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남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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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남산봉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7.02.28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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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178.8m 비고: 54m 둘레: 1,660m 면적: 185,332㎡ 형태: 원형

 

남산봉

 

별칭: 망오름. 남산봉(南山峰)

위치: 성산읍 신풍리 1,675-21번지

표고: 178.8m 비고: 54m 둘레: 1,660m 면적: 185,332㎡ 형태: 원형 난이도: ☆☆

 

 

 

대나무가 숲을 이룬 굼부리와 봉수대 터가 있던 산 체...

 

제주의 수많은 오름들 중에 흔하지 않은 명칭으로 부르는 산 체이며, 오름이나 악(岳)으로 표기를 하였다면 이해가 쉽겠지만 남산봉이라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확실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고 있고 추측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현청이 있었던 성읍리를 중심으로 영주산은 뒷산이고 남산을 앞산으로 부르다가 이후 남산봉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조선시대 제주의 행정 개편이 이뤄질 당시 지금의 성읍리는 정의현으로 구분이 되었고 현청(縣廳)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성읍리 마을을 중심으로 할 때 남쪽에 위치한 때문에 남산(南山)이라 했고 이후 봉수대가 세워진 것과 관련하여 봉(峰)을 추가해서 남산봉으로 부르게 되었을 것이라는 내용이 가장 근접한 내용으로 보인다. 또한 성읍리를 대표하는 오름 중에 영주산이 있는데 마을을 기준으로 이곳을 뒷산이라 하였고 남산봉을 앞산으로 부른 적이 있다는 내용도 전해지고 있다.

남산봉과 관련한 내용 중에 현청이 자리한 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빼어난 절경이나 장소와 관련하여 남산봉을 묘사하기도 했는데, 오름 정상에서 바다에 비친 달빛을 바라보는 모습이 장관을 이뤄 ‘남산명월(南山明月)이라 하였고 정의팔경(旌義八景) 중 하나로 꼽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오름 정상부에 봉수대가 있었던 곳인 만큼 정의현을 중심으로 하는 요지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곳 봉수대는 동쪽의 독자봉수와 남쪽의 달산봉수와 교신을 하면서 정의현을 지켰다. 정상부에는 지금도 봉수대 터 자리가 뚜렷하게 남아 있어 탐방로를 따라 이동을 하면서 만나볼 수가 있다.

 

제주의 오름들 중 봉수대가 있던 곳은 하나같이 별칭으로 망오름이라 부르는 만큼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기슭을 오른 후 정상부에 도착을 하면 정의현청이 있던 지금의 성읍리 일대가 전망되며 이 마을을 대표하는 영주산(오름)도 한눈에 들어온다.

남산봉의 특징을 꼽으라면 무엇보다 원형의 굼부리 안을 들 수가 있다. 보통의 오름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색적인 환경을 이루고 있는데 그 개체가 대나무이다. 빽빽하게 숲을 이룬 대나무들은 언제부터 자라나기 시작했는지 굼부리 내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제주의 수많은 오름들 중에서 이런 형태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대나무가 군락을 이룬 때문에 화구 탐방 과정에서는 다소 어려움이 따른다. 오름 기슭에는 산책로가 마련되었으며 화구 둘레를 돌아보며 봉수대 자리와 산림욕장의 입지를 확인할 수가 있다. 오름 재정비 이후 산책로가 잘 구성이 되었으며 기슭을 거친 후 등성을 따라 둘러본 후 굼부리의 일부도 살펴볼 수가 있다.

얼핏 성읍리 권역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행정구역 상 신풍리 소재의 오름이다. 정리하자면 남산봉의 위치는 표선면과 성산읍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셈이다.진입을 할 수 있는 다른 경로도 있지만 초행일 경우 성읍리 남문을 통하는 것이 수월하다. 남문 주변에서 오름 기슭이 보이며 그 방향의 소로를 따라가면 초입지가 있다.

 

 

 

-남산봉 탐방기

 

-성읍리 남문을 지나 소로를 따라 들어간 후 초입지에 들어섰다. 주차 공간과 함께 워밍업을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트레킹 코스와 관련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어 도움이 되었다.

경사가 심하지는 않지만 곧바로 능선을 따라 오르게 되는데 산책로 코스는 목재 계단과 자연의 길 그대로가 번갈아 이어지면서 환경의 변화를 줬기에 느낌이 좋았다. 진입로에서 만난 떨어진 솔잎과 낙엽들이 그렇게도 반갑게 느껴지는 것은 남산봉의 숨은 매력이기도 했다.

둘레를 따라 들어가다 기슭을 오르고 얼마 후 봉수대 자리를 만났다. 지금의 성읍리 지역인 정의읍성을 지키는 가장 가까운 봉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미가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서쪽의 독자봉수와 남쪽으로는 달산봉수와 교신을 하였다. 봉수대가 있던 자리에 오르고 주변을 살폈지만 봉우리 외에 이렇다 할 흔적은 없다.

사실 도내의 여러 오름들에서 만나는 봉수대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흔적이지만 관리나 보존에 있어서는 약한 편이다. 아쉽다는 생각을 할 즈음에 봄을 맞아 싱그럽게 돋아난 고사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사리만이 아니고 풀과 잡초 역시도 파릇파릇한 게 눈요기에 딱 어울렸다.

지천에 돋아난 고사리를 몇 개 꺾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하얗게 피어난 산탈(딸기) 꽃을 덤으로 만났는데 새삼 앙증맞은 모습에 한동안 눈길을 주었다. 둘레를 돌다가 갈림길에서 화구로 내려가는 길목이 있는데 굼부리 안으로 이어진다.

산책만을 즐긴다면 포기하겠지만 탐방을 겸하는 과정에서 굼부리를 뺄 수는 없었다. 초입은 그저 대나무가 군락을 이룬 숲처럼 느껴졌으나 이내 반전이 이뤄졌다. 빽빽하게 ​들어선 대나무들이 굼부리 안의 전부를 장악한 상태였다. 이러한 환경을 갖춘 곳은 없기 때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녀간 흔적들이 있어서 좁고 엉성하나마 진입의 공간을 이용하여 계속해서 전진을 했다. 전반부에는 몸을 웅크리며 들어갈 수가 있었으나 일정 지역에 도착을 하니 다소 불편하고 진행이 어려울 정도였다.

어떻게 화구 안 전체가 이렇게 대나무 숲으로 이뤄졌는지 참으로 궁금하고 특별한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주산이 버티는 성읍리 인근의 신풍리에 위치했지만 숨은 오름이면서도 비교적 환경이 좋은 오름이다. 계절이 바뀌고 다시 찾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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