳에서 흐르는 물이 주변 농경지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기고 했다고 한다.

점차 사람들이 모여들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그리게 되자 물이 부족하였다. 마을에 살고 있던 좌수 김시권이 기부한 돈으로 땅을 사어, 구명목이를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6개의 물통을 팠다.

물통 4개는 식수로 사용하였고 나머지 2개는 가축급수와 더울 때 사람들의 목욕물로 이용하였다. 가운데로는 인도를 만들어 사람들이 다녔다. 지금은 물통 4개로 모습이 변하여 남아있다.

 

 

 

이곳 용선달리에는 평상이 놓여있어 나무 그늘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며 오래 쉴 수 있었다.

여기 놓인 평상은 마땅히 쉴 곳이 없는 낙천리-저지오름 입구 사이에 유일하게 땀을 식히며 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 올레길에는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곳곳에 웅장하게 서 있어서 주변을 압도하기도 한다.

이곳 중간 쯤 길에서 만난 폭낭은 지난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됐다는데.. 이 나무 지정 당시 수령이 360년이었다고 하니 벌써 400년이나 된 나무였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오래된 나무였다.

물론 이런 나무는 제주 곳곳에 산재해 있긴 하지만 나이만큼 대접을 받는 것 같지는 않아 늘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제주의 역사를 다 보고 그 자리에 서 있었을 오래된 거목들이지만..그 나무들은 그저 묵묵히 그곳에 오래 서 있을 뿐이다.

누가 아는 척도 안해 준다면 홀로 외롭기만 할.. 그런 보호수는 제주에 너무나 많다.

수령 400년 된 폭낭 보호수

 

 

이제 길은 닭모르오름이라는 이름이 붙은 저지오름으로 향한다.

약간의 오르막길을 따라 걸어가니 주차장이 나오고..

화장실에 들어 가 세수라도 하려고 했지만 화장실에는 물이 없었다.

수도시설이 돼 있지 않은 것이다.

물이 없는 화장실..낭패다.

덕분에 더 이상 걸을 힘을 잃어 버렸다.

닭모르오름 주차장은 저지오름의 뒤쪽이라는 설명을 이 지역 운전기사에게 들을 수 있었다.

아까 만난 외국인 올레꾼이 지나가면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에서 올레 걷기를 멈추기로 했다.

너무 더워서 더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은 날씨는 무척 더웠지만 절기상으로는 입추였다.

다음 주부터는 덜 더우리라는 희망을 품고 14코스 하프코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올레길은 쓸쓸한 나그네가 걷는 길이다.

올레길에서 만나는, 그저 홀로 묵묵히 수행하듯 걷는 이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올레는 스스로를 치유하면서 걸으면 되는 것이지 힘든 고행길을 만들면 안된다.

그런 점에서 올레길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땀 흘려 얻는 대가 같은 것이 올레길에서는 주어진다.

그래서 올레길에 한번 서게 되면 걷기를 멈출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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