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 이렇게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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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녀 이렇게 살아왔다.”
  • 김태홍 기자
  • 승인 2014.10.30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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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순 제주해녀, 억척스런 해녀 근성이면 못할 게 없다

고경순 씨

구글은 30일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350여점의 제주 문화 유산을 구글 지도 (Google Cultural Institute)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했다.

 

구글은 이날 제주 해녀 전통에 대한 4 가지 주제의 온라인 전시를 제공했다. 구글은 제주도 해녀 수가 점점 줄고 있고, 현재 활동 중인 해녀 대부분이 평균 연령 60세 이상으로 다음 세대를 위해 해녀만의 독특한 전통을 기록, 보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제주해녀대표로 참석한 고경순씨(65 서귀포시)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바다에 뛰어들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고 씨는 “50년전 제 나이 열다섯 살 때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는 바람에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물질하는 어머니를 도우면서 자연스레 물질을 배우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요즘은 해녀복(수트)에 오리발도 있지만 그때는 면 옷 하나만 입고 추운 날에도 미역을 따러 바다에 들어가는데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무서워 울기도 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고 씨는 “그래도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큰 딸 도리라 생각하며 바다에 뛰어 들었다”며 “그해 겨울 바다에 뛰어 들어갔다 나와 불턱 구석자리에 앉아 몸을 녹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 하다”고 했다.

 

고 씨는 “세상이 발전하면서 해녀의 생활도 조금은 나아졌던 것 같다”며 “시집을 갈 때 쯤 1970년대에 고무 해녀복(스트)을 입게 되어 좀더 많은 시간을 바닷물에서 작업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고 씨는 “도청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는 탈의실을 지어줬던 것이 이 즈음일 것”이라며 “덕분에 물질 끝나고 나서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일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몸에 꼭 끼는 고무복을 입고 대 여섯시간 바다에서 작업하다보면 많이 피곤해 날마다 두통약(뇌선)으로 대체했다”며 “또한 바닷물에 오래 있다 보면 미각이 둔해져 밥맛을 잃어 살이 빠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잠수시에는 고무찰흙으로 귓구멍을 막고 저너머에 보이는 전복을 따지 못하고 나오기도 했다”며 “어떤 때는 물살이 쎄서, 어떤때는 채취할 해산물이 별로 보이지 않아 태왁 망사리를 가득 채우고 나오지 못하는 날이면 힘이 빠지기도 했다”고 했다.

 

고 씨는 “요즘은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해녀들의 이야기를 텔레비전전에서 접할때마다 눈물을 훔치게 된다”며 “가끔은 그만 둘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래도 해녀생활이 살림살이를 조금은 낮게 하고, 일하는 재미가 있어 계속하게 된다”고 말했다.

 

고 씨는 “제가 어릴적 미역을 판돈으로 용돈도 하고, 공책을 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결혼하고 나서, 소라와 전복을 따서 판돈으로 시장도 보고. 아이들에게 찐빵도 사줄 여유가 있었다”고 했다.

 

고 씨는 “물질과 밀감밭 검질(김) 매며 키웠던 자식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서 사는 것을 보면서 당시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며 “지금은 해녀들을 예전같이 많이 볼 수 없다며 이는 나 같은 어머니들이 자식에 까지 이런 고생을 시킬 수 없어 못 시키는 것”이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태어나면서부터 억척같은 삶에 길들여진 탓일까. ‘생존’에 초점일 수밖에 없던 숙명에 힘겹거나 슬퍼도 고이 받아들여야 했다던 고 씨는 위안 받아야 할 기구한 운명인데도 자식 걱정에 미안한 마음만 감돌 뿐이었다.

 

60년 세월을 훌쩍 넘은 해녀의 삶이 지겹지도 않은지 “몸은 늙었지만 마음이 젊어서 남들이 (바다에)뛰어들면 따라가게 된다”던 고 씨의 억척근성은 그날의 배고픔의 서러움을 잊지 못하는 탓이었다.

 

한편 제주도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 해녀들은 좀녀, 잠수라고 불려 졌으며, 전 세계적으로 아주 희귀한 존재로 주목 받고 있다.

 

해녀들은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개척정신으로 전국 각처와 일본 등지로 원정을 가면서 제주 경제의 주역을 담당했던 제주 여성의 상징이다.

 

특히 제주의 해녀들은 1932년, 일제의 수탈에 맞서면서 권익보호를 위해 전국최대규모의 항일운동을 거행하며 자존의 역사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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