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여와 초에서 유래한 이름(?)..예초리 포구(예초항)
상태바
[향토문화] 여와 초에서 유래한 이름(?)..예초리 포구(예초항)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9.15 0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로부터 예의범절을 잘 지키는 마을이라 하여 ‘예초’(禮草)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예초리 포구(예초항)

 

위치 ; 추자면 예초리 북쪽 바닷가
시대 ; 조선
유형 ; 어로시설

예초리_예초항

 

예초리_옛포구방파제



예초리(禮草里)는 하추자도(下楸子島)의 북동쪽 끝에 있는 예초(예추)마을, 추가리(추포도/楸浦島) 마을과 12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졌다.

일찍부터 예초리 본동 포구 일대를 <예초> 또는 <예추>, <예초나루> 또는 <예추나루>, 그 서쪽을 <작은예초> 또는 <작은예추> 등으로 불러 왔다.

19세기부터 禮草(예초)로 표기하기 시작해서 그대로 마을 이름으로 정착하였다. 1872년에 제작된 「영암추자도(靈巖楸子島)」지도에 영암군 추자도 禮草(예초)로 표기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지도에 예초리가 나타난다.


< 예초> 또는 <예추>는 고유어로 보이는데, 그 뜻은 확실하지 않다.(마을 홈피) 예로부터 예의범절을 잘 지키는 마을이라 하여 ‘예초’(禮草)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그러나 마을 주민 중에는 여(礖=돌이름, 물에 잠겼다 드러났다 하는 수중암초)와 초(礁=물에 잠긴 바위)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 설명이 더 그럴 듯하다.


이와 같이 마을 앞 바다에 바다에 잠긴 바위가 많이 때문에 좋은 포구를 만들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현재 사용하는 포구의 동쪽에 돌로 쌓은 짧은 방파제가 남아 있다.

옛 포구의 흔적이다. 그보다 서쪽으로 현대에 테트라포트와 시멘트를 이용하여 새로 만든 포구가 있다. 방파제 끝에 등대가 세워져 있다.

어선은 10여 척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초항은 당초 어협에서 관리하다가 1972년부터 제2종항이 되어 제주도가 관리하기 시작했다.
《작성 12052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