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강정 바닷가를 가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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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강정 바닷가를 가보셨나요?
  • 윤용택
  • 승인 2010.04.03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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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택(제주대 철학과 교수)


 

윤용택(제주대 철학과 교수)
강정마을이 제주지역 갈등의 중심으로 된지 어언 만 3년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해군기지 찬반을 떠나서 해군기지예정지인 강정바닷가를 속속들이 돌아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환경부장관 등은 그곳이 어떤 곳인지 거의 모를 것이다. 도지사, 부지사, 서귀포시장도 그곳을 직접 걸어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기야 강정주민들조차도 섯동네 사람은 개구럼비코지와 진소깍에 잘 가지 않고, 동동네 사람은 빈녀코지와 정의논깍에 잘 가지 않는다. 그리고 섯동네 사람들은 중덕의 할망물을 잘 모르고 동동네 사람들은 꿩망앞의 할망물을 잘 모른다.



필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강정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강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강정마을이 해군기지예정지로 떠오르고 나서야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선고를 받은 어머니를 찾는 자식처럼, 뒤늦게 고향을 찾게 되었다.



틈만 나면 강정으로 갔다. 강정에 가면 언제나 큰내와 아끈내가 반겨주었고, 중덕과 개구럼비 바당이 맞아주었다. 거기에 있는 냇물, 파도, 바위, 연못, 물새, 붉은발말똥게, 들꽃, 그리고 펄럭이는 깃발들은 하나같이 "나 여기 있어!, 나 아직도 이렇게 살아 있어! 하지만 어쩌면 앞으로 영영 날 보지 못할지도 몰라, 그러니 나를 잘 기억하고 기록해둬!" 라고 소리를 쳤다.



강정의 주인은 사람만이 아니었고, 강정에 살아있는 것들은 동식물만이 아니었다. 강정의 바다와 냇물과 바위들도 내게로 말을 걸어왔고, 때로는 강정사람들도 강정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 은어와 원앙이 노니는 큰내와 아끈내, 모세의 기적이 매일 두 차례씩 일어나는 썩은섬, 물 아래엔 연산호가 군락을 이루고 뭍에는 천태만상의 넓적바위가 펼쳐진 중덕바닷가, 제주섬에 그러한 강정마을이 있다는 것은 제주섬의 행운이다. 하여 옛 제주사람들은 '1강정, 2번내[화순], 3도원[신도]'이라 하여 강정마을을 제주섬 최고의 마을로 쳤다.



2006년 5월에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되었던 강정마을이 일 년만에 난데없이 해군기지예정부지로 선정되면서 400여년간 한 가족처럼 살아왔던 마을 공동체가 깨지게 되었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해군기지예정지인 중덕바닷가에 서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자 해양부 생태계보전지역이고, 환경부 천연보호구역이자 도립해양공원인 섶섬, 문섬, 범섬, 썩은섬 등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온다. 그리고 강정바닷가는 연산호군락지로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442호로 지정되었고 주변은 절대보전지역이다.

 

강정바닷가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제주올레 제7코스에 속해 있지만 정말 아름다운 냇깍, 너븐덕, 개구럼비, 모살덕, 진소깍 등은 올레코스에서 제외되어 있다. 그나마 중덕을 지나가는 올레꾼들도 걷는 데 바빠서 그곳에 그토록 아름다운 연못들과 기기묘묘한 넙적바위들은 있는지 모르고 지나친다.



우리나라 최고의 수중생태계와 해안경관을 파괴하는 2000미터가 넘는 방파제를 건설하려면서 제주도정에서는 제주섬이 세계7대경관에 선정되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만물상을 옮겨 놓은 너븐덕, 개구럼비, 모살덕, 진소깍, 중덕 등의 주상절리와 바위들을 무참히 깨부수고 매립하려면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를 운운하고 있다.

 

넓적바위 위에 연못들이 즐비하고 멸종위기야생동물인 붉은발말똥게가 서식하는 중덕바닷가를 6만평이나 매립하려면서 람사습지 최다 보유지역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면서 세계환경보전총회(WCC)를 개최하려 하고, 세계환경수도를 꿈꾸고 있다.
 


위정자들이여, 세계 7대경관, 세계지질공원, 람사르습지, 세계환경수도를 이야기 하려거든 강정바닷가를 먼저 돌아보라. 그곳이야말로 세계지질공원과 람사르습지의 대상임을 알게 되고, 그곳을 파괴하면서 세계7대경관 등재를 호소하고 세계환경수도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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