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칠 문화칼럼)나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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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칠 문화칼럼)나의 추억
  • 강문칠 기자
  • 승인 2012.08.3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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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칠(전 제주예총회장,음악평론가.작곡가)


 

 

성산포하고 나는 어린 시절 보터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성산읍 시흥초등학교가 나의 모교일 뿐만 아니라, 성산의 바로 옆면인 표선면 성읍리가 나의 고향이어서 성산포와 표선은 나의 인생에 있어 언제나 나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나의 마음의 고향이면서 실재적인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곳을 자주 방문하기도 하면서 그 일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는 서귀포 중학교를, 고등학교는 제주시에 있는 오현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나는 성산포를 종종 다녔던 기억이 있다. 방학이 되면 친구가 그리워, 만나고 싶은 생각에 시흥을 다녔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는 동창들이 주관하여 학예회를 한다기에 며칠을 그곳에 머물면서 지내기도 하였다.

그 후, 나는 대구에 소재한 음악대학을 다니게 되었고, 군대 생활도 육지에서 보내었다. 육지를 다닐적 마다 성산포 부두에서 출발하고 도착하는 배를 타서 언제나 성산포를 경유 하였다.

그때마다 일출봉 언덕에는 리라재단에서 운영하는 성산포 호텔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언제나처럼 한산한 2층에 찻집(커피 숍)이 있어서 나는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곤 했다.

 

서쪽 창가에 앉아 밖을 내어다 보면, 시원하게 펼쳐지는 광경에 내 마음이 감격해 했고, 저 멀리 한라산 정상이 까마득히 보이고 겨울이면 눈 덮인 한라 정상과 산들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던 시절, 그러한 자연을 볼 수 있어서 그곳을 자주 찾았던 장소였던 것이다.

그 후 대학을 다니면서 겨울 방학에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그곳을 찾았다.

아침에 그곳을 가면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오곤 하였는데, 호텔만이 아니라, 일출봉 정상과 분화구, 일출봉 동쪽 아래에 있는 바다로 자리를 옮기고, 모래사장을 밟고 자주 모래사장 끝에를 찾곤 했다.

간혹 소라나 문어를 사서 소주를 마시던 일, 성산포에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암울한 시대와 미래를 위한 대화를 했던 일들, 성산포 마을을 걷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일출봉에서 내려와 오른쪽을 가면 파출소와 부두가 나온다. 부두를 돌아 또 다시 돌아와 온 길을 돌아가면 성산포를 빠져 나오게 되고, 잠시 일출봉의 서쪽 부분 오른쪽 면을 볼 수 있는 바다 쪽으로 자리를 옮겨 휴식 겸 시간을 보내면 성산포에서의 하루는 끝이 나는 셈이다. 그러나 매일 얼굴을 달리하는 성산포와 일출봉의 장면에 끌려 자주 그곳을 찾았던 시절,


그렇게 성산포는 청소년과 청년기에 접어든 나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추억과 낭만, 이상의 모습들을 그려 준 장소이다. 때로는 방황기의 안식처로, 처절하게 아픈 젊음의 위로와 돌파구로서 성산포는 그렇게 나를 위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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