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이호동 마을 탐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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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이호동 마을 탐방길”
  • 김태홍 기자
  • 승인 2017.03.10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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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와 미래의 꿈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동네길

이호테우해변
이호동은 제주시 동지역 중에 유일하게 제법 큰 논이 있는 곳이 있었지만 지금은 논에는 미나리가 자라고 있다.

제주는 신들의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신을 모시고 있다. 그 신은 바위에 붙거나 나무에 있는 줄 알았던 제주 사람들은 큰 퐁낭 아래 신당을 조성하거나 방사탑도 쌓았다. 어쩌면 신이 많다는 것은 그렇게 삶이 척박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이호동에는 유난히 방사탑이 다른 지역에 비해 밀집되어 있다.

이호동 마을 탐방길은 원장천 하류 바닷가 현사마을 입구에서 시작된다. 입구에는 내도동에서 이어지는 올레와 제주불교성지순례 보시의 길이 교차하고 있다. 두 길은 해안도로를 따라 이호테우 해변으로 가지만, 마을길은 원장천 하류에서 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남당으로 향한다. 남당으로 가는 길은 원장천의 뚝 길을 따라 한라산을 향해 펼쳐진다.

 

 
한사람이 겨우 지날 갈 정도의 길이지만, 동산 위로 향해 걷다보면 한라산의 설경과 현사마을의 아직도 변하지 않은 옛 그대로의 정취를 만끽할 수가 있다. 뚝 길이 끊어지고 자동차 한 대 정도가 겨우 지날 갈 수 있을 만한 마을 뒷길을 만난다.

이 길부터가 동네 사람들의 물을 길으러 다녔거나, 태풍이 불 때는 포구에 배를 묶기 위해 숨이 가쁘게 뛰어다녔던 곳이 아니었을까. 나만의 상상을 하는 순간 내 눈에는 ‘남당’ 표시판이 눈에 들어온다. 첫 번째로 만나는 남당은 원장천 동쪽 암반 아래에 있다.

옛날 이 길에는 밤에만 나타나는 백발노인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자신이 허락 없이는 이 길로 다니지 못한다고 했다. 이 노인 때문에 불안해서 마을 사람들은 이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을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 그 노인을 찾아갔다. “저의가 어떻게 해야 마을 사람들이 편히 이곳을 다닐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노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을 정성껏 모시라고 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은 힘을 모아 이곳에 현사마을 본향당인 ‘남당’을 조성하여 극진히 모셨다. 그 이후로 마을에는 근심도 사라지고 백발노인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현사 마을의 지형적인 면으로 보면 이곳 사람들은 어업에 종사하며 바다가 생활 터전이었던 현사마을 사람에게는 남당은 정신적인 의지 처로 보인다. 마을 안은 이호 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오고 새롭게 신축된 현대식 건물과 어우러진 파랑지붕, 노랑지붕, 검은 돌담이 겨울햇살에 동화 속 풍경처럼 정겹다.

현사마을을 가로지르는 일주도로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수많은 차량행렬이 굉음을 쏟아내며 어디론가 달려간다. 그 소리가 잠시 멈추니 횡단보도 신호등은 초록색으로 바뀐다.

 
 
덕지물로 들어가는 길은 길 위쪽에는 언덕배기와 아래쪽으로 논밭이 펼쳐진 길로 들어서니 아직도 변하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길이 이어진다. 덕지물에 도착했다. ‘덕지’는 언덕 아래의 못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물은 마을의 식수로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 물을 끌어들여 덕지논을 조성하여 벼를 재배했었다.

덕지물과 이웃하는 땡가물에도 바위틈에서 물이 쏟아나고 있다. 이호는 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땡가물을 돌고 나오니, 골왓디(마을)에는 방사탑이 있다. 이곳 방사탑은 비드렁물과 ᄀᆞ망물의 용천수를 지나면 이호 2동 가물개 일대가 나오는데 예로부터 이곳에는 사귀가 많았다. 잡귀 때문에 마을에 어려운 일들이 많이 발생하여 방사탑을 세웠다고 한다.

마을의 북쪽 지대는 낮고, 바다가 훤히 들여다보여 액운이 이쪽으로 들어온다고 믿어 탑을 쌓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탑을 쌓은 이후로 큰 재앙이 없이 평생을 무탈하게 살 수 있었다는 구전이 전해온다. 방사탑에 대한 믿음이 종교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골왓디에는 까마귀와 방사탑이 마을의 흉재를 없애자는 공동체 의식과 더불어 흉함이나 길함을 공동분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하려 했던 선조들의 지혜로운 삶을 찾아볼 수가 있다.

 
 
섯가물개를 돌고 나와 오광로 대 도로변을 건너서부터 이호2동인 오도롱이 나온다. 오도롱은 큰가름(대동마을)과 가물개, 골왓, 호병밭, 맷밭 등을 아우르는 이호2동의 총체적인 명칭이다. 오도롱도 많은 현대식 연립주택이 곳곳에 가득하여 옛 모습은 사진 속에서나 있을 것 같다. 말보기소낭을 거쳐 잣백길도 지났다. 그리고 외눈빼기로 해서 이호국민학교터를 거쳐 이호테우해변과 만나는 지점인 ‘대물’에 닿았다. 대물은 ‘대물깍’이라 해서 사리 때 밀려들어 오는 물과 대물에서 흘러든 담수가 만나 물웅덩이를 만든다고 한다.

현무암이 풍화하여 생긴 검은 모래로 이루어진 이호해수욕장에는 많은 관광객이 추위에도 불구하고 모여들고 있다. 백사장의 모래 입경이 매우 작아 열전도율이 높으므로 여름 한낮에는 맨발로 보행하기가 어렵지만, 피부병이나 무좀 환자들에게는 이로우므로 여름철이면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피부염 때문에 몰려온다고 한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아토피에는 이호해수욕장 모래찜질이 최고 효능을 자랑한다 하니, 믿거나 말거나 한 번쯤은 여름 때 찜질도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이호해수욕장을 지나면 붉은왕돌할망당이 나온다. 붉은왕돌할망당은 팽나무와 보리수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오색천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 신비스런 기운이 넘친다.

할망당에 할망은 아들을 출세시키려고, 부모의 건강을 빌기 위해, 부자가 되 달라고...... . 이 모든 일을 수행해주던 할망당은 사실은 절에 갈 수 없는 민초들에 간절한 기도처였다.

 
붉은왕돌할망당에는 지금은 오랫동안 매인 신방(무속인) 없는 상태에서 몇몇 노인네들이 다소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제주문화 보존을 위해서라도 보호 대책이 시급한 실정으로 보인다.

이호동 마을 탐방 길에는 제주의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공동체가 필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마음을 의지할 대상이 필요성도 느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많은 신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신들을 경배하는 가운데 이 동네 사람들은 현실의 고단함을 잊고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방사탑을 쌓았고, 본향당도 조성했던 것으로 보였다.

이호동마을 탐방길에는 이호동 사람들의 삶의 지혜와 미래의 꿈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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