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오름(선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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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선흘리)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6.12.27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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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456.6m 비고: 112m 둘레: 4,551m 면적: 809,860㎡ 형태: 복합형

 

거문오름(선흘리)


별칭: 서거믄오름. 서거믄이. 거믄오름. 검은오름. 서거문악(西巨文岳).
위치: 조천읍 선흘리 산102-1번지
표고: 456.6m 비고: 112m 둘레: 4,551m 면적: 809,860㎡ 형태: 복합형 난이도:☆☆☆

 

 

 

제주의 수많은 오름들 중에 거문오름이나 붉은오름이라 부르는 곳은 유난히도 많이 있다.

실상 붉은 송이나 화산재와 관련한 색을 토대로 한 것 같지만 그보다는 외부에서 보는 빛을 우선으로 하여 붙여진 명칭들이 대부분이다.

선흘리의 거문오름 역시 숲이 빽빽하고 무성하게 덮여있어서 검게 보인다고 한 것이 명칭의 유래이다.

유난히도 크고 넓은 굼부리를 지니고 있으며 이곳을 거물창(거멀창)이라고 했었는데 이는 거문(검은)을 뜻하는 제주의 방언(거먼. 거멀, 거물) 중 변음으로 풀이가 된다.

또한 이 검(黑)은 고조선 시대부터 쓰여온 신(神)이란 뜻을 지닌 검(검. 감. 곰. 굼)의 유래라는 설도 있다.

또한 동쪽 구좌권의 동거문이(오름)와의 구분을 위해서 서검은오름으로 부른다는 설도 유력하게 나와 있지만 주변의 상황으로 볼 때 거리나 지리적 여건을 비롯하여 산 체의 특성 등은 다소 차이가 난다.

한편으로는 방아 오름이라 하여 거문악으로 불렀다는 문헌 기록도 있다. 이는 오름 분화구와 수직동굴 일대의 형세가 방아를 닮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무튼 지금에 와서는 거문오름(검은)으로 표기를 하였으니 결론은 지어진 셈이다.

 

거문오름의 백미는 무엇보다 넓고 커다란 굼부리를 들 수 있으며 아홉 개로 이어지는 구룡의 봉우리들이라 할 수가 있다.

거물창으로 알려진 굼부리에서 흘러나온 용암류의 침식 계곡은 도내 최대의 규모로 알려져 있으며 그 길이가 무려 4km나 된다.

거문오름의 화산체로부터 흘러나온 용암류는 지형 경사를 따라 북동쪽 해안선까지 이어지면서 20여개의 동굴을 생성시켰다.

잘 알려진 만장굴과 김녕굴을 비롯하여 뱅뒤굴 등이 대표적이며 이러한 환경을 토대로 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었으며(2005년) 급기야 세계 자연유산 등재에 일익을 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이 굼부리는 한라산 백록담의 무려 네 배의 크기로 알려져 있다. 분화구 내부는 중앙에 알(새끼)오름이 있고 바깥으로는 아홉 개의 봉우리가 애워싸고 있는 형상이다.

풍수학을 빌리자면 이런 형상을 두고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논다는 뜻에서 ‘구룡농주형’이라 부른다고 한다.

아마도 ‘검’의 신령스러움을 묘사하고 '하늘이 내린 땅' '신이 빚어낸 곳'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2012년(08월)에 제주 세계 자연유산센터가 건립되면서 접근성이 더 좋아졌고, 예전에 비하여 주차공간도 더 편해졌을 뿐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의 도보 거리도 짧아졌다.

현재 거문오름 탐방은 거리와 소요시간을 기준으로 네 개의 코스로 나눠진다.

다만 허용되는 초입지는 한 곳이며 오름의 능선이나 분화구 등을 탐방하는데 있어서 본인이 선택을 하면 된다.

크게는 태극길과 용암길로 나눠졌으며 태극길은 오름 형세가 태극 모형이라서 붙여진 이름으로서 현재로서는 사전 예약을 통하여 태극길만 탐방이 가능하고 용암길은 연중 행사기간에만 출입이 허용된다.

삼나무 숲길을 지나서 전망대에 도착을 하게 되는데 이곳은 9룡 중에 제1룡에 해당이 된다. 제1룡 전망대에서는 남쪽의 오름 군락과 한라산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좌측으로는 쳇망오름 등이 보이고 우측면으로는 궤펜이오름과 넙거리 등이 보인다. 바로 앞쪽에는 부대오름과 부소오름이 위치해서 거문오름을 수호하는 형세이다.

대장 겪인 구룡의 거문오름을 호위하면서 마치 명령이 하달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곳에서 전망되는 오름들과 거문오름과의 연계는 참으로 아름답고 여유롭게 느껴진다.

너무 많은 부드러움을 지녀있어서 마치 온유하고 잔잔한 능선의 곡선미를 연상하게 한다.


거문오름의 백미인 분화구에서는 자연 생태와 공존 이외에도 과거 마을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간직한 숯가마 터가 있으며 일제강점기와 함께 제주의 아픔이 존재하는 4.3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곳이라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는 곳이다.

 

또한 오름 능선에서 만나게 되는 구룡의 기세를 안으며 솔밭과 편백 나무숲 등을 지나다 보면 비로소 거문오름은 신이 만들고 용이 다듬어 놓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분화구 내부는 도무지 계절의 감각을 알 수가 없을 만큼 사계절의 변화를 무색하게 한다. 화구 안쪽으로 발길이 이어질 때마다 다른 자연의 세상을 만날 수 있고 그곳에서 생태와 공존의 법칙을 만나고 느끼게 된다.

곳곳에 자왈(돌무더기)이 깔린 모습들이 보이고 여러 넝쿨과 덩굴 등이 공생과 기생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진지동굴을 지나면서 일본군 주둔지였던 터를 만나게 되는데, 주변의 갱도진지와 더불어 분화구 내부에 있고 일본군 108여 단의 주둔지로 추정된다는 설명 문구가 있다.

제주의 전형적인 현무암을 둥글게 쌓아올려서 만든 숯가마 터가 있으며 뒤쪽으로는 타원형의 숨구멍(통풍구)이 있고 오른쪽의 돌담은 숯을 만드는 사람들이 살았던 움막 터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병참도로도 지나게 되는데 이곳에 주둔하였던 일본군들이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하여 이용되었던 도로이다. 선흘 수직동굴도 만나게 되는데 그 깊이가 무려 35m로 형성이 되었으며 동굴 천장이 무너지면서 수직통로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본군이 숨었던 곳이고 4.3사태 때에는 인근 마을 주민들이 숨어 지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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