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떠오른 걸 했지..보며 만든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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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떠오른 걸 했지..보며 만든 건 없어.."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5.06.08 2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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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제주토종 석공예 명장 장공익 선생에 들어 보니..
"도 '조례개정 문제..행안부 등 감면사례 찾는 중.." 밝혀

석공예 명장 장공익 선생

 

(속보)본지가 지난 7일 보도한 "명장(?),,금능석물원 임대료 못내 없앨 판.." 보도에 이어 취재한 내용입니다,
 

돌을 만지는 사람을 돌챙이라 부르며 그런 직업을 비하하던 시대도 있었지만 석공예 명장 장공익 선생(1931년생,84세)은 80평생 돌을 깎아 제주만의 토종 돌 작품을 만드는 한 길만을 걸어 왔다.

처음에는 중산간 지역에서 태어나 사는 덕에 한림까지 학교를 다니느라 줄곧 걸어 다니면서 중간중간 길 위에 널린 속돌(물에 뜨는 가벼운 화산석)을 주워 조각칼로 해녀를 만드는 작업이 그가 석공예를 자신의 세계로 이끌게 한 첫 작업이 됐다.

장공익 명장은 “처음에는 재미삼아 속돌로 작은 해녀를 만들었는데 누군가가 이를 베껴 만드는 모습을 보고는 남이 흉내 내지 못할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늘 머리에서 맴도는 작품을 만들었지. 누구의 작품을 보거나 그림으로 보며 작품을 만든 적은 없다”고 말하는 장공익 명장.

“지금도 만들 작품은 많지만 나이가 드니 예전처럼 잘 하지는 못한다”고 하면서도 “가족상 만큼은 꼭 하나 대작으로 만들고싶다”는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책에 사인하는 장공익 명장
지난 7일 금능석물원을 찾았을 때 아들인 장운봉 대표와 인터뷰 하는 도중에 불쑥 들어와 자리에 함께 앉더니 “내가 싸인해 줘야지..”하며 그의 작품을 담은 화보집에 노련한 솜씨로 자신의 이름과 돌하르방을 함께 그려 넣는 모습에서 따뜻한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명장의 여유가 넘쳐났다.

이어 돌아 본 금능석물원.

그야 말로 장공익 명장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요모조모 잘 꾸며 놓기도 했다.

불교에 대한 석상부터 제주도 신화에 나오는 설문대할망상과 작은 돌에 천가지의 얼굴을 그려놓은 천태만상 작품, 국외정상들에게 선물한 돌하르방은 물론 김녕사굴 전설을 그려낸 휼민상과 5백나한상 등 3천여점의 직접 손으로 만든 작품들이 아름답게 전시돼 있었다.

▲ 장공익 선생의 사인

특히 거대한 돌하르방상은 지금은 그렇게 큰 돌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작으로 남아 있다.

초가집에서 오순도순 살고 있는 가족과 그 옛날 통시모습도 익살스럽게 표현해 놓았고..

한 평생 제주도의 삶과 애환을 돌로 그려내며 석공예명장이란 칭호까지 받았지만 이런 그를 대하는 세상의 눈은 꼭 그렇게 아름답게만 보이지는 않는가 보다.

석물을 만들려면 돌을 사 와야 하고 이를 설치하는 것도 다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입장료 만으로는 여윳돈이 남아 있을 리 없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근근이 생업을 이어 오던 그는 최근 지난 10여년간 사용해 온 도유지 3천여평에 대한 임대료 일부를 내지 못해 급기야 제주도로부터 다시 임야로 원상복구시켜 놓으라는 청천벽력같은 거센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주차장을 팔아 일부는 갚았지만 아직도 1억원이 넘는 임대료가 남아 있는 상태다.

혹시 현재 공시지가 5%의 임대료를 2% 정도로 낮출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그동안 받아오던 입장료도 무료로 바꾸는 바람에 올해 들어서는 수입도 전혀 없게 됐다.

어쩌면 60여년을 일궈 온 금능석물원이라는 제주도의 보물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버린 것이다.

 선생이 다니는 모든 곳이 금능석물원에서는 모두 그의 안식처이다

이날 금능석물원을 돌아다니다가 기자는 장공익 명장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한번은 작업장에서, 한번은 불상 앞에서 비스듬히 누워 쉬고 있는 노옹을 보며 그는 절대로 이곳을 떠나지 못할 천상 금능석물원의 붙박이 주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금능석물원은 아들인 장운봉 배령이민예사(돌하르방기념품 판매) 대표가 뒤를 이어 받아 자연스럽게 석공예에 매진하고 있어 대를 잇고 있다.

장 대표는 스스로 “아버지에게는 60점 정도의 수준밖에 안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장공익 명장은 “내가 예전처럼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70점 이상은 주고 싶다”며 아들이며 제자인 그에게 깊은 애정과 믿음을 보내 주었다.

걱정이 돼서 금능석물원 문제에 대해 해결방법은 없는지 제주도청 세정담당관실로 문의를 해 보았다.

도 관계자는 “금능석물원 문제는 현재 조례 등을 개정해야 문제가 풀리기 때문에 당장은 해결하기가 어렵다”고 말하고 그러나 “행정안전부 등에도 사례가 있는지 알아보고 관련 규정을 찾아 임대료를 낮추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밝히고 있어 일말의 희망까지 다 사라진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평생의 그 노고를 어떤 말로 위안할 수 있으랴..

 

후학 또는 후손들에게 한 길을 가면 아니 한 우물을 파야 한다고 말해주기가 두려울 정도로 예술에의 길은 험난하기만 한 것인지..

돈 때문에..자기의 길을 가지 못하고 주저 앉아 버리는 세태에서 그래도 내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제주토종 장공익 명장의 길은 그가 예술혼을 다할 때까지..그리고 그 아들 그리고 그의 손자가 대를 이어 석공예의 길에서 성공이란 말이 나올 때까지 계속 되어야 한다.


금능석물원 문제는 도는 읍 관할이라며  책임을 미루고 있고, "도에서는 할 일이 전혀 없는 것이냐"고 물어보자 담당계장은 “나는 그 내용을 잘 모르고 담당하는 직원이  있다”며 직원에게 모든 책임을 미뤄버릴 정도로 무책임과 무성의가 어이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부끄러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태도도 제주도정에서는 시급히 개선돼야 할 과제다.

전시물을 모두 치우고 임야로 원상복구하라는 명령이 국가가 수여한 제주토종 석공예 명장에 대한 예의인지..또 다른 곳에서도 이와 같은 원희룡 제주도정의 상식 이하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장공익 선생의 아들인 장운봉 씨가 대를 잇고 있다


 (금능석물원 관련기사  계속 취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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