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걷는다(4)"..가장 긴 올레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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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걷는다(4)"..가장 긴 올레길을..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6.11.27 13:5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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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입성기)표선해비치해변-남원포구, 환상의 바닷길이 장관

 여명이 남아있었던 4코스의 아침바다

오늘아침(11월27일) 새벽공기가 신선하다.
어제(11월26일) 오래도록 걸어서일까.
아침을 맞는 차가운 공기가 상쾌함을 날라다준다,

올레길에서 만난 두 사람..

아무하고도 스치지 않았던 4코스에서의 대화는, 이날 안내소아저씨 등 딱 세 사람하고만 소통할 수 있었다.

그들 모두 토종 제주사람들은 아니었다.

이주해 왔거나 여행중인 사람들..

 

 가는 곳마다 바다절경을 보여준 4코스

이날 만난 한 비장한 노년은 아직 늙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듯 내 옆을 스쳐 지나가던 중 말을 붙이자 내가 “너무 편안히 걷는 것 같다”며 “자기는 비장한 마음으로 걷고 있다”면서 휑하니 앞서 갔던 사람이다.

“20일간 숙소를 예약하고 한라산도 갔다 오고 올레는 거의 다 걸었는데 못 걸었던 1-6코스를 걷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줬다.

그리고.. “나는 아직 젊어..” 하듯 빠른 걸음걸이로 달리듯 갔다.

걸음걸이로 봐서는 걷기의 달인인지도 모른다.

4코스 걷기 초반에는 중년을 앞둔 듯한 아직 젊은 중년이 “올레코스를 다 걷고 다른 길을 걷고 있다”며 “제주에서 쉬는 중”이라고 했던 또 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이런 날씨에 올레걷기 도전에 나섰다는 것 또한 일종의 고마운 일이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오직 두 사람만 만날 수 있었던 4코스는, 이날 날씨가 많이 흐렸고 나중에는 비까지 내려서인지 끝까지 홀로 걸어야 했던 길고도 힘든 외로운 구간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3,6km.
처음 제주올레 홈페이지에는 코스중에서 가장 긴 구간이라고 소개돼 있어 무척 긴장했다.

하지만 걷기 전만 해도 4코스만 걷고 나면 다음부터 이런 긴 코스를 걷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나름 투지가 생기기도 했다.

처음 만나는 도전이자 마지막 힘을 내야 하는 구간이었다.

넉넉하게 잡으면 나의 느리고 느린 걸음으로는 7-8시간 정도는 잡아야 하고 지난 3코스처럼 밤에 도착해서 헤매는게 싫어 낮에 걷기를 끝내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날씨의 변화였다.

비가 온다는 예보인데..강수량은 1-4mm.
큰 비는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중간에서 결국 아침에 산 비옷을 입고 걷는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걷는다의 베르나르는 실크로드를 4년이나 걸었지만 그가 걷는 길은 풍경이나 풍광의 길만은 아니었다.

그는 늘 사람들과 함께 있었고 그들과의 소통을 이야기한다.

강도와도, 경찰과 군인과의 만남..목동과 외국인을 처음 본 사람들 그리고 숙소에서의 만남들
그가 말하는 걷는 길은 소통의 길이고 만남의 길이었고 대화의 길이었다.

어쩌면 베르나르는 다른 사람들의 삶이 궁금한 우리들을 위해 그 실크로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전달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오전 9시에 이곳을 출발했다

 

올레코스는 이같은 사람과의 만남이 참 드물다.
식당도 없고 쉴 곳도 없지만..더욱이 날씨가 추워지면서 걷는 사람까지도 없기 때문이다.
겨울을 앞둔 올레길은 오직 혼자 걷는 구도의 길이고 외로움의 길이다.

아침에 보통 7시15분이면 깨는 나는 26일 오전에는 바로 일어나 걷기준비를 했다.

표선해비치해변에서 늦어도 9시에는 출발해야 남원포구까지 빠르면 4시 늦으면 5시 정도에는 도착할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준비를 마치고 08시에 차를 탔는데..
벌써 빗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를 맞는 일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비가 조금만 오기를 기도하며 부지런히 표선으로 향했다.

가면서 보니 표선쪽이 멀리 보이는 하늘은 지금 해가 떠오르듯 붉은 기운이 구름에 걸려 있었다.

표선해비치해변 4코스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9시가 아직 덜 됐는데 출발점에는 생각보다 조금 빨리 도착했다.

이곳에는 벌써 올레사무실 아저씨가 주변정리를 하고 있었다.

인사를 드리고 떠나려는데..

“조금 전에 2개 팀이 먼저 출발했다”고 알려주었다.

 생수를 하나 주시며 격려해 주신 아저씨

그렇다면 오늘 역시도 나 혼자만 걷는 올레가 아니어서 일단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다녀올께요 하고 떠나려는데 그 아저씨가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생수를 한병 갖고 가라”며 물 한병을 주시는게 아닌가..

걷기의 출발을 격려해 주시는 것 같아 너무나 고마웠다.

드디어 정각 오전 9시 출발..

가장 긴 코스라고 해서 긴장한 탓일까..(?)
바다를 걷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한걸음 한걸음..

가다보니 장애인들을 위한 휠체어구간 표시가 보여 반가웠다.
중간중간 바다를 향해 만들어놓은 의자들도 정겹고..
용암돌이 춤을 추는 듯한 바닷가는 여전히 이 아름다움을 지켜줄 것을 요구하는 듯 했다.

 

3km구간을 지나자 수산연구원이 나오고 그 입구에는 개들의 변들과 쓰러진 제주돌이 제주환경을 말하듯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갯늪이라는 바다습지를 지나면서부터는 노란꽃이 만발한 감국의  길이 계속 이어졌다.

감국이 피어있는 4코스는 이 계절을 빛내는 해안가의 보물처럼 다가왔다.

잘 몰랐던 감국에 대해 "이 국화과인 감국은 98%가 해안가에서 꽃을 피우며 보통 들판에서 만나는 산국과 대별된다"고 김평일 제주야생화 회장이 설명해 주었다.


5km 구간을 지난 후에는 바닷가에서 방어를 잡아올리는 낚시꾼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 낚시꾼은 커다란 방어를 낚시한 그대로 바로옆 웅덩이에 넣더니 산 채로 두는 모습이 보였다.

세화2리.
가마리해안으로 불리우는 이곳은 황근자생지이지만 예전에 보았던 황근은 잘 보이지 않았다.
노랑무궁화로 볼리우는 황근은 멸종위기2급이라 이곳저곳 많은 곳에 황근을 심었다는 표시가 많지만 그곳에서 황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가마리해안..안으로 들어가봐야 아름다움을 잘 볼 수 있다

하지만 가마리해안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기암괴석들이 마치 미니어쳐처럼 세계의 경관을 만들어 보여주는 곳이다.

겉으로 볼 때는 이 이름다움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곳을 지나 다음 해안길로 들어서면 태흥2리 벌포리해안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러나 이날 벌포리해안은 들어가 보지 못하고 멀리서 하얀 등대만 사진으로 남길 수 밖에 없었다.

걷다가 세화2리마을 구간중에 만난 특이한 곳으로 기억하는 코스는 바닷가로 난 조그만 길이 압권이었다.
길지는 않지만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의 숨은 아름다운 길..
아마 이런 길은 평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하는 길이다.

 대나무숲

 정글숲

7km구간을 지나자 이번에는 대나무숲이 나타났다.

그 다음에는 정글숲이 나타났다.

걷는 내내 이런 길이 있었다니..
하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구간을 지나자 호텔공사판이 나타나 힘들게 걷고 있는 내 마음을 속상하게 만들었다.

 4코스 경관을 망치고 있는 공사현장

걷는 동안 나는 처음에는 30분마다 쉬었고 나중에는 1시간 마다 쉬고 있었다.

몸이 알아서 쉬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이날 걷기를 마치고 목욕탕으로 가 몸을 오래 따뜻하게 했더니 한잠 자고난 후에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매주 토요일마다 걷기를 한 후 한달 만에 몸이 이제 걷는 일에 적응해 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처럼 올레4코스의 걷는 바다코스는 제주바다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환상의 코스였다.

가는 곳마다 펼쳐지는 용암의 흔적들.

4코스는 초반과 후반이 모두 바다로 연결돼 있어서 제주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정말 아름다운 길이었다.

길고 긴 여정이었지만 지루함 없는 여유로움을 만들어주는 곳.

 

더욱이 코스 초기 바닷길을 가다가 들어가는 숲속코스는 대나무숲, 정글숲, 빨간 열매가 흐드러진 숲 등등이 계속 이어져 있어 이런 코스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웠다.

다만 중간에 들어서고 있는 이 호텔의 모습은 올레꾼의 입장에서는 아름다운 경관을 그들에게 빼앗겨버렸다는 점에서 큰 아쉬움이었다.

올레길을 답답하게 막아선 철문공사판도 문제였지만 초록색 건물색깔은 분노마저 생기게 했다.

이 아름다운 바닷가 돌 위에 앉아 쉬면서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이 점만 빼면.. 정말 훌륭한 곳인데..하는..

바다동네를 걸으면서 그런 상념과, 바다를 보며 걷는 여유로움은 계속 됐다.

하지만 한참 가다가 다시 돌아오는 실수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또, 하고야 말았다.

 중간스탬프지점..

노랑꽃들과 억새가 흐드러지게 늘어선 해안도로 안쪽 길을 지나면서 중간스탬프지역을 놓쳐버린 나는 5백여미터를 더 간후 아까 내앞을 지나던 젊은 중년을 만나지 못했다면 한없이 더 많이 헤맬뻔 했기 때문이다.

서귀포시와 제주시를 잇는 대로로 나온 후 트럭이 막아선 덕분에 다음코스를 찾지 못한 나는 무작정 바다쪽으로 걷고 있었는데..내 앞을 걷던 그가 바닷가에서 쉬고 있기에 중간스탬프지역을 물었더니 한참 지나왔다고 하는 것이다.

돌아오면서 보니 망오름을 향해 가는 올레표시앞쪽으로 트럭 하나가 올레표시를 막고 서 있어서 그걸 보지 못하고 넘어가 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생각해 보니 올레깃발을 따라가지 않고 바닷쪽으로 걸어가는 바람에 그 앞에서 한참을 앉아있다 왔음에도 중간스탬프지역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중간지점으로 돌아가 스탬프를 찍었다.

정각 12시..

다시 조금 더 걸어 대로를 따라 아까 돌아오며 보았던 올레표시를 보며 큰길을 지나 망오름(토산봉)쪽으로 향했다.

 토산리마을입구

이곳은 토산1리 마을구간이다.

토산리라는 마을이름이 궁금했다.

마을소개에 따르면 토산리라는 마을 이름을 처음에는 '토산리(土山里)'라고 했다고 한다.

그후 광산김씨가 '고성리'에서 , 경주 김씨가 '의귀리'에서 이주, 큰 마을을 이루고 약 150여 년 전에는  풍수지리설에 의거, 이 지역의 지형지세가 옥토망월(玉兎望月)이라 하여 '토산리(兎山里)'로 바꿔 부르게 되면서 지금의 '토산 1리'의 전신이 됐다는 설명이다.

'토산 2리'는 약 500년전에 순흥 안씨가 '가시리'에서, 광산김씨가 '토산 1리'에서 이주한 게 시초가 되어 많은 이들이 정착하며 마을을 이뤘다고 한다.

그후 1943년 일제강점기 시절에 행정구역을 재편하면서 '토산 1구', '토산 2구'로 분리되었고 1948년에 행정리 '토산 1리' '토산 2리'로 바꾼 것이 지금에 이르는데 지역주민들은 '알토산' '웃토산' 등으로 부른다는 설명이었다.
 

그렇게 많지 않은 집들..그러나 마을 안에는 사람 또한 보이지 않았다.

추워서인지 요즘 올레코스에서 마을사람을 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말을 붙여볼 일조차 없는 것이다.

가면서 보니 이 지역은 감귤주산지인 듯 아주 큰 대형 기업형감귤밭이 많은 곳이었다.

망오름을 막고 서 있을 정도로 하우스가 즐비했고 오름 중간까지 감귤나무가 서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망오름은 조금 높아보이는 오름이었다.
만만찮아 보였다.

 

 망오름(토산봉)이다

오름 가까이에 가니 집집마다 개가 있어 지날 때마다 모든 개들이 시끄럽게 짖어댄다.

나는 망오름을 향해 올라가는 중간에 쉼터가 있어 잠시 쉬면서 쵸컬릿을 잘라 먹었다.

몇조각 먹었더니 다리에 힘이 나는듯 하다.

먹고 일어나 걷는데 바로 누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말을 걸기 위해 “올레 걸으세요..?"라고 물으니 그렇단다.

“몇시에 떠났느냐”고 하니 “9시30분 쯤 출발”했단다.

“빨리 걸으셨다”며 “나는 9시에 출발했다”고 얘기했다.

그 비장의 노년은 내가 “너무 편하게 걷는다”며 “자기는 비장한 마음으로 걷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천천히 느리게 걷는중”이라며 오름입구에서 “사진 찍어드릴까요..?“하니 ”자기는 사진을 찍히기 싫어한다“며 ‘쓩‘하고 먼저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다.

 비장한 노년이 걸어가고 있다

중간까지 올랐는데도 그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비장함..

10여년전 황필호 교수와 함께 4명이 인도를 여행하는 동안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비행기안에서 태국으로 골프여행을 하러 가는, 웃고 떠들고 있던 한팀을 보며 말했다.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평생 철학을 공부했는데 저들의 단순한 행복한 모습을 보면 과연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는 요지의 말이었다.

황 교수는 당시 수술후 곧 바로 길고 긴 인도여행길에 나선 것인데 10여시간을 달리는 기차안에서 "자기는 목숨을 걸고 달라이라마를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비장한 말을 했었다.

과연 그런 비장함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 비장의 노년은 아직 청년으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망오름을 오르는 길은 편하고 걷기에 좋았으나 정상에서는 날씨가 흐려서 아무런 조망도 하지 못했다.

사진판이 설명인 듯 놓여있었지만 어디가 어딘지 설명이 안돼 있고 사진 또한 빛이 바래버려 없는 만도 못했다.

그러나 호젓한 산길이 참 아름다운 오름이었다.

 토산봉수다

토산봉은 토끼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그 위에 토산봉수가 있어 망오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오름을 내려오니 다음 오름을 오를 차례..

이곳 쉼터는 전에도 몇 번 왔던 곳이지만 올레길을 걸으며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전혀 관계가 없던 곳이 이제 더 친숙한 곳이 됐다고나 할까..

나는 입구 쉼터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다른 오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오름을 올랐는지 내렸는지..

걷다보니 거슨새미 동쪽 샘물이라는 글이 쓰여져 있었다.

샘물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약수가 흐르는 모습

이런 곳은 예전에 숯가마터가 많은 곳인데..하며 조금 더 내려오니 작은 구멍으로 약수가 아주 조금씩 흘어나오고 있었다.

마셔보니 맑은 샘물이었다.

나는 나뭇잎을 물이 나오는 통로에 하나 얹어놓고 물을 한통 받았다.
제주에서는 보기 드문 약수같은 물..

그리고 더 내려오니 허벅이 있고 허벅체험이라는 글귀가 보였다.

이곳에서 체험교육도 하는가 보다...

그렇게 다 내려와서 보니 거슨새미(오름)라는 글귀가 입구에 쓰여져 있었다.

오름을 오른게 아니라 오름을 내려온 것이다.

오름 하나 오르는 힘을 축적한 셈이다.

 거슨새미오름 입구

거슨새미라는 이름은 오름에서 솟아난 물이 바다쪽으로 흐르지 않고 한라산쪽으로 거슬러 흐른다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새미오름, 샘오름이라고도 불리며 한자로는 천악(泉岳), 역수산(逆水山)이라고도 한다

마을소개에서는 노단새미와 거슨새미에 대한 전설이 설명돼 있다.

전설은..


"웃토산과 알토산 사이에 같은 구멍에서 용출하여 두 개의 샘을 이루었는데 한라산 쪽으로 거슬러 흐르는 샘을 '거슨새미', 순리대로 바다로 흘는 샘을 '노단새미'라 하며, 옛날 중국에서 호종단(胡宗旦)이라고도 하고 고종달이라고도 하는 지관을 파견하여 제주의 산혈(山穴)과 물혈(水穴)을 모두 떠버리게 했다.

왜냐하면 제주섬에서 자꾸 날개 돋힌 장수들이 태어났다. 이는 제주섬에서 태어난 장수가 천하를 통일할 징조이며 섬의 산혈과 물혈이 흐르는 맥으로 보아 충분히 이를 뒷받침하고도 남았던 것이다. 호종단은 종달리로 들어와 남쪽을 향하여 혈을 떠나갔다.

그에게는 제주섬의 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리서가 있어 혈을 찾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호종단이 이 곳으로 거의 올 무렵 넙은밭에서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갑자기 고운 처녀가 나타나 다급하게 사정했다.


"저기 저물을 요 놋그릇에 떠다가 저 소길마 밑에 잠시만 감춰줍서예."


놋그릇을 행기라고 한다. 농부는 점심을 먹으려면 어차피 물이 있어야 하겠기에 선뜻 그렇게 하니 처녀는 행기물로 쏙 들어가 사라져 버렸는데 그 순간에 두 샘의 물은 말라버렸다.

그때 호종단이 왼손에는 지리서를 들고 개 한 마리를 앞세워 다가와서 묻기를, "여기 고부랑낭(꼬부라진나무) 아래 행기물(놋그릇물)이 어디에 있소?"


호종단이 지닌 지리서에는 노단새미와 거슨새미가 놋그릇에 담겨 소길마 밑에 숨어 있는 형태라고 적혀있었으니 앞으로 일어날 일까지도 미리 예측하여 기록되었던 것이다. 농부는 시치미를 뚝 떼고 "그런 물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개는 자꾸만 소길마 밑으로 파고들려고 했다.

농부가 남의 점심을 탐낸다고 하여 지팡이로 쫓아버렸다. 호종단은 혼잣말로 이 근처가 틀림없는데...라며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찾을 수가 없자 지리서를 북북 찢어 던져 버리며, "쓸데 없는 문서로고"하고는 서쪽으로 떠나버렸다.


농부가 소길마 밑에서 물이 담긴 놋그릇을 꺼내어 노단새미와 거슨새미에 부으니 샘이 되살아났다. 그래서 종달리에서부터 토산리에 이르는 모든 샘은 호종단의 손에 혈을 잡혀 말라버렸으나 이 두 샘은 살아남아 지금도 청청하게 샘솟는다. 그런데 화북리와 다른 두어 마을의 샘이 너도나도 '행기물'이노라고 지금껏 우기고 있다 한다."(토산1리 마을 지명유래에서..)


그 다음 올레길은 길고긴 시멘트도로가 끝없이 이어졌다.

온통 노란색으로 색칠한 종교시설도 있었고 그곳을 지나자 아주 큰 가람도 보였다.

지루한 시멘트길..

감귤밭이 흐드러진 이곳을 지나는 동안 감귤을 따는 농부들의 많은 움직임이 있었다.

 

 
     
 

구불구불 감귤밭과 마을을 지나니 다시 해안도로로 나왔다.

이제 계속 걸어가기만 하면 최장길이라는 4코스 탐방도 끝이난다.

하지만 해안도로로 나오자 비가 계속 내리기 시작했다.

많은 비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젖을 만한 비였다.

나는 중간에 아침에 산 비옷을 옷 위에 걸쳤다.

그리고 남은 김밥 한줄과 함께 라면을 먹고 싶었다.

날씨가 추워져서 따뜻한 국물이 먹고싶었던 것이다.

옥돔주산지인 태흥2리 조그만 항구를 지나 걸어갔지만 쉴만한 마땅한 식당이 없었다.

비는 조금씩 내리고..
발은 지쳐있고..
터벅터벅 걷는 일에 집중했다.

 4코스의 거의 마지막 부분은 바다로 이어진다

 이런 길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호젓하게 이어진 4코스 올레길

지리한 해안도로를 걷고 있는데 옆으로 오솔길 올레가 이어졌다.

차라리 나았다.

그곳을 걸어가는 동안 풀이 젖어 있어 발속으로는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질척거리는 발을 조심조심 옮겼다.

빗길 갯바위는 미끄러지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나오면서 얼마나 남았는지를 계속 체크하면서 왔지만 늘 걸어야 할 길은 내 생각보다 더 많이 남아 있었다는 점을 염두에 뒀다.

아무리 걸으며 기다려도 1km 구간이라는 표시가 보이지 않았다.

아까 멀리서 보였던 큰 건물들이 갑자기 가깝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저쪽 어느 쪽에 4코스 종점이 있으리라..”

나는 3코스 종착점을 찾지 못해 헤맸던 그 시간이 싫었고 스탬프 포스트도 찾기 쉬운 곳에 있기를 바라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시내에 들어서자 마자 바로 올레사무소가 보였다.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스탬프를 찍었다.

길고 긴 4코스의 종점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빨리 편의점이라도 찾자.

시내쪽으로 조금 걸어 올라가니 편의점이 보이고 그곳에서 컵라면에 물을 넣고 김밥을 꺼냈다.

늦은 점심이었지만 저녁이나 다름없는 식사..남은 커피를 마시며 조금 여유를 부렸다.

 

 

 

춥고 비가 오는 날씨라 택시를 타고 표선까지 가고 싶었지만 남원에는 택시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버스의자에 앉으니 솔솔 잠이 쏟아지려고 한다.

버스는 표선읍내에서 내려주었고 또 표선해비피해변까지 걸어가는 일이 난감했다.
그곳까지라도 편하게 가자고 생각했다.
택시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이자 손을 들었다.

택시는 오다가 나를 봤겠지만 직진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야속하게 돌아가 버린다.
아마, 가 봐야 해비치해변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표선택시 인심 참 고약하다..

걷기에 지친 사람이 택시 좀 타려는데..손님을 보고도 옆으로 가 버리는 그 마음은 무엇일까..
나는 그냥 걷기로 했다.

바람도 불고 비도 오고..
해안가를 걷는데 몹시도 추웠다.

시작점이자 도착점에 돌아온 시간은 저녁 6시20분..

 출발지점 도착기간은 18시20분경이었다

비만 오지 않았어도..

최장 길이라고 긴장했던 4코스는 수려한 바다가 참 좋은 코스였다.

4코스를 출발하는 이날 새벽,.
1코스를 걷다가 찾아왔던 다리에 났던 쥐가 수면중에 똑같이 나를 찾아와 엄청 아팠는데..그러기에 걷는데 더 긴장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걷기를 시작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따뜻한 욕탕에 몸을 한동안 담갔더니 몸은 곧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궁금한 다음 코스..

5코스를 갈 때는 더 좋아져 있을 것이다.

 

 

제주올레4코스

▲ 제주올레4코스(제주올레홈페이지)

패스포트 스탬프 확인 장소

 시작 : 표선해비치해변 제주올레 4코스 안내소 
중간 : 토산 남쪽나라 횟집 앞
종점 : 남원포구 제주올레 5코스 안내소

난이도

난이도 - 상
거리(시간) - 23.6km (6~7시간)
코스 길이가 가장 길고, 오름과 바닷길이 일부 포함돼 있다. 바다 옆으로 쭉 이어진 해안도로를 따라 오래 걷는다.

 

 절반은 아름다운 해안 올레고, 나머지 절반은 오름과 중산간 올레다. 가마리 해녀올레는 ‘세계 최초의 전문직 여성’으로 불리는 제주 해녀들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며, 이곳을 거쳐 ‘가는개’로 가는 숲길은 제주올레에 의해 35년 만에 복원되었다. 토산리 망오름과 거슨새미는 중산간의 특별한 풍광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데, 거슨새미 가는 길은 제주올레가 새로이 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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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푸른바다 2016-11-30 02:11:31
궂은 날씨에도, 바닷길로 많이 이루어진 4코스 완주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영이 2016-11-28 14:50:32
발행인님의 다음 5코스 이야기... 인문학과 어우러지는 올레 이야기 정말 기대됩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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