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도정과 해군의 폭거! 나는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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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도정과 해군의 폭거! 나는 분노한다
  • 고희범
  • 승인 2010.01.1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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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범(전 한겨레신문 사장)



고희범(전 한겨레신문 사장)
아,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용산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활터전을 지키기 위해 망루에 올라간 이들이 겪었던 참사를 연상시키는 일이 이 땅, 제주에서도 일어났다.

2010년 1월 18일 새벽 5시. 제주지방경찰청장이 직접 지휘한 경찰병력과 제주해안경비단의 군인 등 6개 중대 500여명이 강정주민의 농성장을 급습했다. 주민들 47명이 연행되고, 곧이어 주민 연행에 항의 기자회견을 하던 시민단체 회원들까지 강제로 끌고 갔다.

절차상의 하자가 명백함에도 해군은 일방적으로 정한 기공식 준비를 해왔다. 법원의 판결을 기다려 줄 것을 요구하는 주민들이 왜 연행돼야 하는가. 절차상의 하자에도 불구하고 기공식을 강행하려는 해군과 도정의 불법이 더 중대한데도 말이다.

 게다가 강정주민들이 제기한 해군기지사업 실시계획승인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판결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조상 때부터 살아온 터전을 내주고 쫓겨 나가야 하는 주민들의 억울함을 짓밟으며, 공권력을 동원해 주민들을 제거하려는 해괴한 일은 도민을 주인으로 여긴다면 할 수 없는 짓이다.

엊그제만 해도 서귀포에서 “해군기지 갈등 실타래를 풀겠다”던 제주도지사. 공권력을 동원해 주민들을 끌어내고, 잡아 가둬서 그들의 입을 막는 짓이 갈등을 푸는 비책이었는가.

강정주민과 해군 간의 일이라는 비겁한 변명은 거두라. 농성장 철거와 주민들에 대한 대규모 연행사태가 주민과 해군의 사이의 일이라면 이제까지 도정은 왜 나섰었는가. 국책사업을 들먹이며 군사기지가 들어오면 경제가 발전한다 어쩐다 했던 말들은 다 무엇이었는가.


경찰로도 모자라 해군까지 직접 나서서 지역민들을 끌어내다니. 국방부 땅을 불법 점거하고 기지기공식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나섰다는 해군 당국의 변명은 졸렬하다.

도대체 그 군사기지는 누구를 위해 세우려는 것인가. 어떻게 대한민국의 군대가 기공식이라는 반나절의 요식행위를 위해 제 나라의 국민을 적군 몰아내듯 잡아들여 유치장에 가두는가. 이것이 군대가 평화의 섬, 제주를 지키는 방식인가.

깃발 꽂았으니 벌써 자기네 땅이라고 제주도의 주인인 주민들을 신새벽에 군사작전 하듯이 몰아내는 해군의 행태는 오만하다. 경제발전이란 허울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도민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이제 와서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등 돌리고 앉은 도정의 작태는 비열하다.

 “최소한 주민들의 의사를 물어보는 절차만이라도 지켜달라”는 성직자의 호소와 “차라리 총을 들고 들어와 주민들을 겨누고 공사를 하라”는 강정 주민의 울부짖음을 이대로는 지나칠 수 없다.

아아, 제주의 역사, 제주의 아픔을 티끌만큼이라도 아는 자들이었다면 이런 짓은 할 수 없다. 평화를 지킨다던 군인과 경찰이 주민을 끌어가는 일이 어떻게 다시 이 땅에서 벌어진다는 말인가.

해군과 제주도정의 행태는 지방선거 이전에 기지건설을 기정사실화해 지방선거 과정에서 해군기지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을 막기 위한 전략적인 공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강압적으로 진행되는 이 같은 공세는 지역사회의 갈등을 악화시키고 군에 대한 불신을 자초할 뿐 아니라 국가안보 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군사기지건설공사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김태환 도지사는 이 일에서 손을 떼야 한다. 제주도의 군사기지는 설치의 필요성과 타당성부터 입지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

지방선거 이후 다음 도지사가 도민들에게 새롭게 의견을 구하고 중립적인 도정의 중재에 따라 원점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할 것을 제주의 제 정당, 시민단체, 도민들께 제안한다. 그래야 해군기지 문제를 해결할 길이 비로소 열린다. /고희범 전 한겨레신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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