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제주초가집..이 정도는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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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제주초가집..이 정도는 돼야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5.02.0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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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포커스)문화재인 남원읍 신례리 양금석 가옥에 가 보니..

 

제주의 초가는 가족의 구성과 생활양식을 반영하는 전통적인 건축물이다.

바람이 많은 섬이라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슬기롭게 적응을 한 흔적이다.

수집이 편리한 억새 띠를 사용하는 등 제주민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초가는 보통 2칸에서 4칸집으로 구분이 되는데 울담 안에 배치된 집의 수에 따라 외거리집, 두거리집 , 네거리집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마주하는 두 채인 경우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로 부르며 부엌이 따로 있어서 한 식구일지라도 따로 취사를 했다.

이는 제주의 초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별한 주거 문화이며 양식이다.

 

 

제주도의 초가는 지난 1978년 민속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면서 역사적 가치와 건축학적 조명을 받았다.

애월읍 하가리에 문형행 가옥 외에 몇 채가 있으며 제주시 삼양동의 강운봉 가옥을 비롯하여 도내에 몇 곳이 있으나, 하나같이 폐허 처럼 방치가 된 상태지만 남원읍 신례리 양금석 가옥 만큼은 드물게(?) 관리와 보존이 잘 되고 있다.

초가집은 제주인의 삶의 이야기와 정이 담겨있으며 자연과 문화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돌담으로 집 둘레를 쌓고 좁은 마당의 한 쪽을 차지한 초가집의 모습은 소박하고 정겨운 제주인들의 삶의 터전을 말해준다.

과거 초가집들이 즐비하게 이어진 곳은 마을길이 골목이며 올레이고 집을 드나들면서는 언제나 돌담을 만나게 되었었다.

 

올레와 돌담이 있는 곳은 초가집이 있기에 제주의 정취가 묻어나기 마련이다.

다른 곳의 문화재 지정 가옥들도 보다 철저한 관리를 통해 이처럼 보존의 가치를 높일 것을 희망해 본다


남원읍 신례리의 양금석 가옥은 현재까지도 관리와 보존이 잘 이뤄지고 있는 대표적인 초가로 추정된다.

이 집은 양씨 종가댁으로 600여평의 대지에 안거리와 밖거리로 지어졌다.

안팎거리의 방은 네 개이며 툇마루와 상방이 셋이 배치가 되어 있어서 제주의 전통 초가 양식 중에서도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이 돼 있다.

또한 도 지정 민속자료(3-45호)로 지정됐으며 현재 가장 잘 보존이 된 가옥이기도 하다.

제주의 민속촌이나 민속마을, 박물관 등과는 달리 집터와 주변 등이 그대로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전통적인 실내 공간과 가옥 주변도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 제주 삶의 문화와 전통 양식을 확실하게 엿볼 수가 있다.

 

대대로 내려온 집터 주변은 현재 밀감밭이 있으며 특이하게도 동백나무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이 초가는 약 80여년 전에 지어졌다고 하며 현재 양씨는 주변 다른 집에 살고 있고 초가집에는 이주민이 거주를 하고 있는 상태.


이 양금석 초가는 마을길에서 지정가옥으로 들어가기전에 올레를 만나게 된다.

이곳 또한 제주의 전형적인 올레이다.

지금은 주택들과 골목의 확장 등으로 변화가 이뤄졌지만 양금석 가옥으로 가는 마지막 길은 작은 올레 그대로이다.

제철을 맞은 송악 열매와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고 기대와 희망을 실어 올레를 따라 천천히 들어간다.

떨어진 동백꽃이 결코 빠른 진입을 허락하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다.

 

 

한눈에 봐도 전형적인 제주의 초가 원형 그대로의 모습인 양금석 가옥.

안거리(안채)를 중심으로 주변은 소박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마당도 곱게 단장이 되어 있다.

초가의 뒷(南)편으로는 키가 큰 동백나무들이 울타리 구실을 하고 있으며 요란할 만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살금살금 들어가 집주변을 살피면서 기웃거려봤다.

행여 사람이 나와 있거나 인기척이 있으면 먼저 인사를 건네고 양해를 구하겠지만 새소리 외에는 너무나 조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먼저 소리를 지르며 이리 오너라! 게 누구 없느냐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밖거리(바깥채) 옆으로는 제주도의 옛 화장실인 통시가 보인다.

부분적으로는 다시 돌담을 둘렀겠지만 제주의 재래식 화장실 모습이 확실하다.

행여 도새기(돼지) 새끼라도 있는지 살피기 위해 조심조심 다가갔지만 돗우리와 함께 보존을 위해 그대로 놔둔 상태이다.

 

 

참 소박하고 여유있는 모습이다.

초가집 너머로 동백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서 바람막이 역할로도 최고이다.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제법 따스한 햇살이 비쳐지고 파란 하늘이 하얀 구름을 드리운 모습도 보인다.

추측컨데 동백나무들은 이곳 초가집 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보통은 쑥대낭(삼나무) 정도가 집 주변을 차지할 텐데 대부분이 동백나무라서 놀랐다.

 

안거리 앞에는 물팡이 있다.

원형을 유지한 상태이며 오래전 부터 사용을 하던 것으로 인위적인 시설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물팡은 제주 아낙네들이 물을 길어 나르던 물허벅을 올려놓는 곳이다.

행여 물허벅이 있으면 더 운치가 있으련만 상수도 시대에 일부러 올려 놓기에는 다소 부담이 되는 모양이다.

이를 대신하여 아직 시들지 않은 동백 가지가 화병에 꼽혀있고 작은 수반도 보인다.

 

 

확실히 사람이 살고 있다.

고무신을 대신하여 세련된 신발 몇 켤레가 문지방 아래에 놓여 있다.

아무래도 언바란스이지만 흥미롭게 보인다.

행여 셔터 소리가 크게 들릴까봐 얼른 누르고 도망 치듯 빠져 나왔다.


밖거리(바깥채)의 모습.

겨울 햇살이 흔적을 담는데 방해를 해서 걍 숯으로 칠해버렸다.

다소 초라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얼마 후 내부를 보는 행운이 이어지고서는 감탄과 놀라움으로 반전이 되었다.


서쪽 밀감 과수원에서 바라보면 비로소 ㄷ자형의 가옥의 형태를 잘 볼 수가 있다.

담장 옆에는 매화가 봉우리를 맺혀서 세상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일부는 꽃망울을 터뜨린 채 유혹을 하는데 아마 지금쯤은 대부분 개화를 했을 것 같다.

따뜻한 남쪽나라이면서 가옥 주변으로 들어오는 잔 바람을 막아주는 나무들이 있는데 어찌 느린 진행을 하겠는가.

 

겨우내 빛바랜 색으로 담장을 차지한 담쟁이넝쿨들도 제법 운치있게 보인다.

하절기를 전후한 시기에 이들을 만난다면 돌담을 곱게도 색칠할 텐데.....


얼마전 애월읍 하가리의 문형행 가옥에 들렀을 때와 비교가 된다.

초가의 지붕과 띠를 꼬와서 묶은 처마 위의 모습은 원형을 유지한 채 전통적인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붕을 덮은 띠는 엉이라고 부르는데 보통 1~3년에 한번씩 덧덮기를 한다.

오래된 지붕의 억새 띠는 일부 걷어내고 새것으로 바꾸게 되는 것이다.


내부를 볼 수 없는 상황이라 아쉬움 속에 돌아나오는데 올레의 끝지점 집에 붙은 문패가 양금석이다.

왠걸....

그렇다면 초가 가옥의 주인님과 같은 분이 아니겠는가.

실례를 무릅쓰고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가 실례합니다를 두세 번 외치니까 사람이 나온다.

그것도 주인이신 양금석 님이시다.

기꺼이 맞아주며 옥상에 올라가면 집터가 잘 보인다고 안내까지 해주는데 이런 영광과 행운이......

 

 

그리고는 내력을 이야기 해주셨다.

양 선생님은 올해 8순으로서 초가집은 할아버지 때 지어졌다고 하며 올해로 84년이 된 가옥이라고 한다.

또한 현재 초가에 살고 계신 분은 도시에서 내려온 이주민으로서 시인이며 조용한 터전을 찾은 것이 인연이 되어서,특별히 임대를 해주셨다고 한다.


옥상에 올라서도 고개를 쳐들어 바라봐야하는 동백은 그야말로 거목이다.

붉게 피어난 채로 곳곳에 물든 꽃은 전형적인 토종 동백나무임을 알게 해준다.

 

다시 초가 가옥으로 향했다.

직접 문을 열어 내부를 보여주고 설명까지 곁들이신다.

고래....

사람이 사는 가옥은 아니지만 안팎거리 사이에 있는 초가로서 예전에 고래를 골았던(콩이나 곡류를 빻던) 곳이다.

 

 

겉은 초가이지만 안은 복고풍의 장식품들과  실내 구조도 원형의 초가집 그대로라는 점이다.

마루에는 놀랍게도 부섭(옛 화로의 일종)이 보인다.

 

양선생님이 어렸을 적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하며 지금도 부섭에는 재가 남아 있고 작은 불씨도 보였다.

신발을 벗고 들어와 가까이서 확인을 하라고 배려를 했지만 한사코 거부한 채 멀리서 줌으로 담았다.

오름 탐방을 마친 후 지나는 길에 들른 상황이라 행여 발냄새라도 나면 안 되는 게 아닌가.(^^)

 

제주 초가의 재목은 가시낭(가시나무)이다.

원목 자치가 견고하고 튼튼하며 오래가는 재질이다.

오래된 나무들이지만 손으로 두드리니 아직도 쿵쿵 소리가 들리고 손등이 아프다.

 

 

기대도 주문도 없었는데 커피가 나왔다.

이제쯤은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미안하고 또 고마운 상태이다.

난간에 걸터 앉아 남향의 겨울 햇살을 받으며 마시는 커피 맛은 실로 일품이었다.

 문을 닫고 난간에 앉으신 양선생님이 셔터를 허락하신다.

"개방도 설명도 너무 감사합니다.

무병장수를 기원합니다~"

 

돌아서 나오다 바라본 한라산의 모습이 유난히도 아름답다.

오전 내내 구름층이 시기와 질투를 하며 어지럽히더니 초가집 구경을 나올 쯤 정상부의 설원 풍경이 열렸다.

참으로 의미 있고 보람 있는 발걸음이었다.

 

 
   

욕심이라면.....

진정으로

내가 살고 싶은 집이다 !

양금석 가옥은 민속문화재로 지정이 된 초가 중 유일하게 관리와 보존이 잘 된 곳이다.

여타의 다른 초가들도 행정이나 초가의 주인님께서 보완과 정비를 하여 짜임새 있는 보존과 개방이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제주에서 원형을 유지한 초가집은 민속문화재를 떠나서 문화관광자원의 기틀이기도 하다.

행여 머뭇거리다가 남은 집채들이 사라진다면 누구를 탓할 것인가.

외양간 고치는 기술 보다는 유비무환이 더 아름다운 것 아닌가.

(참고 : 양금석 가옥은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정당한 과정을 거쳐 거주하는 만큼 무단 출입시 사생활 침해 등 불편이 따를 수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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