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인문학] 델포이 신탁의 비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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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문학] 델포이 신탁의 비밀(상)
  • 안종국 기자
  • 승인 2016.12.3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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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동안 지중해 세계를 지배한 오라클(신탁소)

 

델포이의 유적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신은 존재하는가?

신에 대한 믿음, 혹은 신의 존재에 대한 유무는 인류사의 오랜 논쟁거리이다.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단순화하면 일정한 존재형태로서의 구체적 실존으로 협소화되어 답변의 다양성을 확장시키기 어렵게 된다.

신에 대한 존재적 믿음은 기독교에서 가장 확고한 신념으로 나타난다. 절대자이며, 세계와 인류를 창조하였기에 피조물로서는 지존적 위치의 신이다. 구약과 신약의 성서기록은 유일신인 야훼와의 수많은 교감과 숭배 속에서 유대인들의 역사와 종교적 신념을 지켜왔다.

불교는 워낙 다양한 신앙체계를 지니고 있다. 초기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인간의 모습으로 존중하지, 신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초기불교에서는 존재라고 하는 것이 인연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연기론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보는 무아론으로 인식해 세상의 모든 존재가 독자적으로 존재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불교를 무신론으로 결정짓기에는 또 다른 문제들이 존재한다. 대승불교에서는 교조 붓다를 신의 반열로 올려놓았다. 우주와 세계의 근본불이라는 개념으로 우주 삼라만상 자체가 부처님이라고 믿는 것이며, 이에 귀의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여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간으로 왔던 현존불로서, 근본불의 또 다른 화신으로 여길 뿐이다.

유일신의 실존을 굳게 믿는 이슬람이나 기독교와는 달리 다신교적 다양성속에 신의 모습을 범신론적으로 보는 종파도 많다. 대표적으로는 인도의 힌두교가 그렇고, 일본의 신도(神道)가 이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민속신앙이 애니미즘이나 토템사상으로 발전되어 왔는데, 이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발견되는 다양한 형태의 토속신사상이다. 고대 그리스인들 또한 이해되기 어렵거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서 신들은 알고 있다고 믿었다.

델피신탁은 고대 그리스세계에 많은 답을 제시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때 그 신탁에서 제시했던 답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신탁에서 나온 답들이 고대사회를 지나 중세와 근대를 거쳐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그들의 지혜가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영향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인류에게는 과학이 곧 종교이다. 과학을 신뢰하고, 과거의 신학이나 종교는 해석의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과학은 실재하는 세상의 모든 문제들에 보편적인 해석보다는 여전히 조약한 수집적 지식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빅데이터가 지능의 임계점을 넘어 특이점을 지나는 인공지능의 시기가 곧 온다고 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뇌파와 정신과 무의식과 영혼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제 문제들이 과제로 남는다.

 

 델포이의 옴팔로스(복제품.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신탁소의 비밀

오라클(Oracle)이란 신탁, 탁선 혹은 신탁이나 계시를 받는 곳을 의미한다. 신탁은 인간의 물음에 대한 신의 답변인데, 신탁은 대개 애매하여 어떤 방향으로도 해석이 가능했다.

당시 사람들은 나라의 중요한 일에서부터 개인의 사소한 생활까지 일일이 신탁을 받았다. 따라서 델포이, 델로스, 도도나, 암몬 등에 이름난 신탁소가 있었고 전성기에는 그리스를 넘어 지중해 세계 곳곳에 신탁소가 생겨 보이오티아에는 25개소나 되어, 펠로폰네소스에 있는 신탁소 수와 비슷할 정도로 성행을 이루었다.

신탁은 시문이나 여러 형태의 암시, 예컨대 참나무 잎의 소리나 조각상 머리의 끄덕임, 또는 호수에 있는 물고기의 헤엄으로도 계시되었다.

특히 파르나소스산의 델포이신전 신탁소는 수많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기원전 16세기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델포이의 위대한 신탁은 거대한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 현존하는 신탁의 기록은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로부터 시작하여 1,200년 동안이나 기록이 쌓였다. 이 기간의 역사서에는 신탁이 미래를 예측하고, 의문과 베일에 싸인 당시의 현세적 문제들을 수많은 참배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답변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록자들만 해도, 헤로도토스와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핀다로스, 크세노폰, 디오도루스, 스트라보, 플루타르크 등의 그리스 고대의 시인, 극작가, 역사가들이 총 망라되고, 리비우스와 유스티누스, 오비디우스 등등 고대 로마의 대표적 지식인과 초기의 기독교인, 역사가들이 신탁을 언급하거나 논문을 남겼다. 이들을 통해 남겨진 오라클의 진술과 예언은 구체적으로 1,150여건의 사례로 남아있다.

에우리피데스는 희곡 ‘이온(Ion)’에서 아폴로 신전안팎의 사건을 다루고 있고, 신탁의식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전쟁에서의 신탁의 역할과 기여가 얼마나 심대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핀다로스는 신탁을 예찬하는 시를 많이 썼는데, 그가 죽은 후 델포이의 사제들이 그의 유품을 신전에 전시하고 보존할 정도로 신뢰가 깊었다.

이들의 기록을 취합해보면, 델포이의 여사제는 흥분된 상태에서 가슴이 오르내리고, 신음과 흐느끼는 듯한 신과의 합일 속에서 다른 모든 생각을 절멸시키고 미래의 통찰력을 스며들게 하였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합일은 초세속적이며 신의 황홀경에 사로잡혀 인간의 모든 경험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고양되고 시간과 공간이 하나가 되어 영원한 진리를 파악하고 돌아와 인간의 의심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동양세계에서는 신인합일(神人合一)이 이미 인도의 요가나 명상을 통해서 수많은 경험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동아시아 대승불교권의 선(禪)이나 관법(觀法), 티벳불교의 분석적 명상, 상좌부 초기불교권의 위빠사나도 이러한 경지에 대한 많은 기록과 전통이 남아서 오늘에 전하고 있다.

그런데 델포이의 사제들은 이러한 경계에 오르는 과정이 동양의 명상이나 각종 수행법과는 달리, 신비한 기체인 연기의 힘을 빌었다고 되어 있다. 인도에서는 일부의 명상가나 힌두수행자들이 마약류를 이용한다고 하는데, 창작의 고통 속에 있는 가수나 작곡가, 예술가들이 약물의 힘을 빌어 오는 경우와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델포이의 여사제 피티아. 윌리엄 고드워드

신비의 여사제 피티아

신탁소의 여사제는 왕을 폐할 정도의 권능을 지니고 있었고, 그의 목소리는 전 지중해 세계로 퍼졌다. 신탁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무기였으며, 정치적 난제를 수습할 묘책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델포이신전의 내부에 대한 것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여사제의 활동 대부분은 비밀이었으며, 예배 방식은 세대를 이어 후임자에게 비밀리에 전승되었다. 델포이의 최고사제였던 영웅전을 쓴 철학자 플루타르크는 그녀들의 내부 활동을 거의 몰랐다고 한다. 그가 전하는 말로는 세 명의 여사제가 있었는데, 두 명이 신탁의 질문에 대기를 하고 한 명이 보조하거나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매달 일곱 번째 날에만 일을 했는데, 7은 아폴론의 행운의 수였다.

여사제는 아폴론과 결혼하여 신과의 합일을 신성한 결혼으로 여겼다. 그리고 아폴론은 예언과 태양과 음악과 의술과 시와 미덕의 신이었다. 고대사회의 아폴론 신전은 태양이며 광명이고, 미몽을 밝혀주는 계몽소였으며, 그리스사회의 등대였던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를 떠올리면 수학과 과학, 정치학과 철학의 시원으로 생각하며, 이성의 발현지로 여겨져 상대적으로 초자연주의나 삶의 신비주의를 활용한 것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그리스에서 신과의 신비적 합일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교조나 선각자, 종교적 규율과 교리, 계시와 기록이 없고, 사제들의 공식적 제도와 유일신이 존재하지 않는 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유동적이며 실제적이고 다신주의적 분위기는 그리스의 신화가 종교적 평등성을 가져왔으며, 권력자들이 독점하기 어려운 양상을 띠었다. 그래서 지배자 중심의 드러나는 역사적 기록으로 알려지지 않고, 독립적 권위만 있었다는 것이다.

델포이에서 최고의 여사제는 피티아라고 불렸는데, 아폴론이 죽였다는 커다란 뱀의 이름인 피톤과 무관치 않다. 그녀는 통치자와 시민과 철학자들에게 성생활부터 국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를 조언해 주었고, 전쟁이나 정치적 결과를 예측해 주었다. 그리고 수천 번이나 지속적으로 예언한 것들이 역사적 흐름을 지대하게 바꾸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교황이나 달라이라마, 훌륭한 지도자들에 대한 존경이 당시 그리스인들의 델포이신전과 여사제에 대한 존경 만큼에는 미치지 못하리라 보인다. 한마디로 델포이의 신탁소는 당시 세계의 영적 중심지였다.  

그리스의 민주적 평등성을 생각하면, 아폴론 신전의 신탁은 매우 독점적인 지위를 갖고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아폴론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아폴론은 헤르메스, 포세이돈, 판, 아테나, 제우스와의 경쟁 상대였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아폴로를 현명하고 관대하고 이해심이 많은 신으로 생각했다. 다른 신들은 아폴론에 비해 폭력과 변덕스러움, 부도덕성으로 악명이 높아 상대적으로 아폴론이 상위의 신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아폴론은 인정 많고, 쉽게 화를 내지 않으며, 난폭하지 않은 신이다. 또 아폴론은 예언능력이 뛰어 났는데, 핀다로스는 말하기를, “아폴론은 모든 사물의 최상과 그 곳에 이르는 모든 방법을 알고 있다. 땅에서 자라난 나뭇잎의 수, 파도와 바람에 휩쓸려간 모래알의 수, 그리고 무엇이 어디에서 오는지도 알고 있는 신이다.”라고 칭송했다.

이렇게 인기가 많아서 아폴론신전은 델포이 외에도 펠로폰네소스반도의 코린트와 바사, 에게해의 델로스섬과 에기나섬, 시칠리아의 세제스타, 소아시아해의 디디마섬에도 세워졌고, 번창하는 예언사업을 했다. 그러나 다른 신탁소에는 대부분 남자사제들이 예언을 맡았다.

사람들은 신들이 간절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연속이나 은밀한 신호와 영감의 언어로 감춰둔 비밀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중에서 아폴론은 고대세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그것은 델포이 신탁소의 명성과 무관치 않다. 델포이의 사제들은 전조를 찾아 제물이 된 동물의 상태나 신성한 불의 움직임, 연기와 소용돌이, 동물의 내장, 꿈, 몽환의 경지, 점, 행성의 운동 등을 관찰했다.

 

 옴팔로스. 로마시대에 원래의 돌을 복제한 것으로 추정 (사진:위키피디아)

당시에도 영매나 무당, 점쟁이와 점성가들이 성행했다. 그러나 그들은 평범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볼 수 있다는 능력의 노력여부가 검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왕과 군 지휘자들은 신의 안내를 받고자 군대를 동원할 때 예언자 없이는 출정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예언자를 대동한 전쟁에서 큰 실수를 한 것은 기원전 414년 아테네가 시칠리아의 남동부 시라쿠사를 포위 공격할 때이다. 아테네군은 지속된 공격에도 승리하지 못하자, 낙담하여 퇴각할 준비를 했다. 그때 갑자기 보름달이 어두워졌는데, 스틸비데스라는 예언자는 월식이 불길한 전조이므로 원정대가 다음 보름까지 퇴각을 연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휘관들은 그 말에 따랐다. 그러자 시라쿠사군은 지친 아테네 군을 공격하여 승리하였고 패배한 아테네인들을 노예로 삼았다.

이에 반해 델포이 신탁은 권위가 있었다. 초감각적인 인지능력은 불규칙하고 혼란스러우며 형이상학적인 산업의 정점에서 성황을 누렸다. 놀라울 정도로 델포이신탁은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는데, 다양한 선물과 십일조는 델포이를 금은과 대리석과 예술품들이 넘쳐나게 했다.

과연 델포이 신탁에 대한 존경은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일까? 그것은 당연히 예언의 정확성에 기인한다. 이 신전의 특색은 예언자가 아폴론과 이야기하는 신전지하 내부밀실이다. 이 성지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인 아디톤(출입금지라는 뜻) 바닥의 갈라진 틈에서 올라오는 신비한 성령, 즉 프네우마가 바로 비밀의 원천이다. 프네우마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것으로 ‘프라나’와 같은 뜻이다. 미풍과 생명의 영혼, 즉 성령이나 영혼을 뜻한다.

대기실에 있던 참배객들은 종종 향수 향기 같은 냄새를 맡았는데, 달콤한 야릇함이 풍겼다고 한다. 이 프네우마가 여사제의 신성한 광기를 고취시키는 신의 선물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물질인지, 성령인지 모호하기만 하다.

여사제는 평소에는 평범하게 사는데, 정화의식을 거치고 아디톤으로 내려가 아폴론의 성령을 빨아들이면 중요한 인물로 부상한다. 그러므로 여사제의 영감은 몽환과 광란상태에 빠지는 어떤 ‘물질’, 즉 프네우마에 비밀이 있는 것이다.

 

 델포이의 신탁

델포이에 아폴론신전이 들어서고 신탁소가 열리게 된 과정은 이렇다. 신화에 따르면 아폴론은 활과 화살로 무장하고 올림포스를 떠나 인간들을 인도할 새로운 주거지를 찾아 나선다. 그것이 바로 델포이 숲속의 소박한 빈터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주인이 먼저 있었다. 피톤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뱀 또는 용이었다. 아폴론은 이 거대한 용을 활로 쏘아 죽이고는 이곳에 신전을 세웠다. 아폴론의 예언을 받는 신성한 예언자는 피티아로 불렸다.

기원전 8세기 작품으로 알려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는 이 신탁에 대한 언급에서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이 ‘신성한 피토’에서 조언을 구했으며, 트로이 원정군에게 닥칠 재난에 대해서 피티아가 어떻게 예언했는지 기술되어 있다.

그리스인들은 델포이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장소를 옴팔로스라는 원추형 돌맹이로 표시했다. 옴팔로스는 배꼽을 뜻한다. 이 옴팔로스는 신탁의 지하 아디톤 위에 놓여있었다. 제우스가 세상의 반대편으로 날려 보낸 독수리 두 마리가 이곳에서 만나 세상의 중심임을 확인했다는데, 지리학적으로 그리스 본토의 중심이기도 하지만, 이탈리아와 먼 그리스 식민지를 놓고 보아도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요즘도 옴팔로스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자기중심성, 세계의 중심이 자기라는 패권주의적 우월주의를 나타낸다.

델포이신탁의 예언자는 일 년 중 아홉 달만 일했다. 겨울이면 북쪽으로 여행을 가는 아폴론신을 대신해서 11월부터 2월까지는 아폴론의 난폭한 동생인 디오니소스가 델포이를 장악한다. 그는 열렬한 추종자들과 비의적(秘儀的) 제전을 펼치는데, 디오니소스의 대리자가 안내를 하면 숭배자들이 춤을 추며 신전뒤편 절벽으로 올라가 코리키안 동굴까지 11킬로미터를 걸어간다. 그 동굴 안에는 신성한 남근이 즐비한데, 그들은 여기서 비의의식을 통해 신의 의지에 인간의 영혼을 내맡기고 자유를 얻었다고 한다. 그들의 의식은 모든 활동을 비밀로 하겠다고 서약했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광란의 디오니소스 축제. 티치아노

그러나 진탕 마시고 춤추면서 광기에 휩싸이기는 했지만, 성적인 문란행위는 신의 뜻이 아니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로마에서 바쿠스신이 대신하는데, 포도주의 신이니만큼 술의 광란성이 주로 표현된다. 이 의식이 절정에 달하면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고함을 치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데 이 대혼란은 종종 사고를 유발했는데, 행렬이 길을 잃고 근처 마을로 들어가 시장에서 맥없이 주저앉기도 하고, 한번은 숭배자들 행렬이 산꼭대기 눈 속에 갇혀 구조대를 기다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디오니소스축제에서는 광란하는 여자들이 주로 몰려드는데, 광기에 사로잡힌 여성들은 마이나데스로 불렸다. 그런데 빛과 질서의 신인 아폴론과 어둠과 무아경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어떻게 한 신전에서 공존을 한 것일까? 이것은 니체의 저서인 ‘비극의 탄생’에서 아폴론의 신중성과 이성성이 디오니소스로 상징되는 인간본성의 원초적 충동을 부정할 때 야기되는 문명의 충돌, 곧 그리스문명의 발생이 이 두 신의 가치충돌에 기인한다는 사실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겨울철에 신탁소가 열리지 않은 것은 바로 프네우마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19세기 초부터 델피신탁에 관심을 가져온 프랑스의 고고학계와 20세기 들어서 과학자들은 본격적으로 델포이를 탐사했는데, 여기서 델포이의 지하단층이 가스를 유발하는 층이 정확히 교차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지기도 하였다. 이 가스층에서 올라온 기체는 환각성분이 있는 에틸렌같은 탄화수소로 여사제의 옴팔로스에 모여져 일종의 예언능력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한바 있다.

과연 이러한 본드성분의 환각기체가 여사제의 예언능력을 고무시킨 단서였던 것일까? 과학자들은 여기까지가 아마도 델포이신전의 비밀에 부여하는 객관적 근거일 것이다. 신과의 교감은 신비한 기체의 여부가 아니라 숭배자들의 신심어린 열망과 사제들의 깊은 경지, 그리고 신상과 신전의 신비한 환경적 요인에 기인했을 터이다.

 

 오라클.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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