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걷는다(9)"..'용왕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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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걷는다(9)"..'용왕의 길'을..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7.01.08 19: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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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탐방)대평포구-화순금모래해변,소풍처럼 짧고 삼빡한 아름다운 길..

 

 

올레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만나고 싶은 것일까.


우리가 걷는 올레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에 숨겨진 어떤 것을 찾기 위한 투쟁이 그 안에 숨어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걷고 또 걸으며 다시 걷다보면 어떤 때는 웃고 어떤 날은 또 슬퍼질 지도 모른다.


그래서 올레는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도를 닦게 되는 수행의 길이 된다.

 


실크로드를 걸었던 베르나르는 그곳에서,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고 가끔 만나는 도적들과 싸움을 하면서도 길고 긴 그 장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실크로드를 걸으면서 아주 옛날 똑같은 어려움 속에서 그들이 겪으며 걸었을, 그곳에 사는 그 마을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했다.


그리고 대부분-그는 그들의 친절함과 그들의 손님을 맞이하는 일반인들의 일상의 삶을 좋아했다.

비록 관광객이라는 이유만으로 쓰게 되는 바가지요금 정도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왜냐 하면 그는 돈보다도, 피곤하고, 너무 지치고, 너무 허기진 상태에서 그런 곳을 찾아야 했고 꼭 그런 때에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올레는  그런 지역주민들과의 교감의 시간은 많지 않고-사실 거의 없었지만, 적어도 어떤 위험이나 비장함 없이 홀로 차분한 마음으로 걸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2017년 1월7일.

새해를 맞이하고 처음 올레를 걷는 토요일은 날씨가 흐렸고 비가 온다는 소식이었다.

늘 올레를 걷는 날 아침에는 마음이 요동친다.

이날도 그런 요동은 멈추지 않았다.

결혼식에, 조문에..점심식사 약속에..

그 모두를 포기하고 떠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비까지 내린다는 예보이니 마음의 요동은 더욱 심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희망적인 것은 올레9코스의 길이였다.

7.5km..

이 정도면 편안히 3-4시간 정도면 걷기에 무난하리라 생각됐다.

온갖 잡다한 일은 우선 오후로 모두 미루기로 하고 일단 대평포구에 가 보기로 했다.

비가 많이 온다면 걸을 수 없겠지만 다행히도 비는 1-4mm 정도 내린다는 예보라 부담이 덜했기 때문이다.

올레로 가는 길은 늘 그렇지만 오전이라 그런지 신호등에 거의 막히지 않고 갈 수 있다는 건 기분좋은 출발을 약속하는 것 같아 떠나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대평포구에 도착한 시간이 10시경.
지난 주에 걸어서 도착했던 곳이라 감회도 새로웠지만 박수기정을 오른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 좋은 출발을 하는 아침이었다.

올레9코스는 한국과 레바논 양국간의 우정과국제협력의 표시로 지난 2014년 1월 레바논 마운틴트레일 21코스와 자매결연을 맺은 우정의 길이라는 안내문이 서 있었다.

포구에는 낚시를 하려고 준비하는 사람들로 보이는 몇몇이 서 있긴 했지만 나는 우비와 우산을 들고 박수기정을 향해 출발해 버렸다.

일단 걷기만 시작하면 몸은 자연스레 움직여 끝까지 걸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9코스는 박수기정과 월라봉이 난이도가 높다(난이도 상)고 나와 있어 올레지도로 미리 머릿속 답사를 해 본 결과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예상하긴 했다.

처음 걱정처럼 대평리로 들어오면서 내리기 시작한 비는 처음에는 이슬비처럼 내리다가 올레를 걷기 시작하자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내리는 비도 우산을 펴니 큰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이름도 특이한 박수기정.
그래서 그런지 박수기정으로 오르는 길에는 그림으로 그려진 안내문이 서 있었다.

박수기정이란 박수와 기정의 합성어로 ‘바가지로 마실 샘물’ 박수와 ‘솟은 절벽’ 기정이란 뜻.


이곳 대평리의 원래이름은 난드르라고 하는데 난드르란 ‘평평하고 긴 들판’을 뜻하는 제주어로 이를 한자로 대평이라 하고 요즘엔 용왕난드르라고 불리운다는 설명이 써 있어 이해하기에 좋았다.


용왕난드르의 전설 하나.


이곳에 용왕의 아들이 살았는데 이 용왕의 아들이 이 마을에 사는 학식이 높은 스승에게 학문을 배우게 되는데 서당 근처에 창고내라는 냇물이 밤낮없이 흘러 물소리가 시끄러워 늘 공부에 방해가 됐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 3년간 글공부를 마친 용왕의 아들이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소원을 말하라고 했더니 그의 스승은 냇물의 물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그 소리를 없애달라고 했다.


이를 흔쾌히 수락한 용왕의 아들은 이곳에 박수기정을 만들어 방음벽을 설치했고 동쪽으로는 군산을 만들어주고 떠났는데 이후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겹 병풍을 풀어세운 듯 보이는 박수기정은 용왕난드르와 함께 이제 이곳 대평포구의 대표적 명소가 됐다.


'기정'은 단애, 절벽, 벼랑을 말하는 제주어이다.

 


영화감독 장선우 감독이 조그만 시골집을 개조해 물고기카페를 만들어 처음 자리잡았을 때만 해도 이곳은 그리 번자한 곳이 아니었다.

그곳이 유명해지면서 한두사람씩 문화예술인들이 들어오면서 이곳은 새로운 곳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각종 카페와 특이한 민박집들이 들어섰고 지금은 조그만 그들만의 소도시로 변해 있다.


박수기정을 오르는 길에는 막은골과 송항이라는 안내문을 감산리마을회에서 만들어놓았는데 막은 골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골짜기가 막혀 있어서 이를 표현한 것이고 송항은 8백여년전에 개설된 공마로를 연결한 것이라고 한다.

이 포구는 몽고 지배시부터 말을 조공으로 바치기 위한 해상수송로로 이용됐고 조선 조정에 군마를 수송한 호국의 장소(송항)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어 몰질(말길)이라는 안내문도 또 하나 붙어 있었다.


공몰캐라고 불리웠다는 이 길은 고려조 말기 원나라의 제주통치 당시 감산리 동쪽 동네에 군마육성소가 있었는데 공마를 기르던 곳이라 하여 공몰캐(공물로 바치는 말을 운송하던 포구)라고 했다는 것.

 

 

대평리포구인 당캐와 이 군마육성소 사이에 물건을 운반하는 육상로로 이용됐다는 설명이었다.

박수기정을 향해가는 초입은 이처럼 친절한 안내문 덕분에 계속 이어진 돌로 만들어진 길이 정겹기까지 했다.

투박한 돌길이 작은 길을 따라 계속 오르는 길로 이어져 올라 그 중간에 서서 몰질(말길) 끝에서 바다를 바라 보니 멀리 마라도와 가파도 송악산 형제섬이 모두 보인다.

오르면서 보니 또 한라산에 눈이 쌓여 군산 오른쪽에 하얀 눈을 덮고 예쁘게 서 있었다.

이 돌길을 다 지나자 편안한 흙길이 나오고 곧 배추가 모두 자란 조그만 평야가 나타났다.

박수기정에서는 동쪽으로 서귀포 앞바다가 3개의 섬과 함께 멀리 보였고 서쪽으로는 마라도 등 바다를 다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나타났다.


풍광이 장난이 아니다.
그곳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의자까지 비치돼 있다.

 

다시 들길이 시작된다.

조금 더 걸으니 6km가 남았다는 표시가 나오고 아주 가깝게 마라 가파 형제섬이 보이는 비경이 그곳에 서 있었다.

대평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

이 길에는 유독 수선화가 많이 피어 있었다.

야자수잎으로 만든 카페트길(?) 걷고 있는데 소나무가 인사하듯 서 있는 특이한 광경도 관찰됐다.

이곳은 볼레낭길이라고 소개돼 있었다.

제주에서는 보리수나무를 볼레낭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에 볼레낭(볼레는 열매의 이름, 낭은 나무의 제주말이다)이 우거진 길이라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명이 안내문에는 쓰여 있었다.

볼레낭길을 다 지나니 봉수대가 있었다.

이어 월라봉까지 가는 동안 편안한 들길이 이어지고 바다는 산방산이 항상 그 길과 함께 했다.

9코스는 어디를 가나 주인공은 늘 산방산이었다.

이곳을 걷는 동안 화순앞바다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을 보면 목적지가 바로 코앞이라는 얘기인데 그 코스가 어떻게 연결이 돼 있을지 무척 궁금했다.

 

편안한 들길을 걷는데..
그때 문득 산방산을 향해 장엄하게 서 있는 큰 바위 하나를 발견했다.

앞으로 가서 볼수 없으니 어떤 모습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마치 독수리가 아래를 내려다 보며 앉아있는 듯한 거대한 바위였다.

왜 그 바위는 산방산을 바라보며 거기 앉아 있을까..

마치 사람이 갖다놓은 듯 아래쪽에 돌이 받쳐져 있는 점도 참으로 특이한 광경이었다.

독수리바위..
뒷모습이 꼭 그랬다.

이 독수리바위를 지나자 보이는 월라봉..

 

월라봉에는 5색토(백·청·적·녹·갈색)가 지하에 매장되어 있어 이를 채취하여, 건축물의 벽채나 바닥을 도벽하는 건축자재로 사용하여 왔다고 전해진다.

이 흙에는 광석(알미늄)이 함유되어 있다고 하며 산의 모양이 달이 떠오르는 모습과 같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월라봉으로 오르는 동안 나타난 커다란 몇 개의 바위들은 비박하기 딱 좋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비가 많이 올 때는 그 안으로 들어가 비가 그칠 때까지 숨어있어도 좋을 만한 공간이었다.

월라봉은 정상으로는 올레길이 연결돼 있지 않았지만 그곳에는 일제시대때 만들어진 동굴이 6-7개나 연이어 만들어져 이제는 기념물로 남아 있었다.

제주도 전역에 만들어져 있는 이같은 동굴은 제주도민들이 얼마나 그들의 횡포에 시달리며 살았는 지를 느끼게 한다.

 

 

월라봉을 휘휘 돌아 내려오는 길에는 군데군데 소나무들이 여럿 쓰러져 있었다.
얼마전 지나간  차바태풍에 피해를 본 모습이 그대로 남은 것이다.

월라봉을 내려와 계곡과 이어진 길을 걷는데 계곡은 계속 오른쪽에 보였지만 그곳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다.

이 창고천은 안덕계곡을 이르는 말이다.

중간중간 오른쪽에 절벽이 계속 보이며 길이 이어졌다.

나무로 가려져 보이지는 않고..아쉬운 마음으로 계속 내려올 수 밖에 없는 길.

실제로 안덕계곡을 가 보면 그 엄청난 위용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다음은 안덕계곡에 대한 설명이다.

남제주의 안덕면에 창고천이 있다. 언제인지 확실치 않으나 ‘창고가 있었던 사실’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창고천을 경계로 동쪽에는 창천(倉川), 서쪽에는 감산(柑山)이란 마을이 있으므로, 이 하천은 부락의 경계로도 이용된다.

《동국여지승람》에 감산천은 있어도 창고천은 없다. 경쟁관계에 있는 두 마을 사이에서 마을의 성쇠와 관련하여, 동일한 하천이 이름에서 달라진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논리로 본다면 책이 완성된 중종조까지는 감산이 창천보다 번영했고, 이후에 자리가 뒤바뀐 것으로 해석된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색달천과 감산천은 현읍의 동쪽으로 각각 35리와 15리 지점에 있다. 이들 하천의 근원은 모두 한라산에서 나오며, 두 언덕이 성벽을 깎아 세운 듯 가운데에 암석이 깔리고, 물줄기가 곧장 내려와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고 했다.

이것은 암벽으로 에워싸인 계곡을 의미하므로, 오늘의 관광 명소인 안덕계곡(安德溪谷)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마을은 남쪽의 계곡보다 제약이 적은 북쪽으로 분화하게 되므로, 한라산의 높은 지대로 상창(上倉)이 자리했다. 상창의 땅 이름 또한 근원적으로 창고에서 출발한 것이 분명하다.

[네이버,창고천 [創庫川] - 창고가 있는 내 (땅 이름 점의 미학, 2008. 5. 15., 부연사)}

창고천 하류로 나오자 넓은 초지가 나오고 그 길은 바다쪽으로 비스듬히 길을 이어가고 있고 그 초지를 다 내려오자 곧 위쪽으로 길은 또 이어진다.

안덕계곡(창고천)의 끝지점인 황게창이 나타났다.

이곳에 세워진 안내문에는

“황게창은 안덕계곡의 하류로, 이 계곡을 중심으로 동쪽은 감산리이고 서쪽은 화순리로 나뉜다.
한때 게창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쪽에는 장수발자국이라는 고인돌이 있고 섯진마루라는 군사주둔지가 있으며 동쪽 능선에는 봉화대가 있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바닷가 동쪽에는 씰래와 넙은덕이라는 유명한 낚시터가 있다는 점 등을 볼 때 빨간게가 해변에 서식하고 있어서 이를 보고 황게창이라고 했을 가능성도 있다(감산리마을회).“고 쓰여져 있었다.

 

 

 
 

이곳도 얼마전 태풍에 엄청난 일이 벌어진 듯한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월라봉에도 소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이더니 이곳은 아예 길이 움푹 파여져 있을 정도였다.

얼마나 큰 비가 내려 물이 흘렀던 것일까.

마치 암벽화가 그려져 있을 법한 곳 위에 있는 나무에도 계곡물이 흐른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제주에서는 ‘내창이 터졌다’는 말을 한다.

큰 내에 물이 나무 많이 흘러 계곡물이 넘쳤다는 뜻이다.


요즘도 내창이 터지면 복개한 주차장으로 물이 넘쳐 자동차들을 쓸어가 버리기도 하니 아마 예전에는 더 큰 피해가 속출했을 것이다.

 
 
   
어둠속에 핀 꽃이 아름답다 했던가..
이곳에도 많은 수선화가 피어 있었다.


쓰러지고 갈라진 그곳에 피어난 수선화가 그리 예쁠 수가 없다.

이 아름답기만한 계곡을 지나자 곧 중간스탬프 포스트가 나타났다.
넓은 주차장이 만들어진 곳, 올레화장실옆 휴게터에 있었다.

 
 

중간 스탬프를 찍은 시간은 13시15분.

이곳에 앉아 잠시 쉬려는데 닭의 해라 그런지 닭울음 소리가 계속 났다.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니 이곳 감귤농가에서 키우는 닭 두 마리가 데이트를 하는 것인지.. 하나가 "꼬꼬댁.."하고 울면 또 한 마리는 "꼬끼요.." 하며 계속 서로 주고받으면서 주위를 산책하는 모습이 보였다.

닭들은 데이트를 하며 그렇게 대화하는가 보다.

그곳에 앉아 있자니 다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종착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발전소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그곳에 선사유적지가 나타나니 그것도 보고 지나가야 하고..

 

이곳 유적터는 유리를 씌워 안을 보게 만들어 놓았지만 유리에 붙은 빗물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 볼 수는 없었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듯 각종 토기와 생활상이 그대로 남아 예쁘게 정리돼 있었다.

그곳을 나와 길게 이어진 큰 길을 지나니 화순해수욕장이 있는 마을로 들어서는 길이다.

마을안에 들어서자 마자 앞쪽으로 올레안내소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종점스탬프를 찍고(13시40분) 지도도 하나 새로 얻었다.

8코스까지 다니는 동안 올레지도가 너덜너덜해졌기 때문이다.

안내직원에게 대평포구로 가는 길을 물으니 14시30분에 그곳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며 계속 걸어올라가면 된다고 한다.

이곳 마을 정류소에 도착하자 14시.
30분 정도의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그 정도의 시간이면 김밥도 있고 커피도 남았기에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편의점에 들어가 요기를 하기로 했다.

컵라면과 김밥과 커피를 다 마시고 나니 14시20분.

이제 버스를 기다리면 되는 시간이다.

이날 올레길에서는 한사람도 올레꾼은 만나지 못했지만 식사를 하는동안 내옆을 지났던 올레꾼 한사람이  버스정류장에 서있었다.

"올레를 걸었느냐"고 물으니 “예전에 한번 다 돌았는데 다시 돌고 있는 중”이란다.

“차는 월드컵경기장에 놓고왔다”고 하는 걸 보니 나보다 더 많이 걸은 모양이었다.

그때 한 택시가 서더니 “대평포구까지 미터요금만 내고 타라”고 한다.
“멀지 않다”며..

버스를 기다린 시간이 아깝긴 했지만 시내에 볼 일을 미뤘던 나는 빨리 움직여야 하긴 했다.

택시에 오르면서 아까 그 올레꾼에게 같이 가겠느냐고 하니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아침에 떠났던 출발점으로 돌아온 시간은 14시36분.

택시요금은 6100원이 나왔지만 기사아저씨는 6천원만 내라고 한다.
마침 택시를 기다리는 손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손님에게도 “목적지까지 미터요금만 내세요..”라고 말하며 떠났다.

아침에 마음의 요동치는 대로 걷기를 멈췄더라면 9코스는 다음 주로 미뤄질 뻔 했다.

다음 주에는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 것인가.

이처럼 이날 하루 해야 할 모든 일을 다 제대로 마칠 수 있었다는 것은 마음의 요동을 누르고 떠났기 때문이었다.

아주 간단히 소풍처럼 다녀온 9코스 탐방..

 

베르나르는 또한, 이란인들이 즐기는 소풍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이란 사람들은 밖에서 식사하는 걸 대단히 좋아한다.


유목민의 유산일까, 아니면 이곳에서 보기 힘든 풀에 대한 사랑, 시원한 그늘, 사람들의 눈에 띄려는 욕망 때문일까?(중략)
...


사람들 말로는 특히 정원과 관련있는 모든 장소에 이란인들이 느끼는 아주 오래된 향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페르시아어의 정원은 '파라다이스'의 어원이다.


이란의 소풍은 불편함과는 별 상관이 없다.


사람들은 필요한 것은 물론 불필요한 것까지, 엄청나게 많은 물건을 자동차에 싣는다.
(중략)..


하지만 내가 감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무도 라디오를 가지고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족과 친인척까지 모두 아침 열시에서 열한시쯤 모여서 하루종일 수다를 떨고, 편안하게 세상을 잊고 쉰다.


프랑스 사람들이 휴가를 받은 다음날 마른강가로 달려가 느긋한시간을 즐기는 것처럼, 지구가 돌기를 멈춘 시간이다.


사람들은 나른한 행복속에 하루를 즐기고, 밤이 되어야 텐트를 거둔다."

 

올레9코스는 하루의 소풍을 즐기듯 진짜 잠시 올레길에 나와 걷다가 돌아가는 듯한 흡족한 즐거움을 주었다.

올레코스가 이처럼 하루종일 아닌 반나절 정도의 코스로 만들어졌어도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짧고도 삼빡한 코스였다.

골프도 18홀이 있고 9홀이 있듯이..
선택은 그곳에 가는 사람이 하는 법이니까..

다음 가야할 코스는 10코스다.

이곳은 또 제주도의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무엇을 만나게 될 것인가..

 

 

제주올레9코스
 

제주올레홈페이지

 패스포트 스탬프 확인 장소

시작 : 대평포구
중간 : 화순 황개천 올레 화장실
종점 : 화순 제주올레 10코스 안내소

난이도

난이도 - 상

거리(시간) - 7.5km (3~4시간)

길이는 짧지만, 박수기정과 월라봉에 올라야 하는 쉽지 않은 코스다.

우정의 길 레바논 마운틴 트레일(Lebanon Mountain Trail)

 

작고 정겨운 대평포구에서 시작해 말이 다니던 '몰질'을 따라 걷노라면 절벽 위의 드넓은 초원인 박수기정이 나온다. 품질 좋은 제주의 조랑말을 박수기정 위에서 키워 몰질로 대평포구까지 배에 실어 원나라로 보냈다고 한다.

박수기정은 보리수나무가 우거진 볼레낭 길로 이어진다. 월라봉을 오르는 길은 쉽지 않지만 곳곳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펼쳐 보여준다. 제주의 원시 모습을 간직한 안덕계곡은 제주의 감춰진 속살을 제대로 보여주는 비경. 제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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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이 2017-01-09 23:51:56
올레...제주의 올레가 너무도 제주인의 삶을 닮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주의 올레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무런 생각없이 걷던 올레길,... 올레길에 이렇게 오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수 많은 얘깃 거리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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