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식량권과 국가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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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식량권과 국가의 의무
  • 김종덕
  • 승인 2013.10.2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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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사람에게 식량은 생존의 필수품이다. 누구라도 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식량은 다른 필수품과 차원이 다르며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 인권으로 식량권이 처음 공표된 것은 1948년 국제연합(UN)의 인권선언에서이다.

UN 인권선언의 제25조 1항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식량, 의복, 주택, 의료, 필수적인 사회 서비스 등을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가지며, 실업, 질병, 장애, 배우자 사별, 노령, 그 밖에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생계상의 문제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1948년의 UN 인권선언은 그냥 선언이지 식량권의 보장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식량권의 보장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1966년 제안되어 1976년 발효된 UN 경제·문화·사회적 권리에 대한 국제 규약 11조 1, 2항이다.

이 국제규약에서 “국가는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보편적인 기본권을 인정하고, 개별적으로나 국제협력을 통해 필요한 특정 프로그램을 포함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함으로써, 국가는 개인의 식량권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실천을 통해 그것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1996년 세계식량보장 로마선언 및 세계식량정상회의 행동계획은 모든 사람들이 기아로부터 벗어나는 근본적 권리와 적절한 식량권에 맞추어 안전하고 영양 있는 식량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또 “모든 인권과 근본적 자유의 보호와 촉진이 모든 사람에게 지속가능한 식량보장을 성취하는데 필수적”임을 분명히 했다.

1999년에 UN 경제사회이사회의 경제·사회·문화권 위원회에서 조약상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이행하고 보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채택한 일반논평의 제12항은 “적절한 식량에 관한 권리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개별적·집단적으로 적절한 식량 또는 그것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에 언제든지 물리적․경제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될 때 실현된다.”고 적고 있다.

UN FAO는 적절한 식량권을 식량의 적절성, 접근성, 지속가능성 등 세 측면으로 나누어 규정하고 있다. 식량의 적절성은 영양과 안전에 적합해야 할 뿐 아니라, 문화적인 기준이나 선호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 의하면, 이슬람교도에게 돼지고기의 공급은 식량의 적절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식량접근도 물리적, 경제적인 기준의 충족이외에 존엄성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자비나 시혜의 형태로 제공되어 식량접근에 존엄성이 유지되지 않으면, 적절한 식량권이 침해된 것으로 본다. 식량의 지속가능성도 생태적, 경제적 기준 이외에 사회적 기준이 함께 제시되고 있다.

식량권은 개인이 권리의 보유자이며 국가는 그것을 보장하는 실체이므로, 개인의 식량권에 대응해서 국가는 의무를 지게 되는 바, 국가가 지는 의무의 내용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는 존중이다. 국가는 적절한 식량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보호이다. 국가는 국민의 적절한 식량 접근권이 제삼자에 의해 박탈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충족이다. 국가는 개인이 적절한 식량 취득에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 주며, 식량 취득이 어려운 사람에게 안전망을 제공하는 구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식량권은 UN의 인권선언과 이후 UN 협약 등에서 기본적 인권으로 발전하고, 자리 잡았다. 그렇지만 개별 국가는 식량권 보장의 실질적인 대행자이기 때문에, UN 협약에 조인한 회원국이라고 하더라도 국가의 법에서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법률에 식량권과 식량보장에 관한 권리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을 때 재판가능성이 확보될 실질적 근거가 마련된다. 일부 국가에서는 식량권을 국가의 법에 포함시켰지만, 우리나라는 식량권을 법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다만 헌법 제34조 ①항의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규정에서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식량권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UN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권리에 대한 국제 규약” 11조 1, 2항에 1990년 가입함으로써 국제적인 약속을 통해 간접적으로 국민들의 식량권을 인정하고 있다.

식량은 개인의 생존 그리고 생활에 절대적이기 때문에, 식량권이 보장되어야 안전하고 적절한 식량 접근이 허용됨으로써 안정적인 인간다운 삶을 향유할 수 있다.

개인에게 식량권이 갖는 중요성은 개인이 적절한 음식을 향유하지 못할 때 생기는 부정적 결과들을 보면 더 극적으로 드러난다. 식량이 장기간 공급되지 않아 궁극적으로는 사망하게 되는 상황은 논외로 하더라도, 장기간 지속된 굶주림 상태가 신체적·정신적으로 심각한 상태를 야기한다.

개인의 식량권 보장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인권이 갖는 속성 때문이다. 포괄적인 인권의 하나로서 식량권의 보장여부는 다른 인권의 보장여부와 맞물리게 된다. 예컨대, 적절한 식량에 대한 접근의 결여는 건강, 고용, 자녀출산과 양육 및 교육 등과 관련된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이처럼 식량권은 단지 선언적 권리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과 다른 인권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따라서 국가가 우리의 식량권을 인정하고,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도록 하는데 국민들의 식량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식량권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종덕 교수는


   
▲ 김종덕 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경남대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경남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94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객원교수로 재직하는 중에 슬로푸드 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글과 강의, 인터뷰 등의 활동으로 우리나라에 슬로푸드 운동을 알리고 있다.

2002년 한국인 최초로 ‘국제 슬로푸드 운동 시상식’의 심사위원으로 초빙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저서 및 역서로는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 등 다수가 있으며 현재 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으로 한국슬로푸드운동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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