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식량 체계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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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식량 체계의 덫
  • 김종덕
  • 승인 2013.10.2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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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 경남대 심리사회학부 교수)

 

우리가 먹는 먹을거리는 일정한 틀에 의해 생산, 가공, 유통, 분배가 규정되는데 이러한 틀을 식량체계라 한다. 식량체계는 식품 체인, 식량 경제와는 다른 차원을 나타낸다.

식품체인은 식품과 관련된 요소를 일직선상으로 나열하고, 식품경제는 지나치게 경제적인 측면만 나타낸다. 이에 비해, 식량 체계는 식량의 생산, 가공, 유통, 분배(판매) 등을 모두 포괄하는 하나의 체계를 지칭한다.

식량체계는 식량의 생산, 가공, 유통, 분배를 생물적 측면—경제적정치적 측면—사회적—문화적 측면에서 상호 관련 하에 파악할 수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식량체계의 개념은 먹을거리에 대해 기능적 접근이 아니라 통합적이고 전체적 접근을 할 수 있게 한다.현재 우리의 먹을거리 대부분을 생산하고, 가공하고, 유통 및 분배를 하고 있는 식량체계는세계식량체계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생산과 관련하여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의 비율이 낮고, 생산이 고도로 전문화되고, 규모의 경제를 특징으로 한다.

둘째,지역 시장이 아니라 세계시장을 위해 대규모로 식량 생산이 이루어진다. 그 지역의 기후나환경, 토양 등에 맞는,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던 작물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이윤이 많이 남는 작물이 재배된다. 생산자는 누가 먹을지 모르는 채로 식량을 생산한다. 특정인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위해 생산한다.

셋째, 생산자는 생산물 대부분을 유통업체에 판매한다. 경쟁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산업형 농업의 확산 때문에 영농에 종자, 농기계, 농약, 비료 등에 대한 수요가 많아져, 이를 공급하는 농기업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많은생산물이 가공되어 공급되므로 식품 산업 등의 발전이 이루어진다. 유통과 관련해서는 유통이 지역이 아니라 국제적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면서 먹을거리의 이동 거리 또한 길어진다.

더 많은 이윤이 보장된다면, 장거리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시장을 이용하기 때문이다.세계 식량 체계는 전 세계에 값싼 농산물을 대규모로 공급하고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지만, 여러 측면에서 지역에 식량 공급을 불안하게 만든다.

우선 세계의 정치경제가 안정적일 때 먹을거리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만, 천재지변, 원유가 상승, 곡물가 상승 등의시기에 공급이 잘 안 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세계 식량 체계에서는 농업 생산이 지역의 수요가 아닌 세계 시장의 논리에 좌우된다. 개발도상국의 농민들은 농기업이 필요로 하고, 농기업이 요구하는 품종을 재배한다. 그리하여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 농민들이 기본 식량인주곡 경작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이들 국가에서는 주곡을 지역 생산보다는 외부 생산에 의존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주곡의 안정적 공급이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셋째, 세계 식량 체계의 생산 방식이 식량 생산량의 저하를 가져오고, 이것이 지역의 식량보장을 위협하고 있다. 세계 식량 체계에서 지배적인 형태인 산업형 농업은 소수 종자에 의존한다.

종자에 문제가 생길 경우 대규모 기근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세계 식량 체계에서는 규모의 경제에 의해 식량이 생산된다.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단작 재배의 작물은 병충해에 약하고, 치명적일 수 있다.

단작 재배로 그 품종의 생산량은 늘어나지만, 여러 품종을윤작하여 심을 때보다 전체 생산량은 떨어진다. 단작재배 생산 방식은 생산량을 줄여 결과적으로 식량 공급을 줄이며, 지역의 식량 보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넷째, 세계 식량 체계에서 이루어진 식량의 상품화 또한 지역의 식량 보장을 약화시킨다. 세계 식량 체계에서는 식량이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이 되었다.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식량 또한 단지 “상품”에 불과한 것이다. 식량이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이기 때문에 식량을 살 만큼 돈이 없거나, 시장에서 식량 공급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서는 식량이 부족해지거나 굶주리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 국가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식량이 상품화가 되어 식량 공급과 소비를 국가 영역이 아니라 시장 영역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가는 보통 사후 처방책으로 복지 정책을 통해 식량 부족이나 굶주림 문제에 접근한다. 국가의 지원은 실제로 필요한 부분을 충족시키는 데는 크게 미흡하다.

식량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국가 복지 이외에 민간단체의 지원 등을 통해 식량 공급이 일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것 역시 사후 조치이고, 필요량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결국 세계 식량 체계에서 식량의 상품화는 식량 보장에 대한 국가의 소극적 대응을 정당화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세계식량체계는 이러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지역식량체계가 등장했다. 지역 식량 체계에서는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식량체계의 주체이고, 먹을거리를통제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되어 있는 가운데, 생산자가 지역 소비자를 위해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소비자는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구입한다. 지역 식량 체계에서는 지역의 특징이 반영된 먹을거리가 생산되고, 농민들은 판매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믿을 수 있고, 신선하고 건강에 좋은 농산물을 섭취할 수 있다.

음식시민으로서 우리는 세계식량체계의 덫을 인식하고, 우리 농업을 살리고, 먹을거리 안전을 보장케 하는 지역 식량체계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김종덕 교수는


   
▲ 김종덕 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경남대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경남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94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객원교수로 재직하는 중에 슬로푸드 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글과 강의, 인터뷰 등의 활동으로 우리나라에 슬로푸드 운동을 알리고 있다.

2002년 한국인 최초로 ‘국제 슬로푸드 운동 시상식’의 심사위원으로 초빙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저서 및 역서로는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 등 다수가 있으며 현재 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으로 한국슬로푸드운동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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