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걷는다(20)",,'화석의 길'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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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걷는다(20)",,'화석의 길'을..(1)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7.04.05 2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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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20코스 탐방기)아름다움 반감시키는 해안쓰레기 넘쳐나는 길

 


제주올레20코스는 우도(1_1)와 추자도(18-1)를 뺀 마지막 구간인 21코스를 하나 앞둔 구간이다.

20코스를 걷는 4월1일(토요일)은 제주올레를 거의 다 걷고 있는데 대한 뿌듯함이 느껴지는, 그리고 빨리 걸어버리고 싶어지는 아침이었다.

날씨는 오전에는 흐렸다가 오후에는 맑다는 예보였지만 오전에는 약한 바람과 함께 조금 추운 듯 했고 오후가 되자 따뜻할 정도로 날씨가 좋았지만 오후 늦게는 다시 기온이 낮아졌다.

오전 9시경 집을 떠나 출발점인 김녕서포구에 도착한 시간은 9시 38분이었다.
바다에는 파도가 조금씩 치고 있었고 아침이라 조금 쌀쌀한 느낌이었다.

 

 


20코스 올레길은 마을안길부터 시작됐다.
바다에 접해 있는 이 마을 담벽에는 철사로 만들어진 수많은 작품이 그림처럼 붙어 있었다.


한 작품 앞에 서 있는 안내판..

‘팡도라네’는 짐을 지고 가다가 편히 내려 쉴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주의 널따란 돌인 팡돌과 그 돌안에를 결합하여 발음하기 쉽도록 한 신조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이 마을 모두가 집집마다 하나의 작품을 품은, 예술작품들로 이뤄진 특별한 마을이었다.
이제 올레길은 바닷가로 나아가도록 했다.

이 코스는 오직 김녕마을만이 갖고 있는, 바다쪽으로 용암이 흘러간 그대로의 길을 보여주는 특별한 광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도 드물게 보이는 이 지역의 용암이 흐른 이들 적나라한 흔적은 이 지역만의 보물이라 부를만 하다.
김녕마을을 모두 지나는 동안 이 특이한 장관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마을돌담길도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곳곳에 숨어 있는 이같은 비경과 함께 마을주민들이 만든 예술적인 감각은 이 마을이 전혀 새로운 마을로 재탄생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가다 보니 조간대를 안내하고 있는 안내판이 하나 서 있다.

 

'조간대는 밀물일 때는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일 때에는 드러나는 해안선 사이의 부분으로 완만한 빌레지대가 바다 속까지 질펀하게 퍼져 있는 바당빌레길의 해안은 썰물 때면 드넓은 조간대가 펼쳐지곤 한다'는 설명이었다.


이어 '조간대는 해양생태계에서도 환경변화가 심한 곳이어서 이곳에 서식하는 동식물들은 여름철의 뜨거운 햇살과 건조, 그리고 겨울철의 혹독한 추위에 잘 적응한 종들로 제주조간대는 해양생물이 높은 일도로 서식할 뿐 아니라 생물종 다양성이 풍부하다'고 적혀 있었다.

그저 보기만 해도 대단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이 길을 걷다보니 김녕 옛등대가 나타났다.

 

설명은 이렇다.

'김녕리 성세기알 바닷가에 세워진 이 옜 등대는 속칭 도대불이라 한다.
바다에 나간 고기잡이배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1915년경에 세워졌었다.
그 후 허물어졌다가 1964년경 마을사람들의 요청에 의해서 다시 지은 것이다.
처음에는 솔칵으로 나중에는 석유호롱불을 켜 불을 밝혔다.'

이어진 길을 따라가니 조그만 포구가 나오고 곧 새하얀 모래사장이 나타났다.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세기알해변'이다.

'사진을 찍으면 그림엽서같은 풍경을 자아낸다는 이곳은 썰물 때는 넓은 백사장이 펼쳐지는데다 수심이 얕고 파도가 높지 않아 어린이들이 놀기에 좋다'고 한다.


'이 기명마을의 포구는 예로부터 유명했으며 세기알해변 옆 포구와 관련된 옛지명은 ‘지픈개’, ‘세개’, ‘세기알’등이라고 한다.


옛문헌에는 ‘심포(深浦)’라 표기됐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포장도로가 생기고 방파제가 축조되면서 옛포구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지명은 남아 오랜 역사를 전하고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사실 이곳 모래사장은 아주 작지만,여느 해수욕장의 모습보다 더 고왔다.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탓일 터이다.

 

 

 
 

 

이런 아름다운 길은 김녕성세기해변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올레안내판에는 “성세기는 외세침략을 막기 위한 작은 성(새끼 성)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변 입구 남서쪽300m지점이 요왕황제국의 말젯아들을 모시는 성세깃당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이 김녕성세기 해변은 깨끗하고 하얀모래로 유명한 해수욕장이다.
바람이 얼마나 많이 부는 곳인지는 이 지역 어딜 가나 도로에 쌓여있는 모래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모래가 날리지 않도록 모래방지 조치를 취했지만 길은 모래로 가득이었다.

 

이 성세기해변을 따라 나와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홀로 올레를 걷는 중이었는지..말을 걸어왔다.

“올레 함께 걸으실래요..”
“아..네..”


“그냥 혼자 걸으시겠어요..?”
“아..네..”

아마 그런 대화가 오갔던 것 같다.

그 올레꾼은 “올레를 함께 걷는 프로그램이 있어요..”라며 바쁜 걸음으로 지나갔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같이 걷고자 권유를 해본 것 같은데 둘 다 같은 대답을 했더니 그냥 지나쳐 가 버린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해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
앞을 보니 그 올레꾼은 거의 뛰다시피 걷는 전문 올레꾼이었다.


나는 사진도 찍어야 하고 지치면 자주 쉬어야 하는데 같이 안 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역을 지나자 해변을 따라 걷는 해변들길이 이어졌다.
세상에 이런 길도 있을까..

 

노랗게 누워있는 잔디와 소위 에메랄드빛을 자랑하는 바다색과..
그 길을 따라 걷는 나그네..


검은 용암돌이 하얀 모래톱을 헤치고 나와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그런 길이 이어졌다.


이 길을 따라 걷는데 기가 막힌 이름 하나가 붙여져 있었다.

 

 

 
 
 
 

‘성세기태역길’


‘태역은 잔디를 일컫는 제주말로, 잔디가 많아 제주올레가 붙인 이름'이라는 설명이 있을 정도로 최고의 아름다운 길을 선사했다.


이 잔디밭 태역길은 길게 이어지고 있었고 간간이 보이는 하얀모래해변이 이를 바라보는 기쁨보다는 아쉽거나 슬픈 감정을 자극하게 만들었다.
곳곳에 해안쓰레기가 넘쳐 보기만 해도 갑갑했기 때문이다.

제주올레 20코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쓰레기해변이 이어져 있었다.
그 세계적인 아름다움은 반감시키고 또한 제주도민의 역할과 수준을 의심받게 하는 쓰레기문제..
나는 올레20코스를 걸으면서 줄곧 이 코스는 “화석의 길‘이라 명명해야 한다는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기자는 4월3일 "쌓여만 가는 바다쓰레기, 누가 치우나.."라는 제목으로 제주환경일보에 해안쓰레기 문제를 따로 집중 보도했다)

 
 
 

김녕지역을 관통하고 있는 보물중의 보물인 화산 또는 용암 화석지대를 일컫는 의미도 있지만 고집스런 환경에 대한 화석같이 변치 않는 시민의식을 지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얼마전 제주도청에서는 해안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지난 2월 해안쓰레기전담 청정지킴이 발대식을 갖고 지역별 해안쓰레기 문제를 해결한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그 이후 많은 올레를 걸어봤지만 눈에 띄게 해안쓰레기가 처리된 곳은 한 곳도 보이지 않았다.
초기에는 아직 시작단계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전혀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한 두군데 해안쓰레기를 모아놓은 곳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그건 누가 봐도 보여주기 위한 보고용 수작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도청에서는 예산을 지역주민들에게 주었으니 이제는 주민들이 해결하라고 미뤘을 것이고, 주민들은 이게 하루 이틀에 되는 일이냐고 미루고 있을 것이고..
결국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만 답답하고 안타까운 것이다.

 

 

제주도를 사랑하고 환경을 사랑한다면..
절대로 그 상태로 놓아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차원에서 이는 ‘환경보다는 개발, 환경보다는 나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화석같은 마음을 지적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기야 도지사도 그 변함없는 개발의 화석같은 마음으로 개발을 부추기고 있으니..
환경은 늘 뒷전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참 아쉬운 일이다.

해안쓰레기 문제는 전 도민이 나서서 대대적으로 해결돼야 할 일이지 지역에 예산을 주었다고 뒷짐만 지고 있을 일은 아닌 것 같다.

이 해안태역길은 꽤 길게 이어졌다.
길은 모래와 잔디밭이 이어졌지만 용암돌길을 걸을 때는 발이 아플 정도로 따가웠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20코스 바다를 걷는 내내 바다해변에 쌓인 쓰레기를 바라보는 고통이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지역주민의 무관심에 다름 아니다.

이제 길은 아예 용암통길로 이어져 용암이 흐른 흔적을 그대로 걷도록 안내 했다.
오직 제주도에서만 느끼고 보고 만질 수 있는 특이한 지형이 여기에 숨어있었다.


올레를 직접 걷지 않는다면 멀리서 그냥 시커먼 돌로 보였을..그야말로 용암화석길이다.
이 긴 구간은 수km나 되는 것 같았다.


걷고 또 걷다보니 바다쪽으로 작은 섬같은 여가 보이고 그곳에 두럭산이라는 안내판 하나가 놓여 있어 관심깊게 읽어보았다.

 

두럭산..

'섬 한가운데 있는 한라산과 성산마을에 있는 청산, 성읍마을에 있는 영주산, 화순마을에 있는 산방산, 그리고 지금 이곳 앞바다에 잠겨있는 두럭산을 일컬어 5대 산이라고 한다'는 설명이었다.

설명처럼 '두럭산은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밀물 때는 바닷물 속에 잠겨있고 썰물 때도 잠깐 나타나는 커다란 바위'이기 때문이란다.
'이 두럭산은 1년에 딱 한번 음력 3월 보름날 물 위로 완전히 떠오른다'고 한다.


'그래서 더 신비로운 두럭산에는 한라산이 운이 트여 장군이 태어날 때 그 장군이 탈 용마가 나올 산이라는 전설이 깃들여 있다'고 한다.


'설문대할망이 한라산과 성산에 두발을 딛고 앉아 이 두럭산을 빨래판 삼아 빨래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 신비한 이야기를 뒤로 하고 다시 해안들길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김녕지역은 용암의 흔적이 화석처럼 아직도 꿈틀거리듯 살아 움직이는 곳이다.

 

 
 
 

이 길고 긴 용암길의 여정을 지나 밖으로 나오니 해안도로다.
해안도로로 나오면 바로 김녕 환해장성이 나타나는데 이 김녕지역 환해장성은 사진으로 찍으면 더 아름답다.
하얀 모래사장과 바다가 어우러져 예쁜 빛깔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환해장성..

환해장성은 말 그대로 해안을 들러쌓은 성담이다.
제주해안을 길게 둘러친 장성이라 해서 제주의 만리장성 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1270년 고려의 관군이 삼별초의 입도를 막기 위해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같은 해 제주로 들어와 고려관군을 물리친 사별초 역시 환해장성을 계속 쌓았다.
이때 환해장성의 용도는 고려군과 몽골군의 공격에 대비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도 황해장성은 계속 보수되거나 신축되었다고 한다.
이때는 왜구 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배인 이양선의 출몰이 잦았기 때문이다.
이곳의 환해장성은 조선시대에 쌓은 것이라는
설명이 붙여져 있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갈으면서 보는 바다쪽 용암화석은 더욱 더 장관이다.

아무 것에도 손대지 말고 그대로 놓아두어야 할 보물들이지만 ..이곳도 해안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이 용암보물들은 늘 파괴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 바다와 어우러진 용암화석은 그대로 볼만 하게 남아 다행이다.
이제 올레길은 해안도로에서 다시 더 깊숙한 바다쪽 용암돌길로 안내한다.


보는 것 만으로도, 걷는 것 만으로도 이 올레는 압권중의 압권이었다.
짧지만 돌담과 용암길과 바다를 모두 만끽할 수 있는 그런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 나오자 길은 다시 해안도로로 이어지고..

이곳에는 투물러스라는 용암언덕이 하나 우뚝 바다쪽으로 앉아 있었다.

 

투물러스(용암언덕)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이곳 해안과 같이 검고 평평한 용암지대(대지)를 제주도말로 빌레라고 부른다.
빌레는 토마토주스처럼 잘 흘러가는 용암이 앞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부풀어 올라 언덕처럼 솟아오른 지형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용암의 표면은 4각형에서 각형으로 갈라져 있는데, 이것은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들면서 생긴 구조다.


부풀어오른 모양에 육각형으로 갈라진 모양이 마치 거북이 등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지질학자들은 이런 지형을 거북등절리라고 부른다는
설명이 있었다.

 

참으로 보기드문 특이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이 해안도로를 지나는 동안 제주밭담테마공원이라는 아주 큰 안내판이 서 있어 가 보니 돌담을 여러 형태로 만들어놓았는데..이런 곳에 왜 이런 테마공원이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돌담이야 제주도 어느 곳을 가나 있는 것인데..무슨 연유로 이곳에 이런 공원이 세워져야 하는지..

내용도 별로 없는 참으로 의미없는 공원이 아닐까..하는 생각만 들었다.
물론 이곳을 찾는 사람조차 단 한명 보이지 않았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참으로 기가 막힌 공간이었다.

이곳을 지나 조금 더 가니 바닷길 올레는 끝이었다.
바다가 참 좋았는데..

길을 따라 육지쪽으로 돌아 들어가니 5km지점이었다.
참으로 길고 긴 해변구간을 걸었다.

 

길은 이제 모래들길을 따라 걷도록 안내했다.
걷는 들길은 물론이고 돌담앞에는 날려온 모래가 수북히 쌓여있다.

다시 길은 마을을 향해 길고 긴 밭길로 이어졌다.
노란 유채꽃이 피어 봄임을 드러내는, 바야흐로 제주에 봄이 와 있었다.
담벼락과 돌담이 아름다운 이 마을은 월정리였다.

 

 

 

 

 

 

 

 

 

 

 

 

(내용이 많아 2번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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