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라이프에서 찾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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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라이프에서 찾는 행복
  • 김종덕
  • 승인 2013.10.2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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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얼마 전 재미교포가 서울에 와서 서울 사람들의 생활을 보고 쓴 글 “서울아 잠 좀 자자”를 읽은 적이 있다. 낮 밤 가리지 않고 바쁘게 살아가는 서울 사람들의 삶을 보고, 안타까움에서 적은 글이었다.

필자는 자정이 다 된 시간에 2호선 교대역에서 3호선 전철을 바꿔 타 본적이 있는데, 그 시간에 지하철에 그렇게 사람이 많다는 데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국제 수면 통계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잠을 가장 적게 자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온전한 사람이라면, 낮에는 밖에서 활동하지만, 밤에는 집에 가서 쉬는 것이 보통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바쁘게 움직이고, 집에 가서 쉬지 못하는 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에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구조나 문화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 빨리”라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빨리 빨리가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빨리 빨리 움직이는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단기간에 압축적 경제성장을 하면서 빠른 성과가 사회의 중요한 가치가 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동안 개인이나 조직에 대한 평가가 빠른 성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빠름 여부는 개인의 출세나 성공과 관련하여 중요한 평가기준이 되었다. 게다가 사회복지가 상대적으로 빈약하여 개인의 실패를 받아줄 사회적 안전망이 없어 개인들은 남보다 더 많은 노력과 빠른 움직임을 통해 살아가는 방식을 배웠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빨리 빨리에 익숙해졌다. 다른 나라에 거의 없는 입시전쟁, 취업전쟁이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자리했고, 사람들이 전투하듯이 경쟁적 삶을 살고 있다.

빠른 성장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고, 이전에 누릴 수 없는 편리함과 간편함을 가져왔다. 보다 많은 물건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자동차 등을 통해 이동도 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지 않고,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서도 식사가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빠른 성장은 이에 못지않게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빠른 성장은 사람들 간에 끊임없는 경쟁을 가져왔는데, 그러한 경쟁은 사람들 사이에 신뢰나 정이 사라지도록 하고 불신이 커지게 했다.

또 학업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초중고생들을 자살로 몰고 있다. 다른 나라에 없는 과로사가 많은 것도 끊임없는 경쟁과 관련이 있다. 또 연령이나 계층에 관계없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 지수가 낮은 것도 끝없는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와 무관하지 않다.

빨리 빨리 그리고 분주한 생활 때문에 생기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느림에 기초한 슬로라이프의 삶이 필요하다. 그동안 빨리 빨리를 강조하는 문화가 지배적인 가운데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느린 것을 게으른 것과 혼동하고 있다. 하지만 느린 것은 게으른 것과 다르다.

느린 것은 빠른 것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느림은 빠른 속도를 중시하고, 속도의 광기에 빠져든 사회가 주목해야할 중요한 가치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느림은 그 자체로 좋은 점을 가지고 있다.

낫의 경우 날을 천천히 세우면, 그 낫의 날은 오래가고 따라서 오래 사용할 수 있다. 오랜 기간에 맺어진 사랑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어렵게 그리고 오랫동안 번 돈은 오랫동안 남아 있는 법이다.

슬로라이프는 우리 사회의 도처에 자리하고 있는 빨리 빨리의 부작용과 병폐를 치유한다.그것은 우리 사회가 거품에 들떠 있게 하지 않고,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보다 인간답게 살게 한다. 슬로라이프는 남을 제치고 자기만 아는 경쟁적인 삶에서 벗어나 남들과 더불어 살게 한다. 이는 사회가 원만하게 유지되는데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근래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슬로라이프의 순기능에 주목하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천천히 생각하면서 걷는 모임이 생겨나고, 패스트푸드가 아닌 슬로푸드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속독이 아니라 소리 내어 읽는 슬로 독서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또 도시에서 벗어나 귀촌해 농촌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빨리 빨리에서 벗어난 슬로라이프를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일을 빨리 빨리 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시간을 아끼고, 남는 시간을 다른 데에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은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기계나 로봇이 아니다. 사람으로서 존엄을 누리려면 기계의 속도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에 저항하고,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데 필요한 것이 슬로라이프다. 이제 정신없이 돌아가는 빨리 빨리의 생활에서 벗어나 슬로라이프를 누려보자.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차를 이용하지 말고 걸어보자. 걸으면 옆 사람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주변에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생각도 할 수 있다.

패스트푸드나 냉동식품의 섭취를 삼가고, 가족과 함께 집에서 정성을 드려 음식을 만들어 먹되, 먹을거리를 생산한 사람을 생각하고, 천천히 음식의 맛을 즐기면서 먹어보자. 제대로 된 음식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된다.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의 수고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대형마트에 가서 원스톱 쇼핑을 하는 대신 재래시장에 가서 쇼핑을 하자.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들을 만나 풋풋한 정을 나눌 수 있다. 주변의 텃밭이나 아파트 베란다에서 상추 등 채소를 키우면, 생명의 신기함에 접할 수 있고, 신선한 채소도 즐길 수 있다. 자녀들과 함께 하면 자녀들의 인성발전에도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슬로라이프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 이유는 슬로라이프로 살게 되면 이제까지 보다 더 건강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고, 남을 더 배려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슬로라이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슬로라이프는 자원의 낭비를 줄여 환경파괴를 막고, 지구온난화를 완화하여 지구의 지속가능성에도 기여한다. 우리가 쓰는 자원은 우리의 후손에게 빌려 쓰는 것으로 본다면, 슬로라이프는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처럼 슬로라이프로 살게 되면, 자신의 삶이 달라지고, 주변 사람들 그리고 지구의 앞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슬로라이프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몸소 실천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슬로라이프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지향할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김종덕 교수는


   
▲ 김종덕 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경남대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경남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94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객원교수로 재직하는 중에 슬로푸드 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글과 강의, 인터뷰 등의 활동으로 우리나라에 슬로푸드 운동을 알리고 있다.

2002년 한국인 최초로 ‘국제 슬로푸드 운동 시상식’의 심사위원으로 초빙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저서 및 역서로는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 등 다수가 있으며 현재 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으로 한국슬로푸드운동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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