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은 제주사람과 닮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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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은 제주사람과 닮았더라.”
  • 강봉수 제주시공보실 공보담당
  • 승인 2014.07.0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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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수가 찾은 돌챙이 조창옥 옹의 '제주 돌집, 돌담 쌓기'

 
“돌 역사가 가장 중노동이라, 약한 놈은 못한다.”


여전히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갖고 있는 조창옥(23년생) 옹은 반평생을 돌담과 집담을 쌓는 석공(돌챙이)로 살아왔다. 소일거리로 밭담이나 산담을 쌓아주다 새마을운동으로 초가집을 허물어 돌집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돌챙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조창옥 옹은 아직도 예전에 돌챙이 시절에 쓰던 도구를 갖고 있다. 쇠로 만들었지만 군데군데 이가 빠지고 닳아 없어져 고단했던 지난 세월을 보여준다.

 

조창옥 옹

작업장은 올레길 14코스에 위치해 있는 한림읍 옹포마을‘바른물’용천수. 오랜 세월 방치되었던 이곳에서 시멘트로 덧 씌워진 곳을 제주 돌로 새롭게 정비하고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일을 조창옥 옹의 아들 조환진(74년생) 씨와 김창원씨(67년생)가 하고 있다.

 

아들이 일을 잘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본인 집을 직접 돌로 짓는 것을 도와줬는데 3년이 걸렸어. 그렇게 하면서 돌 다루는 것을 배웠지.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이야”라고 한다. 그러면서 집을 다 짓고 나자 주위에서 돌로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자식도 돌챙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서양화를 전공했다는 조환진 씨는 “해질녘 제주 돌담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이런 그림과 사진을 찍고 다녔다”며, 그러다 제주 돌의 매력에 푹 빠져 돌챙이 일까지 한다며 웃는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업을 잇고 있는 셈이다.

 

 

요즘은 기존에 돌로 만들어진 펜션을 보수하거나, 울타리를 쌓아주기도 한다. 몇 년 전 중문초등학교 교문을 주상절리모양으로 만드는 작업도 했다. 직접 바다에 가서 주상절리 크기도 제고 구상을 해서 자연석을 깎아 만들었다. 이윤을 생각하면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지만 재미있었다고 한다.

 

조환진 씨는 “그래도 참 재미있었어요, 옛 돌담을 헐다 보니 담 속에는 옛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져 있더군요. 과자봉지며, 전하지 못한 편지까지 마치 타임캡슐을 여는 느낌이었습니다.”라고 했다.

 

이렇듯 그가 만드는 돌담은 옛것을 닮았지만 그대로가 아니다. 자연의 모습을 담아내지만 돌담 사이에 다양한 조각을 넣어서 새로운 구경거리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조각은 김창원 씨가 맡아서 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다양한 모양의 돌을 아귀가 딱 들어맞게 쌓는지 궁금해 하자 조창옥 옹은 “돌을 오래 만지다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한다. 옆에 있던 조환진 씨도 자신은 아직도 돌을 올렸다 내려놓는 일이 많지만, 아버지 지시대로 하면 새로 쌓아야 하는 일은 없다며 세월을 이길 수는 없다고 했다.

 

조환진 씨는 “제주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집 울타리는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돌 다루는 솜씨가 있었다”며 지금은 가르쳐 주는 곳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이면 집근처나 일하는 현장에서 조건 없이 돌 쌓는 법을 배워주고 있기도 하다.

 

세무서에 초가집 보수, 석공사, 조경으로 사업자등록을 낸 조환진 씨에게는 3명의 스승이 있었다. 생각하는 정원에서는 반듯하게 쌓는 방법을, 김영갑 사진작가로부터는 주위와 어울리는 자연스러움을 배웠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는 무조건 튼튼하게 쌓는 방법을 배웠다.

 

 

이렇게 배움을 통해 제주 돌담만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 복원되는 제주답지 못한 성(城)이나 문화재를 보면 너무 답답하다고 한다.

 

김창원 씨 또한 “제주의 돌집이 타 지역 사람들에게 팔리고, 그 곳에서 수익을 내는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라며 지역사람들이 제주문화의 혜택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돌챙이 일을 하다 보니 제주 돌담은 제주사람과 참 많이 닮은 것 같다고 말한다. “투박하고 언뜻 거칠어 보이기도 하지만 자연스럽지 않나요? 막히지 않고 여유롭잖아요.”

 


돌챙이는 돌을 아주 잘 다루는 사람으로 ‘돌’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땅을 이용하기 위해 밭 가운데 큰 바위나 암석을 깨는 것은 물론 산담·밭담·집축대 등을 쌓는 일을 했다. 이 같은 일을 하는 석공들은 마을마다 있어서 삯을 받고 일을 했다. 솜씨 좋은 돌챙이는 이웃마을에서까지 의뢰가 들어와 품을 팔기도 했다.

 

큰 암석을 잘게 깨기 위해서는 막게라는 작은 쇠망치를 들고 끌로 작은 구멍을 낸 다음 송곳 이처럼 생긴 야를 구멍에 끼워 사진처럼 메(큰 헤머 망치)를 내리쳐 암석을 깼다. 이때 야를 돌구멍에 박아 넣기 위해 돌구멍에 물을 뿌리거나 야가 튕겨나지 않도록 볏짚이나 새끼줄을 풀어 야의 이빨부분을 감싸 돌구멍에 끼웠다.

 

사진에는 야를 8개정도 박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메로 각각 적당히 후려쳐 박은 후 그간의 쌓은 노하우로 하나 또는 두세 개 야를 집중적으로 내리 쳐 바위를 쪼개었다.

 

돌챙이는 이렇게 바위를 잘게 조각내는 고된 일과 무덤의 산담, 밭과 밭 사이 돌담, 올레길 축담, 방사탑, 초가집의 골격을 이루는 집축대 등 돌을 쌓는 일을 전담했다.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된 제주 밭돌담도 이들의 땀이 깊게 배어 있다. 물론 밭주인이 경작을 하는 과정에서 골라낸 돌들을 쌓는 경우도 많았지만, 전문 돌챙이들이 쌓은 돌담은 튼튼해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돌챙이들의 활약은 이제 자취를 감추었다. 불과 40여 년 전의 일인데도 말이다.

 

강봉수 제주시 공보실 공보담당

 자료제공=강봉수 제주시 공보실 공보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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