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해신당의 성격 추정..예초리 물생이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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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해신당의 성격 추정..예초리 물생이끝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9.11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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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만 다니는 당으로 주위는 ‘썹나무’가 자라고 있다.

예초리 물생이끝당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시대 ; 조선
유형 ; 민간신앙
위치 ; 추자면 예초리

예초리_물생이끝당 전경

 

예초리_물생이끝당

 


신대산전망대에서 예초리 쪽으로 150m 정도 내려가면 당으로 가는 진입로 입구가 있다. 예초리 인가에서는 동남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10분쯤 가면 커다란 바위 줄기가 길게 바다로 뻗어내려간 곳이 있다.

이 바위는 중간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들려져 있는 곳이 있는 등 땅에 묻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100여m 바다로 나간 코지(串)를 '물생이끝'이라 한다.

바위 줄기는 맨 윗부분에서 2m 가량 간격을 두고 끊어져 통로가 되고 있는데 끊어진 위쪽 바위 아래 당을 마련하였다.

바닥에 시멘트로 제단을 만들었고, 오른쪽에는 바람을 막기 위한 벽을 블록으로 만들었었다. 원래는 1m 정도의 높이로 만들었던 벽이 지금(1999년 12월 12일 답사)은 허물어져 있다. 해신당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밖의 다른 시설은 없다.


예전에는 주변에 있는 나무를 함부로 건드리면 손이 오그라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센 당이라 제일을 제외하고는 당 주변에 가지 못하였다. 남성들만 다니는 당으로 주위는 ‘썹나무’가 자라고 있다.


당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오면 돌 틈에 있는 공간에 예전 이 당의 제를 맡아 하던 사람이 며칠씩 살면서 기도할 때 머물던 공간이 있다. 약 40년 전까지는 자식 없고 깨끗한 사람이 당의 제사를 맡아서 했다. 섣달 그믐에 와서 정월 보름까지 당에 다니지만 최근에는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당맞이’와 ‘거린제’는 일종의 해신제였는데 창호지에 밥을 싸서 “멸치 많이 잡게 해주시오!”, “삼치 많이 잡게 해 주시오!” 라고 소원을 빌며 바다에 던졌다고 한다.

이때 선주집에서도 제물을 한상씩 차려오고, 물에서 죽은 영혼이 있는 집에서도 제물을 차려와 짚배(오장채)에 싣고 바다에 띄우며 제가 끝나면 풍물을 치며 놀았다고 한다.

섣달 그믐밤에 제를 지내는데, 밤 12시 제관과 보조자 2명이 함께 가서 밤 1시에(정월 초하루) 지낸다. 제가 끝나면 창호지에 싼 밥을 각 선주의 이름을 부르며 바다에 던져 풍어를 기원한다.


이 마을 朴鐘奎(67)씨에 따르면 마을이 성했을 때만해도 마을에서 예산 편성을 하고 제관을 결정한 다음 음력 섣달 그믐에 당맞이를 해다가 정월 초하루에 <거린제>를 드렸다고 했다.

일종의 해신제였는데 창호지에 밥을 싸서 “멸치 많이 잡게 해주시오!” “삼치 많이 잡게 해주시오!” 소원을 빌며 바다에 던졌다고 했다.

이때는 선주집에서도 제물을 한 상씩 차려 오고 물에 가 죽은 사람의 집에서도 제물을 차려와 짚배 <오장채>에 실어 바다에 띄우고, 제 끝에는 농악도 치며 놀았다고 했다. 횡간도에서도 과거에는 정월 대보름(음력)에 풍어제를 지내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당제를 지내지 않는다. 다만 정월 초하루 걸궁 때 당에 가는데, 고기를 부른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걸궁 때는 당에서 방파제로 다음에는 엄바위의 순서로 다닌다고 한다.
《작성 041031, 보완 1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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