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과 함께 국제 새마을운동 연수원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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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과 함께 국제 새마을운동 연수원 만들어야”
  • 제주환경일보
  • 승인 2015.10.0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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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기획 류태영 박사(농촌·청소년미래재단 이사장)
“우리가 먼저 경험한 것 공유해 개도국 발전 이끌어야”

 

대한민국은 해방 직후 북한보다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반세기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이 어떻게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가 되었을까?

그 중 ‘하면 된다’라는 정신이 만들어낸 기적이 있다. 바로 새마을운동이다. 제70차 UN총회 기조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도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의 발판으로 새마을운동의 경험을 언급하며 “새마을운동이 각국의 특수성과 시대변화에 부합하는 글로벌 농촌개발전략과 국가발전 전략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1972년 대통령비서실 초대 새마을운동담당이었던 류태영 박사(현 농촌·청소년미래재단 이사장)를 만나 ‘지금 시대의 새마을운동’에 대해 들어봤다.

류태영 농촌·청소년미래재단 이사장.
 



- 새마을 운동 도입 배경은 어떻게 되나요?

“8.15 해방 이후의 우리 선배들은 이 나라를 어떻게 하면 부강한 나라로 만들 것인가 고심했습니다. 특히 故박정희 대통령은 공산업을 일으켜 경제발전의 체력을 든든히 이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국가적인 경제개발계획사업을 추진해 전체 국민소득을 단기간에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70년대 초 농촌에 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50년 만에 한반도에 큰 가뭄이 일어난 것입니다. 공산업이야 외국 기업이 자본과 원자재를 가져다 외국 기술로 만들어내면 가동은 되지만 농업은 말도 못하게 낙후됐습니다. 이 때 농촌 문제를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새마을운동의 효시 마을인 농촌이 부각됐습니다. 당시 경상북도 영일군 기계면 문성동 마을의 면장과 의용소방대장 등 마을 지도자들이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자발적 소득증대 사업을 벌였습니다.

이후 초가지붕 개량, 담장 개량, 부엌개량 등 사업이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 운동으로 추진됐습니다. 이것을 도지사를 통해 보고 받은 박 전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새마을 가꾸기 사업’인 농촌 개발 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게 됐습니다.”

 

- 새마을운동의 성공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개도국들이 당면한 과제는 삶의 기초, 즉 의식주입니다. 이번 UN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하셨듯이 새마을운동만으로 국가가 발전하거나 경제가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습니다. 국민들에게 ‘하면 된다(Can do spirit)’라는 정신을 넣어줬습니다.

새마을 운동은 첫째, 의식개혁 운동입니다. 가치관의 변화 운동으로서 근면·자조·협동 정신으로 무장시켰습니다. 둘째, 소득증대 운동입니다. 아무리 정신이 개조되더라도 수입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셋째, 환경개선 사업입니다.

아무리 소득이 늘어도 지출을 하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면 국가는 발전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민통합 운동입니다. 새마을운동은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 공장, 직장, 학교 등 온 국민들을 조직화하고 협력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 새마을운동을 전개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대통령 주도 아래 제게 전권을 줘서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대한발로 농촌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당시 청와대에서는 홍성철 정무수석(이후 통일부 장관)에게 농촌을 살릴 방법을 연구해 시행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습니다.

홍 정무수석은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마을을 비롯해 곳곳에서 새마을운동이 목표로 하는 활동상을 보고 비결이 궁금해졌고 마을 주민들을 통해 저의 농촌부흥특강 이후 동네가 발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저를 청와대로 초청했습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담당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특강을 시작으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어졌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곧바로 새마을담당실을 설치하고 새마을운동의 기본정신과 추진사업을 제안하는 특강을 제게 제안했습니다. 이후 대통령주재 국무회의, 양지회(장차관 부인들의 모임), 전국지방장관회의 등 내로라하는 국가 지도자들에게 새마을운동의 동기부여를 줄 수 있었습니다.”


류태영 박사는 “새마을운동 국제화를 위해 '국제연수원' 설립을 추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개발도상국에서 특강하실 때 중점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50년 전 대한민국이 가난하고 고생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먼저 꺼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즉각 관심을 갖고 제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현재이기 때문이죠. 어떻게 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궁금해 합니다. 새마을운동은 농촌 개발을 뛰어 넘어 가난한 사람을 잘 살게 하는 운동입니다.”

 

- 박사님은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고학으로 학업을 성취하신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농촌 발전에 대한 마음은 어떻게 키우게 되셨나요?

“13살 때 예배당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이 애국자인 것처럼 첫째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오래 하다 보니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 노력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면장도 알아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면장 같은 조그마한 자리도 무엇을 알아야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알기 위해 학교에 가서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독학으로 시작해 꼬박 3년을 공부했습니다. 동네에 소문이 나서 읍내 잘 사는 장로님 집의 입주 가정교사로 일하며 밤낮으로 공부했습니다. 나중에 서울로 올라와 6개월 동안 거지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계속 꿈을 꿨습니다. 그 때 바로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운명을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새벽부터 밤까지 죽어라 일해도 자식들 밥 하나 못 먹이는 이 나라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농촌부터 개혁해 잘 사는 나라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 결과 1968년 13년 만에 국왕에게 편지를 써서 초청을 받아 덴마크로 유학을 갔습니다. 제가 본 덴마크는 천국과 다름없었습니다. 복지, 의료, 교육 등 모든 정책이 잘 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년 전에는 우리나라보다 더 못 살았는데 어떻게 발전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배워서 우리나라 농촌 개발 운동에 힘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새마을운동의 세계화 의미 그리고 지금 시대의 새마을운동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면

“전 세계 200여 개 국가 중 13~40개 국가는 미개국입니다. 우리는 먼저 경험한 것을 공유함으로써 과거 우리와 같이 못사는 나라를 도와줄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그 사명감에 몽고, 베트남, 키리바시, 인도네시아와 아프리카 수십 개 국가에서 특강을 했습니다.

특히 KOICA(한국국제협력단)는 세계 곳곳에서 지도자 교육 및 새마을 학교를 지원하는 등 새마을운동 관련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또 대만, 필리핀, 이스라엘 등은 국제연수원의 형태로 개도국을 상대로 활발한 교육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가장 주목할 만한 곳은 이스라엘입니다.

사막을 개척해 성공했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관심을 가지고 50~60명이 와서 연중 교육을 받습니다. 그들은 교육을 받고 의식이 개혁돼 고국으로 돌아가 장·차관, 국회의원이 됩니다.

우리나라도 국제연수원을 만들어야합니다. 이제 원론을 넘어 각론으로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외교부는 UN과 합작해 ‘국제 새마을운동 연수원’을 만들어 개도국가의 선도주자로서 역할을 해야 합니다.

UNDP 후원 아래 발전이 필요한 30개국에서 2명씩 60명을 모집하고 3~4개월 과정으로 1년에 2~3번 모집해 교육하면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저절로 ‘대한민국 홍보대사’가 됩니다. 대한민국의 위상은 저절로 올라갈 것입니다. 주가 새마을운동이고 부수적으로 산업·기술·문화·교육 발전 등입니다.”

(기사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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