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걷는다(19)"..'기도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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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걷는다(19)"..'기도의 길'을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7.03.29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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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19코스)조천-김녕,자연의 아름다운 조화가 기억에 남는 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불현듯, 그런 노래가사가 생각나는 날이었다.

비가 오는 길도 걸었고, 바람이 엄청 부는 추운 겨울날에도 걸었다.

그리고 눈 쌓인 겨울올레와 눈이 퍼붓는 숲속 올레길도 걸어봤다.

하지만 지난 5개월간 매주 토요일이면 올레를 걸으면서도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 날은 처음이었다.
특히 바닷가 쪽에서는 바람까지 세게 불어 사진은 찍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기어이, 중간까지만 걷고 나머지 구간은 다음날 걸어야 하겠다는 계획도 세웠으나..
중간스탬프가 있는 곳이 6km 정도 남긴 구간이라 빗속을 그냥 걸었던 악조건의 날이었다.

그 엄청난 빗속에서 “나는 왜 걷나..?”를 다시 생각했다.
결국 결론은 “걷기 시작했으니 끝장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작을 하지 않았다면 끝까지 갈 일도 없었겠지만 ‘시작했기에 걸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인생도 그와 마찬가지..


태어났으니 열심히 살아야 하고..
그래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살 수 밖에 없는 이치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3월25일(토요일)은 올레 19코스를 걷는 날.

날씨도 아침부터 잔뜩 흐린데다가 비까지 온다는 예보라 계속 망설였다.
날씨예보는 강수확률 60%, 강수량은 1mm정도였다.
오전에 비가 오다가 오후에는 계속 흐리다는 예보였다.
그러나 비는 오전에는 조금 내렸고 오후에는 아주 엄청 많이 내렸다.

그동안 두 번이나 비가 오는 날 올레를 걸었지만 늘 예상보다 비가 덜 왔었기에 적은 양의 비는 맞아도 괜찮다는 생각이었지만 이날만은 달랐다.
사실 아침부터 선뜻 일어서기가 싫은 것이었다.

 

계속 망설이다가, 일단 조천만세동산까지 가서 결정하기로 했다.
올레를 걷는 날은 늘 이렇다.
날씨가 안 좋은 날은 망설임이 더한 것이다.

계속 미적거리다가 겨울옷을 찾아 입었다(사실 겨울옷을 입기가 천만다행이었다. 비를 맞고 나니 매우 추웠다).

조천만세동산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09시30분 쯤이었지만 계속 차에 앉아서 고민했다.
주룩주룩 내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비는 내리고 있고,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실 올레길은 걷기만 시작하면 끝까지 걷게 되는 것임에도...

“걷자..”
그렇게 해서 이날의 어려운 올레걷기가 시작됐다.

출발시각은 09시40분..

올레19코스는 주차장에서 만세동산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기념탑이 가장 먼저 나타났다.
올레길은 기념탑을 바라보며 오른쪽 길을 따라 기념관 뒤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조천만세동산

조천리 만세동산은 일제시대 3ㆍ1운동 당시 제주도에서 맨처음 독립만세의 함성이 터져나온 곳이다.


조천, 신촌, 함덕리의 주민 500~600여명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구호를 외쳐 도내 곳곳에 만세운동이 퍼져나가게 된 시발점인 셈이다.

그 이후 이 곳을 만세동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만세운동기념탑이 1991년 조천만세동산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졌고 그 옆에 기념관이 건립돼 있다.(조천읍사무소)

그렇게 이어진 기념관 뒤쪽길은 편안한 올레길이었다.
들길과 밭길을 따라 길고 긴 길이 이어지고 그 길은 신흥 해안도로로 안내했다.


비는 아직 본격적으로 내리진 않았지만 계속 조금씩은 내렸다.
봄맞이 환경정화 사업을 했는지 이 지역 해안도로에는 해안쓰레기들이 곳곳에 놓여있었지만..

 

 

바다는 예의 그 파란 바다색은 사라지고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바다인지.. 비가 오는 바다는 그래서 음울하다.


특히 이 조천에서 신흥리까지 가는 해안도로에는 아름다운 돌담길이 숨어있다.

이 돌담길과 한라산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이곳은 보기도 좋지만 사진으로 남겨도 예술작품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날씨가 흐려 한라산은 보이지 않았다.

이 곳 밭에는 노란 유채꽃이 피어 봄을 반기고 있었다.
올레는 곧 관곶이라는 바닷쪽길로 이어진다.

 

 

관곶

이곳은 제주에서는 해남 땅끝마을과 가장 가까운 곳(83km)이라고 한다.


옛날 조천관 시대에 조천포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곳이 제주에서 북쪽으로 길게 뻗어 있어 각종 선박이 항로하는데 큰 도움이 되어 관곶이라 불리게 됐으며 조천포구가 제주관문 역할을 함으로써 제주목사, 선비, 유배자, 상인,일반인 왕래와 도민의상거래도 성행했던 곳이다.


여기서 바라보는 한라산과 제주시의 야경은 장관을 이루고, 날씨가 쾌청할 때는 추자도와 남해 도서를 조망할수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

 

이런 설명이 붙은 표지판이 이곳 입구에 서 있다.
그 길을 따라가자 해안돌담길이 나타나고 등대가 하나 서 있었다.

 

 
 
 


해안들길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인 듯 해안가에는 쓰레기가 가득 했다.

그리고 길은 다음 목적지인 서우봉이 보이는 해안도로로 이어졌다.
비는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바닷가에서 만나는 비가 별로 상쾌하지는 않았다.
이 길을 따라가는데 신흥포구 입구에 3km 지점이라는 표시가 나타났다.

이 곳은 특이하게도 육지에 2개, 바다에 3개의 방사탑이 세워져 있어 한꺼번에 5개가 보이는 곳이다.

기가 허한 곳이거나 사고가 많은 곳에 마을의 안위와 안녕을 염원하는 제주도 특유의 돌탑이다.

이곳에 세워진 시흥리방사탑 안내문에는..


"신흥리바닷가에는 두 개의 탑이 서 있다.
마을 사람들은 탑을 세운 방향이 허하다고 하여 남쪽과 북쪽에 1기씩 세웠다.


마을사람들은 이 탑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큰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남쪽 포구에 있는 탑은 '큰개탑' 또는 '생이탑'이라고 한다.


탑의 상단부가 오목하여 음탑을 뜻한다.
북쪽에 있는 탑은'오다리탑', '생이탑'이라고 하고 탑위에는 길죽한 돌이 새워져 있어 양탑이라고 한다“
는 내용이 쓰여져 있었다.

 

 

특히 이 해안도로에는 몇 년 전 인터뷰를 했던 비치아트를 하는 예술가가 살고 있다.

비치아티스트 박용헌 시바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이 아티스트는 바닷가에 널려진 각종 쓰레기들을 가져와 예술작품을 만드는 일종의 정크아트를 하는 분이지만 그는 굳이 “비치아트를 하는 것이며 해안쓰레기를 정리하거나 하는 일은 아니”라고 말했던 분이다.

박 대표는 "해변환경콘서트를 한번 같이 열자"고 했었는데, 아직 준비가 안됐는지 소식은 없다.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보려고 안으로 들어가 봤으나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안으로 들어가 사진만 찍고 나왔다.
집밖이나 집 안이나 각종 잡동사니-예술가의 소품들로 가득 했다.

그런데..바다를 보니 숭어떼가 가득이다.
얼마전 한강에 그렇게 많은 고기떼가 몰려다닌다더니..

 

 

시흥에서 함덕으로 넘어가는 구간 바닷속이 그랬다.
수백마리는 될 듯..한꺼번에 몰려다니고 있어 신비로웠다.


해안도로를 계속 걷는데 올레리본이 보이지 않았다.
보니 내 뒤를 따르던 올레부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다시 뒤로 돌아가 봤다.


그렇지..올레는 마을 안길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마을 입구에는 이팝나무자생지라는 표지와 함께 커다란 나무가 서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옆은 작은 호수였다.
새끼 숭어들이 뛰어놀고 있는 이 호수는 쇠물깍이다.

 

 

 

 

쇠물깍

쇠물깍은 신흥리 큰물에서 단물(또는 민물)이 아래쪽 바다로 흐르는 내(천)를 말하며 민간에서는 '돈물깍' 또는 ''쉐물깍'등으로 부른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 쇠물깍은 신흥리의 발상지이며 바위 아래에서 물이 솟아 바다로 흐르는 용천수로써 수도공급이 안됐을 때는 음용수로 사용했던 곳이다.


제주도의 전형적인 용천수로 농업용수는 물론 인근 함덕, 조천 일대의농경지 농업용수로도 사용되어 온 신흥리만의 삶의 터전이었다는
설명이 있었다.

이곳에는 여름이면 아직도 사용중인 듯 남샤워실이라는 페인트글씨가 담벼락에 쓰여 있었다.

이어 들어선 마을안길..
평화로움이 넘치는 조용한 마을이 거기 숨어 있었다.

 

 

마을주민들의 숫자를 반영하듯 신흥초등학교터에는 옛배움터라는 표지석과 함께 제주다문화교육센터라는 또다른 커다란 표지석이 함께 서 있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마을길을 따라 나오니 밭담이 이어진 밭길이 이어진다.
대파와 보리가 자라는 길목..
봄비를 맞으며 호젓한 이 길을 걷다 보니 5km 지점에 도달했다.

그리고 길은 함덕 해안도로로 안내했다.
함덕 바닷가마을은 예전 모습 그대로다.
조그마한 포구와 돌담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제주가옥이 오롯이 서 있는 곳이다.

이제 함덕해수욕장이 보이는 해안도로다.
서우봉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남은 거리 11.3km라는 표시가 보이고..

 

 
 

 
   
함덕해수욕장 부근은 마치 부산 해운대처럼 높은 건물들로 가득했다.

해수욕장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올레길은 이렇게 예쁜 함덕해수욕장 모래사장을 밟고 지나가도록 이어졌다.


함덕해수욕장은 제주에서 그 아름다움이 손꼽힐 정도다.
금색모래와 푸른 바다가, 서우봉에 유채꽃이 피게 되면 그 샛노란색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경관을 자랑하는 것이다.

 

 

이날도 그 아름다움은 퇴색하지 않았다.
다만 서우봉에 유채꽃이 아직 많이 피지 않았을 뿐..
그 아름다움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이곳 해수욕장에서 나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찾아들어간 곳은 맛있는 제주만들기 17호점 문어짬뽕을 파는 곳이었다.
피자도 있었으나 나는 맵지않은 문어짬뽕을 시켰다.


이제 서우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서우봉은 살진 들소가 뭍으로 기어 올라오는 듯한 형상이라고 하여 예부터 덕산으로 여겨져 왔다고 한다.


동쪽 기슭에는 일본군이 파놓은 21개의 굴이 남아있다.
서우봉 산책로는 함덕리 고우철 이장과 동네 청년들이 2003년부터 2년 동안 낫과 호미만으로 만든 길이라는
올레설명이 놓여 있었다.

 

입구에는 함덕리와 함덕초등학교총동창회 서우봉지킴이들이 세운 안내판이 따로 세워져 있었다.


함덕리와 북촌리 경계에 위치한 사우봉(표고 111m, 비고 106m,둘레 3,393m,면적 835,758m2)은 북쪽과 남쪽 2개 봉우리가 솟아있는 원추형 화산체이다.


용암바위가 정상에 노출된 남쪽 봉우리는 ‘남서모’라 불리며, 송이로 된 분석구인 북쪽 봉우리에 ‘서산봉수’가 있음으로 인해 ‘망오름’이라 불리고 있고 오름 기슭에는 계단식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다.


서우봉의 명칭에 관한 기록에는 서산, 서산악,서산망,서산봉,서우봉,서산악 등으로 표기되어 있고 민간에서는 서모, 서모름, 서모오름,서모봉 둥우로 불리고 있다.


현재 서우봉 표기는 1899년 제작한 제주도지에 처음 등재되었다.
이는 오름 형상이 마치 바다에서 기어 나오는 무소의 형상과 같다는 데서 붙여진 것인데 이는 민간어원설에 의한 것이다.

아주 자세한 서우봉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 오름을 오르는 동안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오르면서 사진을 찍었지만 자꾸 우산을 잡은 손이 흔들려 중심을 잡지 못할 지경이었다.
겨우 몇 장을 찍고 서둘러 오르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사진을 보니 아주 그럴 듯 하게 나왔다.
함덕해수욕장의 진면목을 보려면 서우봉을 올라 내려다 보는 것이 좋다.

 

 

 

 

   
이렇게 오른 서우봉 중간에 7km 지점이 있었다.
이제 길은 숲속길로 이어진다.
이 길을 다 나오니 낙조를 조망할 수 있는 서우낙조 조망터가 나왔다.
의자가 여러 개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앉아 낙조를 구경하는 곳인가 보다 했다.

다시 길은 서우봉을 넘어 아래쪽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
이 오름길을 다 나오자 멀리 북촌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는 내리고..바람은 불고..
잠시 큰 소나무 아래 비가 들이치지 않는 곳에 앉아 잠시 쉬었다.

길은 계속 내리막이었지만 비가 내리는 것이 문제였다.
내려오다 바다를 보니 바위 하나가 기도하듯 앉아(?) 있었다.


우산이 흔들려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 내눈에는 바다를 향해 기도하는 바위모습이었다.

 

계속 내려오니 북촌마을..
조그만 마을이었지만 바람 때문에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이때 나는 생각했다.

도무지 안 되겠다. 중간스탬프만 찍고 내일 다시 와야겠다고..
그래서 터덜터덜..중간지점까지는 걷기만 하려고 했다.

마을로 들어서서도 비는 계속 됐다.
그러나 계속 걸을 수 밖에 없는 상황..

 

카메라 밧데리도 떨어져 가고 있어 너븐숭이4.3기념관이 있는 뒤쪽에 앉아 잠시 비를 피하면서 밧데리 충전기와 연결시키고 다시 걸었다.
9km 구간을 지나니 북촌환해장성길로 안내했다.


그러나 여전히 비는 내리고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침 마을입구에 조그만 ‘소박한 무인카페’가 보였다.
문을 열어보니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는 곳이었다.


그치지 않는 비를 피해 이곳에 앉아 1천원짜리 커피를 끓여마시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곳은 다려도가 훤히 보이는 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조천읍 북촌리에 있는 다려도는 약 7,400여평의 무인도다.
탐라순력지나 고지도에 따르면 다래여,래여로 표기돼 있고 마을해안에서 400여미터 거리에 있고 3-4개의 바위섬으로 이뤄져 풍부한 해산물을 제공하는 보물섬이라는 설명이 보였다.
이곳을 지나는데 비와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더 이상 걷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나는 중간스탬프가 있는 곳 까지만 걷기로 작정했다.


걷다보니 11km 지점이 나타났는데..
아무리 가도 중간스탬프 포스트가 나타나지 않았다.


북촌마을 운동장에 있다는데..
마을운동장이 참 멀리 있었다.


길은 대로변인 일주도로를 따라 계속 동쪽으로 걷게 만들었다.
계속 이 대로를 따라 걷는데 들길쪽으로 올레는 이어지고 있었다.


그 입구에 있는 정자에는, 나를 앞서 갔던 올레부부가 비를 피해 쉬고 있었다.
나도 쉬고 싶었으나 빨리 중간스탬프를 찾아야 했다.


비바람이 계속 됐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이 들길은 다시 숲속길과 연결되고 다시 들길를 걷는 그런 코스로 안내했지만 풍경을 볼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직 중간스탬프를 찍는 것이 우선이었다.
걷고 또 걷고..비가 오는 길을..


얼마나 이 들길을 걸었는지 모른다.
그 속에 13km 지점이 있었다.

제주올레 19코스는 길이가 19.1km다. 6.1km 정도 남은 거리였다.

 

이 지점을 지나자 숲속안에 정말 비밀스럽게 숨어있는 운동장이 하나 턱 하고 나타났다.


정자가 있는 그 옆에는 내가 그렇게 찾았던 중간스탬프 포스트가 있었다.
올레길에는 이미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이 이후 한사람도 만나거나 보지 못했다.


나는 그곳 정자에 잠시 누워 쉬면서 생각했다.
한 6km 정도 남은 거리를..
내일 다시 걸어야 하나 오늘 다 걸어버릴까..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나는 왜 걷지..?”

올레를 걷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이었다.
결국 결론은 “걷기 시작했으니까..끝까지 걸어야 한다”였다.

“시작했으니 끝장을 보자..”는 것.

2시간 정도 걸으면 끝날 거리를 내일 다시 온다는 것도 문제다.
이때 재난문자서비스에 가입하라는 메세지가 떴다.
나는 비가 많이 오니 재난대비를 하라는 것으로 알았다.

 

 

 

 

   

비가 오고 있었지만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어진 길은 벌러진 동산.


두 마을로 갈라지는 곳, 혹은 넓은 바위가번개에 맞아 벌어진 곳이라 해서 벌러진 동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나무가 우거져 있고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넓은 공터가 있다는
올레설명이 놓여져 있었다.


길은 다시 숲속이다.
사람 하나 다니지 않는 숲속길은 외롭다.
이 솦속길에 제주에너지공사가 세운 동복,북촌풍력단지가 있었다.


올레길은 기나긴 숲속길만을 보여줬다.
이 숲속길을 다 걸어나오자 드디어 대로변에 김녕이라는 안내판이 나타났다.

올레길은 이 대로변 옆길로 만든 숲속으로 이어진다.
이 숲속에 15km 지점이 있었다.
이제 4km 정도 남았다.


다시 들길이 이어지는 올레길이 나왔다.
길이 참 예쁘고 아름다웠지만 감상하기에는 내가 너무 지쳐 있었다.

 

 

 

   
간간이 사진 한 장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걷기를 계속 했다.
2km 정도 남은 구간에 오자 비는 그쳤다.


그리고..
환영하듯, 노란 유채꽃이 활짝 피어 남은 올레길을 위안했다.
이 들길을 다 따라나오니 드디어 김녕마을이 코앞이다.


대로를 가로 질러 마을 안길로 뛰듯 걸었다.
김녕마을은 참 평화로움이 묻어나는 곳이었다.

 

 
 

집이나 마을에 여유가 넘쳤다.
고급스럽게 변해가는 옛집과 마을돌담이 조화로움을 이루는 아주 깨끗해 보이는 마을이었다.


그러나 올레걷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김녕마을인 남흘동버스정류소를 지나 길은 다시 바닷가로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바닷길은 바다와 함께 올레를 즐길 수 있도록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드디어 종착점이 바라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조그만 다리위에는 19km라는 표시가 있었다.

길이는 19.1km인데, 1백미터는 덤으로 더 걸어가라는 뜻으로 만든 길일까..


그 정도야 맘껏 걸을 수 있는 보너스다.
바다를 향해 서 있는 19코스의 종점스탬프는 이날 더욱 아름다웠다.

 

 

 

‘나는 걷는다’를 쓴 베르나르가 고비사막을 넘으면서 남긴 글이 있다.


“..(중략)..”고비사막은 모든 지방을 통틀어 단연 가장 무시무시한 곳이다.“


1920-1930년대에 이 지방을 방문했던 선교사 밀드레드 케이블(1878-1952)과 프란체스카 프렌치(1871-1960)가 한 말이다.


오늘 경험해 보니 두 여인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민담에서는 고비사막을 이렇게 묘사했다.

“하늘에는 새 한 마리 없고, 땅에는 풀 한 포기 없다. 몇 년간 비도 내리지 않고, 세찬 바람에 돌이 날아다닌다”


(중략)..그런데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것일까?


이유야 어쨌든 어쩌자고 한 번도 한눈 팔지 않고, 당장 아무 기쁨도 주지 않는 이 실크로드를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일까?


어떤 핑계로라도 발뺌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약속을 지키려고 했던 것은 그래 좋다. 하지만 내가 어디 있는 지도 보지 않고, 몸은 당나귀처럼 웅크리고, 눈은 못 박힌 듯 자갈을 보고, 어디로 이어질 지도 모르는 이 언덕을 노새처럼 기어오르며 몇 킬로미터를 간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대체 무엇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고, 한 발자국도..더 뗄수 없었다.

 

 
 
 
   

나도 걷는, 올레탐방은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21코스까지 2개 코스와 우도(1-1), 추자도(18-1)코스만 남아있는 상태다.

올레길은 걸을 때마다 새로운 기대감을 준다.

다음은 또 무엇이..

어떤 이야기가..

하는 기대감을 주기 때문이다.

다음 걸어야 할 올레코스는 20코스다.

그곳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제주올레코스

▲ 제주올레전도(제주올레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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