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이름을 탓하랴? ..무등산의 '입술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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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이름을 탓하랴? ..무등산의 '입술망초'..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21.08.24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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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풀이 밭에 자라면 농사를 망치고, 농사를 망치면 나라가 기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이름을 탓하랴? 무등산의 입술망초.

 

입술망초 (쥐꼬리망초과) 학명 Peristrophe japonica (Thunb.) Bremek.

 

한더위 여름날 이른 아침에 무등산에서 만난 꽃입니다. 풋풋한 초록 이파리에 앵도빛 선연한, 상큼하고 발랄한 입술 모양의 이 꽃 이름은 ‘입술망초’입니다.

이름의 앞부분 ‘입술’은 타당해 보이는데 뒷부분 ‘망초’가 영 석연치가 않습니다. 문헌이나 인터넷을 찾아보면 ‘입술망초’는 윗입술과 아랫입술로 나누어진 꽃잎이 입술을 닮았고 쥐꼬리망초과(科)에 속한 식물로 쥐꼬리망초와 비슷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망초’는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일제강점기인 19세기에 들어온 귀화식물입니다. 번식력이 강해 전국의 들이나 길가, 휴경지, 밭, 경작지 주변, 황무지, 하천 바닥 등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무성하게 자라는 두해살이풀입니다.

특히 농경지에서 뽑아도 뽑아도 없어지지 않아 농민들이 골치를 앓았던 식물입니다. 이 종을 ‘망초(亡草)’라고 부른 연유로는 이 풀이 밭에 자라면 농사를 망치고, 농사를 망치면 나라가 기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구한말 개항(1876) 이후 예전에 보지 못했던 풀이 유입되어 경술국치(1910)를 전후하여 전국에 퍼지자, '나라가 망할 때 돋아난 풀'이란 의미의 '망국초(亡國草)', 또는 ‘망할 놈의 풀’, '망초(亡草)'라 부르며 망국의 분노를 표출하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참조, 네이버 지식백과, 위키 백과>

망초의 유래가 이러할진대 쥐꼬리망초는 왜 ’망초’를 붙였을까?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산기슭이나 길가의 후미진 곳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쥐꼬리망초는 한해살이풀입니다. 꽃잎이 입술을 닮았는데 안쪽에 연한 분홍색 바탕에 붉은 반점이 있습니다.

쥐꼬리망초는 이삭꽃차례가 작고 모양이 쥐꼬리를 닮았기에 이름에 ‘쥐꼬리~’를 붙인 것은 납득이 됩니다. 그러나 ’망초‘처럼 귀화식물도 아닌, 망초가 유입되기 이전부터 이 땅에 자라온 자생식물인데 ’쥐꼬리망초‘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추정하건대 국내 식물을 과학적으로 분류하고 명명(命名)하기 시작한 것이 개화기 이후부터이고 보니 망초처럼 아무 데서나 흔하게 자라는, 하찮은 것으로 여겨 ’쥐꼬리망초‘라 명명한 것이 아닐까 추정할 뿐입니다.

국명(國名)이 ’쥐꼬리망초‘인 이 종(種)의 학명은 Justicia procumbens 입니다. 속명 Justicia는 스코틀랜드 육종학자인 J. Justice(1698~1763)의 이름에서 유래하고, 종소명 procumbens는 기는줄기 모양에서 비롯하는 라틴어라 합니다.

식물의 이름 또한 사람이 붙이는 것이고 보니 학명이 아닌 국명(國名)은 시대와 지역을 중심으로 한 당시의 이해관계와 가치 평가에 따라 작명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곱고 애잔하기까지 한 여린 꽃, 최근에서야 우리에게 알려진 꽃에 쥐꼬리망초과(科)에 속한다는 이유로 어울리지도 않는 ‘~망초’라는 이름을 갖게 된 ‘입술망초’입니다. 명명자(命名者)를 원망해야 할지? 아니면 입술망초가 속한 과(科)의 대표 식물인 쥐꼬리망초를 원망해야 할지? 참 억울할 것만 같습니다.

무등산 일대에만 자생하는 앵도빛 입술망초

 

입술망초가 일반인에게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2013년 3월에 무등산 도립공원이 국립공원으로 승격, 지정된 이후 실시한 자생식물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무등산에서 관찰된 식물입니다. 따라서 이 꽃에 대한 생태와 분포에 관한 정보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꽃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 종(種)은 오직 광주시와 화순 일대인 무등산에만 자생하는 우리 야생초라는 것입니다.

잎은 마주나기하고 엽병이 있으며, 긴 타원 모양의 잎몸 주맥 위에는 누운 털이 있습니다. 꽃은 입술 모양으로 길이 2~3cm 정도의 크기인데 연분홍색의 꽃잎은 2장으로 자웅동체입니다. 윗입술과 아랫입술로 나누어져 있으며, 윗입술은 위로 쳐든 듯 뒤로 약간 말리고 아랫입술은 윗입술보다 넓은 타원형이며 안으로 굽은 듯 오므라듭니다.

1개의 암술과 2개의 수술이 있으며 암술머리는 2갈래로 나누어져 있고 꽃잎 안쪽에는 적갈색의 얼룩무늬가 있습니다. 줄기는 사각형으로 드문드문 분지(分枝)하며, 비교적 가늘기 때문에 꼿꼿하게 서는 힘은 그다지 강하지 않습니다.

입술망초는 여름 더위가 한창인 7~8월에 가지 끝 또는 잎겨드랑이에 2~3송이의 꽃을 피웁니다. 앵도빛 분홍색과 매혹적인 고운 입술 모양을 지닌 입술망초는 습기가 많은 그늘진 곳에서 자란 탓인지 줄기도 가늘고 약합니다.

꽃부리가 길어 살짝 건들기만 해도 떨어지고 마는 여리디여린 꽃입니다. 게다가 한낮이 지나면 뒤틀리며 시들고 마는 하루살이 꽃입니다. 이 여리고 고운 꽃 이름에 ‘~망초’를 붙인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어떡합니까?

앙증맞게 고와 눈길을 떼지 못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매혹의 입술 모양 꽃, 투박하고 따스움 가득한 여유롭고 널찍한 무등뫼에 안기어 그 누구도 탓함이 없이 오직 후대를 위한 꽃을 피우고 또 피우며 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 그 누가 뭐라 하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충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듯합니다. 오직 무등산 일대에만 자생하고 있는 입술망초를 회상하며 곱고 여린 꽃의 매력과 의미를 다음 글로 압축해 봅니다.



■ 무등산의 입술망초

흔하디흔한 꽃
쥐꼬리망초를 닮은 꽃.


위아래 앵도빛 꽃잎 두 장
살짝 쳐든 윗입술과
두툼한 아랫입술.

앙증맞게 고와
마주친 눈빛 녹이는
곱디고운 입술을 닮은 꽃.

오직 무등뫼만 고집하는
외고집과 따스움이 어린 꽃.
수줍고 투박한 정이 배어나는
무등의 꽃 입술이다.


(2021. 한여름 무등산 자락에서)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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