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어부가 주체..조일리 영일동도대불(방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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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어부가 주체..조일리 영일동도대불(방사탑)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1.12 2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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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보호 위해 조선시대에 설치, '답'이라는 방사 유적

조일리 영일동도대불(방사탑)

 

 


영일동 도대불

 

위치 ; 북제주군 우도면 조일리 영일동 포구

 

 

제주도의 바닷가 마을에는 옛 등대들이 남아 있다.

어원에 대해서 알아 보면

(1)도대불 ;

①돛대처럼 높은 臺를 이용해서 불을 밝혔기 때문에 돛대불→도대불이라 했다.

②뱃길을 밝히는 것이라 해서 道臺불이라 했다.

③일본어 '도우다이'에서 온 것 같다는 추측도 있다.

(2)등명대 ; 조천읍 북촌리 도대불 비석에 '燈明臺'라고 음각되어 있고, 화북 포구에도 ''燈明臺'라는 글귀가 쓰인 비석이 있었다.

(3)관망대 ; 조천읍 신촌리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관망대'라고 한다. 북촌리에서는 비문에 '燈明臺'라고 되어 있어도 부르기는 도대불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러 마을에서 밤에 조업 나간 배가 들어올 때 유도하기 위해서 연대 위에서 횃불로 불을 밝히다가 뒤에 도대불을 세웠다는 것과, 도대불을 세우기 전에는 긴 나무를 세우고 불을 밝혔다는 내용들이 전한다.

우리 나라에 현대식 의미의 등대불이 처음 켜진 것은 1903년 6월 인천 팔미도등대이다.

제주도에서는 우도등대가 1906년 3월에 처음 불이 켜졌는데 이는 전국에서 여섯째이다.

 

제주도에는 도대불이 모두 18기 남아 있다. 도대불은 '신호유적'이다.

마을마다 그 형태는 다양하다. 재료도 처음에는 돌을 이용하였고 뒤에는 쇠를 이용하기도 하였으나 쉽게 부식되어 현재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석축한 도대불의 형태를 구분하면 ①원뿔형 ②원통형 ③사다리꼴형 ④상자형 ⑤표주박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언제부터 도대불을 만들고 사용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두모연대를 도대불로 사용한 점이나 별방진성의 치성을 도대불로 사용한 점 등으로 미루어 생각건대 연대·돌탑·성이 그 실질적인 기능을 상실할 무렵부터 마을 사람들은 도대불로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도대불이 현대식 의미의 등대와 다른 점은 축조 운영의 주체이다. 등대는 국가가 그 주체이고, 도대불은 마을 어부들이 그 주체이다.

어부들이 당번을 정하여 또는 특정인에게 위탁하여 점등과 소등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연료로는 물고기 기름·솔칵·석유 등을 이용했다.(북제주군의 문화유적 304∼305쪽)

영일동 포구의 도대불은 방사탑 위에 설치되었다. 마을을 보호하도록 하기 위하여 조선시대에 설치된 '답'이라는 방사 유적이 도대불로 사용되었다.


탑은 잡석을 이용하여 허튼층쌓기를 하였고 속은 잡석채움을 하였다. 평면 사각을 이루고 정면 사다리꼴을 이루고 있어 듬직하고 균형미가 돋보인다.

높이 530cm, 너비450cm 정도이며, 상단면은 시멘트로 발랐는데 〈1962. 10. 11 준공〉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이것은 도대불을 설치할 때 준공 일자를 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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