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추자공립보통학교 분교..추자면 신양리 추자초등학교신양분교장
상태바
[향토문화] 추자공립보통학교 분교..추자면 신양리 추자초등학교신양분교장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9.16 0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예회나 운동회 같은 학교 행사는 신양에서 따로 했는데 졸업식은 추자교에서 함께 했었다.

추자면 신양리 추자초등학교신양분교장

 

위치 ; 추자면 신양리 486번지(추자로 553-10)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교육기관

신양1리_신양분교장정문
신양1리_신양분교장

 


처음 신양리에 공립학교가 세워질 때의 정식 명칭은 추자공립보통학교 분교(分校)의 형태였다. 1925년 9월 추자교의 개교와 함께 이루어진 일이었다. 속칭 下島校라고 불렀었다.


이 학교에 근무했던 양태교 선생의 비망록에 따르면 이 학교는 ‘본 학급(下島校)은 大正12년(1923) 11월 사립 진영(振英)학교(개량서당 進英書塾과의 연결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라 해서 下島 유지들의 발기로 설립한 것을 1925년 공립으로 인가를 얻어 추자공립보통학교라고 명칭을 변경, 창립 당시 4년제 2학급이던 것을 1931년 2월에 1학급이 단축, 단급학교로 되어 今日에 이름’이라고 되어 있다.

사립학교는 1923년부터 있었으며 이것이 공립으로 전환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현재 추자초등학교와 신양분교장에 남아 있는 졸업대장을 보면 같은 번호에 같은 이름으로 정리되었음을 볼 수 있으며 교장도 한 사람이었고 한 개의 학교로 운영되었었다. 학예회나 운동회 같은 학교 행사는 신양에서 따로 했는데 졸업식은 추자교에서 함께 했었다.


그러다가 1941년 6월에 신양공립국민학교로 문을 열었다. 이 때 각리 이장들의 공이 많았다. 개교 당시를 서술한 1946년의 연혁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서기1924년 이래 楸子島 敎育機關 設置 問題로 上下島 對立的으로 그 設置 場所를 다투어 熱烈한 투쟁을 계속한 바이다.

서기1925년 6월 30일 楸子公立普通學校 設立 認可됨에 對立的으로 紛爭이 되던 場所의 件은 下島에 認可가 되기 때문에 上島 一學級 下島 二學級 四年制라는 本島 特殊의 敎育機關이 된 것이다.

然이나 本島는 일찍이 日本人 居住者가 많고 港口的으로 보아도 地理的으로 優秀한 環境을 갖고 있고 文化的으로도 下島보다 超越한 상태에 있었기로 敎育熱 勢力이 上島로 集中, 校舍 設備 等이 上島에 完備되는 狀況에 따라 校長 居住地 亦是 上島가 된 것이다.


그 후의 情勢는 점차로 上島가 유리한 입장으로 展開되고 下島는 反對로 退步의 一路를 걷고 있었다. 그리하여 下島는 1,2,3,4학년을 收容하게 된 1學級 單級制 學校로 變更된 것이다.

이런 狀況으로 下島는 戶數로 보거나 人口數로 보거나 上島의 倍를 算하는 處地인데 年年 入學難은 增加되며 入學을 志願하는 父兄의 焦心은 極度에 達하는 一方이었었다.

이러한 緣故로 下島 人士가 上島로 兒童을 下宿시켜 上島校로 入學志願하는 者가 簇出된 것이다.


이에 이르러 下島에 新校 設立을 渴望하는 怒聲이 到處에 充滿하였다. 때마침 機會를 맞이하여 全鮮的으로 初等校 第2次 擴充 設立 認可 計劃이 發表됨에 本面 下島 有志로 期成會를 組織하여 當局으로 認可 申請을 한 바이다. 多幸히 多年間 島民이 渴望하던 初等校 設立 認可도 1941년 6월에 實現이 되었다.


沿革 大要 서기1925년 6월 30일 楸子公立普通學校 設置(2學級4年制)
1925년 9월 1일 開校
1938년 4월 1일 楸子西公立尋常小學校라 改稱
1941년 6월 6일 新陽公立國民學校 設置(2학급6年制)
1941년 6월 10일 開校」


이 글에서 上下島 간의 갈등의 일면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갈등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8년부터 추자도에 초중고등통합학교를 세우려는 교육청의 시도가 있었으나 이 또한 부지 문제 등 상하도 간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여 결국 무산되고 말았는데, 1999년 3월 1일부터는 학생수가 35명에 이르자 추자교장이 신양교장을 겸직하다가 1999년 9월 1일자로 분교장으로 격하되었다.


신양교에서는 추자교보다 1년 앞서 1978년 문교부 지정 급식 시범학교로 지정되어 시범급식을 하기 시작하였다. 신양교에 학생수가 많았던 때는 1961학년도로 11학급에 606명이었으며, 1981년에는 12학급에 642명이었다. 이때는 추자교보다 학생수가 많았다. 2012년 현재 학생수는 19명이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에는 결7호작전에 따른 특공기지 건설을 목표로 주둔했던 공병대대 ‘가도다이’부대 본부가 신양분교장에 있었다.
《작성 12052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