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걷는다(20)",,'화석의 길'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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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걷는다(20)",,'화석의 길'을..(2)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7.04.05 2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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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20코스 탐방기)아름다움 반감시키는 해안쓰레기 넘쳐나는 길

 

(1번에서 계속)

 

 

 

민박집 분위기가 다른 지역과 비교가 될 정도로 특이하고 달랐다.
이 마을길을 따라 나오니 카페촌으로 유명한 월정해변으로 이어졌다.


하얀 모래로 유명한 이곳 해변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이날도 여지없이 수많은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올레길은 이 하얀 해변을 따라 걷도록 이어졌다.
사진을 찍고 보니 그 자체로 그림이 될 정도로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그 넘쳐나는 쓰레기만 없었어도..
해변 끝에는 해안쓰레기가 널려 있는 곳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 해변 끝에 다다르자 행원리라는 표석이 나오고 길은 다시 들길쪽으로 안내했다.

밭담이 어우러진 이 길은 행원리마을로 이어지고 평화롭기만 한 이 마을 안길로 이어졌다.

마을 안길을 지나 포구로 걸어나오자 이곳 해안가에 표지석이 하나 서 있고 그 바로 옆에 20코스 중간스탬프 포스트가 있었다.
스탬프를 찍은 시간은 12시04분..

 

 

광해 임금의 유배, 첫 기착지

광해군은 1623년 인조반정에 의해 혼란무도 실정백출이란 죄로 폐위,처음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됐다.
이어 1637년 유배소를 제주로 옮기려 사중사 별관 내관 도사 대전별감 나인 서리 나장 등이 임금을 압송하여 6월16일 이 어등포로 입항하여 일박하였다.


이때 호송책임자 이원로가 왕에게 제주라는 사실을 알리자 깜짝 놀랐고,마중 나온 목사가"임금이 덕을 쌓지 않으면 주중적국이란 사기의글을 아시죠" 하니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


주성 만경루 서쪽 배소에서 1641년 7월1일 67세로 마치니 목사 이시방이 엄습, 호송책임 해유후에 의해 8월18일 출항, 상경하였다.


광해군은 연산군과 달리 성실하고 과단성 있게 정사를 펼쳤으나 당쟁의 와중에 희생된 임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표지석 설명을 뒤로 하고 포구를 따라  걸으니 올레길은 다시 바다로 이어진다.


이 올레길은 바다들길을 따라 아주 특별한 코스를 보여주고 있었지만..아쉽게도 이곳도 쓰레기 천지였다.
이처럼 제주올레20코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쓰레기가 가득했다.

 

 

 

 

과연 누가 치워야 하는 것일까..

마을길과 밭담길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마을끝자락 쪽에 새로 만든 하천이 나오고 여기 앉아 잠시 쉬는데 7-8명의 단체올레꾼 한 팀이 나타났다.

올레는 좁디좁은 작은 골목길을 따라 걷게 하더니 다시 길고 긴 들길쪽으로 이어졌다.

이 올레길에는 숲속으로도 이어지고 들길로도 어어지는 아기자기함을 선사하는 그런 구간이었다.

그 길 끝에 다다르니 구좌읍 한동리 소재 좌가연대와 만났다.
11km지점이었다.

길은 다시 평탄한 들길이 이어졌다.

다시 걷고 또 걷고 있으니 다시 해안도로다.

 
 
 

한동리해안..
이 지역은 평대리와 행원리의 중간마을이다.

해안도로를 잠시 걸으면서 이 길을 지나니 올레는  마을로 들어서게 안내했다.

이 마을을 지나 다시 작은 숲속길을 다 나왔는데..
2주전 18코스에서 만났던 클린올레 도우미와 다시 만났다.

이런 우연이라니..

그때도 궁금했는데 손에는 집게와 쓰레기봉투가 들려져 있었다.

착한 클린 올레꾼 박미아 씨

 

나는 "저번에도 한번 뵀는데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묻자 "클린 올레 봉사를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고맙게도 포즈를 취해준 박미아 씨(젊은 40대)는 "클린 올레는 누구나 제주올레 사무국에 얘기하면 함께 할 수 있다"며 "올레를 걸으면서 쓰레기도 치우는 그런 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나이를 묻자 40대로는 보이지 않는데도 굳이 박 씨는 40대라고 말하며 지나쳐갔다.

클린 올레지기는 그 참여하는 마음 만으로도 위대한 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걷기도 힘든데, 쓰레기까지 치우며 간다는 건 여간해서는 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올레는 다시 해안도로쪽으로 내려와 잠시 걷게 만들더니 곧 아주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 하나와 다시 만나게 했다.

 

이 마을은 집집마다 지붕색깔을 달리 하여 색을 새로 칠해 보기에도 산뜻해 보기에도 참 좋았다.
그리고 집안에 핀 유채꽃 또한 그 아름다움에 자연색을 더해 평온함을 주고 있었다.

이 마을에 들어서니 이제 13km지점..

이어진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니 마을이름이 독특하게도 한동리 소재 계룡동이었다.

다시 올레길을 따라 가니 멀리 다랑쉬오름이 보이는 들길로 안내한다.
마을길은 좁은 길 큰 길을 따라가게 만들었고 곧 이 마을을 지나 해안도로로 이어졌다.

 

평대해변이다.

다른 어느 유명한 바다보다 아름다운 모래해변이 나타났다.
아름다운 평대해변을 따라 가다 평대리마을로 들어서자 커다란 유채꽃 지역을 지나는데 하얀 앵두꽃이 피어 있어 반가웠다.
평대리마을은 특히 돌담길이 참 예뻤다.

밭담 집담과 어우러져 올레길 걷는 재미를 더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마을을 지나는데 2.5km가 남았다는 표시가 나타났다.

제주올레에서 벵듸길이라고 안내하고 있는 길이었다.

 

'평대마을은 벵듸 또는 벵디라고 불렀다.벵듸는 돌과 잡풀이 우거진 넓은 들판을 뜻하는 제주말.
벵디 길은 마을 유래를 짐작하게 하는 옛길'이라는
설명이 놓여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평대나 벵듸나 ..비슷하게 불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길게 이어진 이 벵듸길이 주는 느낌이 참 좋았다.

느긋하게 걷기에 딱 좋은 코스였기 때문이다.

한참을 걸어 나오니 .. 그 길 끝에 드디어  1.5km가 남았다는 표시가 있었다.

평대마을안으로 들어서는 길목이었다.

 

 

이곳에서 한 어르신이 지나가기에 "평대마을이 참 넓은 것 같다"고 했더니 "마을 중에는 큰 곳"이라며 "85년 동안 한번도 고향 평대를 떠나지 않고 사셨다"며 자신을 소개했던 김봉식 어르신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김 어르신은 오른쪽으로, 나는 왼쪽으로 가는 길에서 헤어져..이제 마지막 구간 세화리로 이어지는 올레길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세화오일장이 보였다.

시장은 이날 문을 열지 않는 날이어서 구경은 하지 못했지만 요즘 잘나가는 이 지역 명물로 자리잡은 전통오일시장이다.

이쯤에서 나는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회국수집이 보여 식당으로 들어갔지만 원조회국수와 달라 실망스런 느낌으로 대강 먹고 나왔다.
원래 원조집이 아니고서는 맛이 있을 리가 없는데..
혹시나 한 기대 때문일까..그냥 꾸역꾸역 입에 놓고 나왔다.

그래서 그 식당은 아무 것도 소개할 수가 없다.

 평대리에서 평생 사셨다는 김봉식 어르신

하지만 식사를 하고 나와 바라본 바다는 환상이었다.

그 바다빛깔 때문에 나는 잠시 기분을 전환시킬 수 있었다.

이제 5백미터쯤 남은 구간, 21코스의 끝은 하도리가 시작되는 해녀박물관에 있었다.

그러나 카메라에 저장공간이 남아있지 않아 겨우 20코스 종점에 도착, 마지막스탬프만 찍을 수 있었다.
시간은 16시26분이었다.

 

 

 

 

1만2천km를 걸었던 '나는 걷는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시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한 마을에서.. 만리장성을 앞두고 쓴 글이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기분이 좋을 때는 그렇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우울하고 비관적인 생각에 잠길 때는, 세상에 문을 닫고 주변에 있는 것도 안 보인다.


올해는 마치 풍경을 차단하고, 형이상학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문제를 모두 차단하는 파이프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올해에는 내가 왜 여기에 있을까, 여기에서 무얼 하는 걸까 따위의 의문이 들지 않았다.


나를 앞으로 가게 하는 불분명한 동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면, 나는 즉시 ‘뒤로 돌아가’를 해야 할 판이었다.
나는 여기, 천국과 먼 곳에 있다. 그게 다였다....(중략)..“


....
다음은 그가 만리장성에 도착해 한 티베트 승려를 만난 이야기다.

 

“..(중략)..그는 라싸에 가기 전, 쟈오허의 라브랑 사원 쪽으로 가고 있는 티베트 승려였다.


‘부처님의 작은 형제’ 슈 바오셍은 쉰여섯으로 ..스님은 두 손을 모으고 몸을 숙여 예쁘게 인사를 하고 가방을 내려놓은 뒤, 길가에 식물 줄기로 만든 작은 깔개를 깔았다...(중략).. 슈는 시안에서 출발해 1200km를 걸어왔다.


나는 스님의 가방이 너무 작은데 놀랐다.
스님의 가방을 들어 보았더니 5킬로그램도 안 될 것 같았다.


이 승려는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떨쳐버린 것이었다.그런데도 차림새가 깨끗했다. 나는 부랑자 같은 모습인데 말이다.


이것도 내가 더 배워야 할 것이었다.
서양인은 소유했다. 고로 더럽다. 스님은 내게 바로 이에 대해 명상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미소와 친밀한 몸짓과 공감을 나누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스님은 성큼 그의 작은 가방을 닫은 뒤 등에 지고, 안경을 챙기고, 허리에 두른 마대에 책과 사진을 넣고, 도착할 때와 마찬가지로 손을 합장한 채 몸을 숙이고 여전히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고는, 마침내 등을 돌렸다.


스님은 지팡이로 리듬을 맞추며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갔는데,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 남자는 부차적인 것과 우리 속에 잠재한 끈을 떼어내는 법을 배우고 난 후, 삶의 매 순간을 명석하게 지각하며 강렬하게 살고 있었다..“

 

 

이처럼 베르나르의 경험을 함께 즐기며 먼 길을 함께 따라가는 동안, 이제 나도 공식적으로 만들어진 마지막 21코스를 하나 남기게 됐다.

이 한 코스만 지나면 우도와 추자도는 단체로 걷기로 해서 남아 있는 여정이 많지가 않다.

아직 걸어야 할 코스가 남아 있기에 말을 아끼고 마음껏 걸어볼 생각이다.
제주올레는 어느 코스를 걷건, 걸을 때마다 늘 많은 이야기를 내게 남겨 주었다.

20코스를 걷는 동안, 올레길은 단 한번도 내게 실망감을 느끼게 한 적도 없다.

감탄과 감동과..
아마 그런 점이, 또는 그런 이유가 올레를 계속 걷게 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21코스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제주올레 지도

 제주올레 전도(제주올레홈페이지)

 

 제주올레가 안내하는 20코스

 

 

제주올레길 20코스(김녕 ~ 하도올레). 제주올레 20코스는 제주 북동부 바다의 다름다움을 오롯이 담은 길로, 김녕 서포구 어민복지회관에서 시작해 월정, 행원, 한동, 평대, 세화를 거쳐 하도 해녀박물관에서 마무리된다. 김녕~하도 올레는 바다의 길이자 바람의 섬인 제주의 바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제주의 바람은 제주만의 언어를, 제주만의 돌담을, 제주만의 자연을, 제주만의 문화를 만들었다. 20코스를 걷다 보면 제주의 바다가 왜 특별한지, 제주가 왜 바람의 섬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김녕서포구→ 김녕성세기해변 1.6km → 동부하수처리장 4.6km → 월정리 해수욕장 7km → 행원포구(광해군 기착비) 8.3km → 좌가연대 11km → 한동해안도로 12km → 평대옛길 14.6km → 모살길 15.4km 세화포구 / 세화오일장 16.5km → 해녀박물관 17.4km

거리
17.4㎞

소요시간
5시간 30분

 

*볼거리
1. 김녕 환해장성
환해장성은 제주도 해안선 300여 리에 쌓은 석성이다. 고려 원종 11년(1270) 삼별초군이 제주로 들어오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처음 쌓았으며, 왜구 침입이 심했던 고려말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보수와 정비가 이루어졌다. 현재 그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는 10개소(제주시 화북, 삼양, 애월, 북촌, 행원, 한동, 서귀포시 온평, 신산)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9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김녕의 환해장성은 최근 복원되었다.

2. 행원포구(어등포)
조선 제15대 왕인 광해군이 제주도에 유배올 때 내렸던 기착지이다. 선조의 둘째 아들인 광해군은 임진왜란 때 세자로 책봉된 후, 1608년부터 1623년까지 15년간 재위하면서 전쟁 피해를 복구하고 자주적 실리 외교를 펼친 왕이었다. 왕위계승과 정권을 둘러싸고 주변 세력과 갈등을 빚다가,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다.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태안을 거쳐 병자호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637년(인조 15) 제주로 보내졌다. 당시 인조는 광해군에게 유배 지역을 알리지 못하도록 하고, 배의 사방을 모두 가려 밖을 보지 못하도록 하여 비밀리에 제주에 유배시켰다. 1637년 6월 6일 어등포로 입항했고, 다음날 주성 망경루 서쪽(지금의 제주 구시가지)에 위리안치하였다. 배에서 내린 광해군은 제주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전해진다. 제주 유배 4년 4개월만인 1641년(인조 19) 6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광해군은 제주도에 유배되어온 이 중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이지만, 위리안치되어 생활하던 곳은 남아 있지 않다. 어등포는 어떤 바람이나 물때에도 구애를 받지 않는 포구로 전선 1척과 병선도 감출 수 있었다고 한다. 탐라록에는 어등포의 저녁 모습이 제주 8경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3. 좌가연대 10793634
연대는 봉수대와 함께 통신을 담당했던 옛 군사시설이다. 봉수대는 산 정상에, 연대는 구릉지대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는 바다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지점에 연대를 세웠다. 제주도에는 38개소의 연대가 있었다. 이들은 서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연락하였고,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는 경우에는 연대를 지키던 군인이 직접 달려가 급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제주특별자치도기념물 제23-15호.

4. 세화오일장
제주 동부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오일장이다. 바닷가에 위치하여 자리돔, 옥돔, 우럭, 조기, 갈치 등의 해산물이 특히 풍부하다. 매 5일, 10일에 장이 열린다. 오후 4시면 파장하니, 장이 열리는 날 길을 걷는다면 늦지 않게 서두르는 것도 좋겠다.

5. 해녀박물관 8152281
제주 해녀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는 박물관. 제주 어촌과 해녀들의 일터인 바닷가 불턱 등을 재현해 놓았으며, 해녀 옷과 테왁 망사리 등의 작업 도구도 전시한다. 문화관광해설사로부터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다.(해설 시간 10시, 11시, 1시, 2시, 5시) 매주 토요일 3시~4시에는 관광객과 함께하는 해녀노래 공연이 로비에서 열린다. 어린이해녀체험관을 별도로 운영한다. 매월 첫째 월요일 휴관. 관람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 문의 : 064-782-9898 www.haenyeo.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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