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열녀문 동산'..중문동 김창은처절효김씨지려(節孝金氏之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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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열녀문 동산'..중문동 김창은처절효김씨지려(節孝金氏之閭 )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3.23 2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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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같이 돌아가겠다'며 남편 따라 죽어


중문동 김창은처절효김씨지려(節孝金氏之閭 )


절효김씨지려 節孝金氏之閭


위치 ; 서귀포시 중문동 주택가 일주도로변. 비석은 길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제여관 서쪽, 신성철물 동쪽에 있는 개인 집 울타리 안에 있다.


문화재 지정사항 ; 비비정
시대 ; 조선시대

 

▲ 중문동_김창은처김씨효열비(1212)위치

▲ 중문동_절효김씨지려

 

김씨는 1794년(정조 18년 갑인)에 출생하여 중문리 출신 나주 김씨 창은씨와 혼인하였다.

남편의 병이 깊어 중태에 이르자 호읍(號泣)하여 자기가 대신 죽기를 원했으나 남편은 죽고 말았다.

그래서 자기가 직접 염습(殮襲)하고는 어린 아들을 달래며 말하기를 '너는 모름지기 잘 자라서 조부모님을 효성으로 모시고 우리 집의 향화가 끊어지지 않게 하여라' 하고 계빈일(啓嬪日)이 되자 '남편과 같이 돌아가겠다'고 말하며 상대로 자익(自謚)하여 남편을 따라 죽으니 그녀의 나이 19세(1813년 순조 13년 계유)였다.

이런 사실을 전해 들은 순조는 1814년에 정표(旌表)를 명하였다.

나주 김씨 집안에서는 지대가 높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팽나무동산에 비를 세웠는데 오랜 세월에 비문이 풍화 부식되어 세 차례나 비석을 갈아 세웠다.

이 비석을 세운 후부터 이곳을 '열녀문동산'이라 불렀다.(불란지야 불싸지라 59쪽)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嗚呼烈哉夫□人之儀敬貞者也順以事人易死以從人難矣 烈夫金氏慶州后人南彩之女也 年十八婦于羅州后人金昌銀之家而同居七年孝事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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