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가르쳐준 우리들의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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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을 가르쳐준 우리들의 ‘대장’
  • 김지훈
  • 승인 2010.10.06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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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식 국장 영전에.... 김지훈 (제주언론인클럽 상임고문)

최현식 국장의 부고입니다. 격식대로 호칭하면 ‘선생’이 더 어울릴 것입니다. 더구나 원로작가가 아닙니까. ‘선생’이 맞지요.


저는 그 방면을 잘 모릅니다마는, 그분이 써 남긴 소설들은 ‘주옥같다’고들 합니다. 초기 소설 ‘협죽도’는 제주의 향토색을 크레파스화로 그려냈다는 평을 듣습니다. 그리고 말년에 쓴 소설들은 수묵화에 비교되곤 합니다. 제주문화, 특히 제주문학은 그분에게 큰 신세를 진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굳이 ‘최 국장’으로 호칭합니다. 우리들에게 그분은 영원히 ‘편집국장’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안 그렇겠습니까. 제주도에 일간지가 제주신문 하나 있던 시절, 그 제주신문의 편집국장을 16년간 지낸 분입니다.

16년은 긴 세월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최 국장’과 함께한 세월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16년이 마냥 아기자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군사정부 하에서였습니다. 계엄령이 잦았고 그때마다 검열을 당하며 신문을 만드는 수모를 견뎌야 했습니다. 기자가 끌려가 얻어터지기도 했지요. 그래도 편집국은 늘 화기애애했습니다.

시대를 한탄하고 속절없이 비분강개를 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뭐랄까요, 그래요, 그때 편집국은 낭만이 흘렀습니다.

파이프 담배향으로 편집국을 가득 채우며 신문과 인생을 논하는 격조 드높은 낭만주의자 ‘대장’ 아래서 부하들도 차츰 낭만 체질이 돼 갔습니다. 그리고 낭만을 아는 사람에게는 인생의 비참까지도 달콤쌉쌀하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우리는 그때를 낭만의 시절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주언론의 낭만주의는 낭만주의자 ‘최 국장’과 함께 영영 지나가 버렸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최 국장’의 낭만주의에 의하면, 기자는 이래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자는 무엇보다도 까는 직업인 거야. 그러나 까기만 하면 그건 깡패지. 까되, 가슴이 따뜻해야 해.”

가슴이 따뜻한 비판정신. 그것은 언론이 결코 잃지 말아야 할 일이 아닙니까. 실용주의가 국정지표가 돼 있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최 국장’의 부고가 제주언론의 낭만주의의 종언을 고하는 부음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름다운 사람,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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