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강냉이왓..신흥2리 고수동 거욱대(방사탑)
상태바
[향토문화]강냉이왓..신흥2리 고수동 거욱대(방사탑)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4.06 20: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래의 거욱대는 가시나무..그 후로 마을 사람들 평온 되찾아


신흥2리 고수동 거욱대(방사탑)

 

신흥리 고수동 거욱대


위치 ; 남원읍 신흥2리 고수동(古水洞) 입구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100여m에서 왼쪽으로 난 좁은 농로를 따라 300여m쯤 들어가면 길이 없어지고 과수원 두 곳의 입구가 되는데 오른쪽 밭 담을 따라 동쪽 끝에 이르면 냇가와 만나는 곳에 거욱대가 있다.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시대 ; 조선시대

 

 

고수동의 동쪽은 하천인데 하천을 따라 토산리와 만나는 곳까지 가면 '어웃도'라는 곳이 있다.

어웃도는 내에서 15m 정도 높이의 낭떠러지인 곳인데, 고수동에서 태어나 현재 고수동에 살고 있는 현재숙(玄在淑, 1920년생)의 증언으로는 마을에서 보기에 허(虛)한 곳인 이곳을 막기 위해서 거욱대를 세웠다고 한다. 거욱대가 있는 곳은 '강냉이왓'이라고 한다.


"어웃도가 비추민 먼저 재산 이룬 사름 망허곡, 큰아들이 죽은뎅 허여마씸. 이젠 낭덜 커부난 동네에선 어웃도가 안 뵈입니다."

옛날에는 굵기가 한 아름이나 되고 높이는 어른 키 2배 정도였으며 수직으로 세운 나무의 윗부분을 깎고 가로로 걸치는 나무에는 구멍을 내어서 끼워맞췄었다고 하며, 워낙 높아서 그곳에 까마귀가 둥지를 틀기도 했었다고 한다.

"체얌 이서난 낭은 무신 낭인진 몰라도 사태(사삼사건) 때 어려우난 누개가 그차단 화목으로 써분 생이라마씸. 사태 이후 복구할 때 수기낭(삼나무)으로 허난 그 전 꺼보다 가늘았주. 오래 가지도 안허연 몇 년 안 되연 복싹 썩어부난 지금은 거욱은 엇어져부렀주" (2003년 8월 12일 면담)

마을 동쪽으로 하천이 있어서 마을 사람들은 이곳이 허하므로 이걸 막기 위해서 돌탑을 쌓고 긴 나무를 '十'자 모양으로 세워놓았다. 돌탑은 마을이 설촌될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1948년 사삼사건으로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이 1960년경부터 돌아와 거주지를 마련하면서 1962년에는 다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때는 〈62복귀주택〉이란 별도의 호칭도 있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의 일과 삶도 전처럼 평안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거욱대'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어 이에 대해 논의를 하였는데 허(虛)한 곳을 막는 거욱대를 세워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나무를 교체할 때는 높을수록 좋다고 해서 길게 뻗은 삼나무 2개를 이어서 대를 만들었는데 나무를 접합시킬 때는 나무못을 이용하였다.

쇠못을 쓰면 쇳독으로 효력이 상실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원래의 거욱대는 가시나무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나무를 세운 것은 1963년인 것으로 보인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은 평온을 되찾았다고 한다.

돌탑은 현무암 막돌로 허튼층쌓기를 하였고, 속은 잡석채움을 하였다. 크기는 높이 332cm, 밑지름 290cm이다. 표준이 될 만한 돌의 크기는 상단부 31×17, 28×49, 23×28(cm)이고, 하단부는 26×59, 20×35, 24×46(cm)이다.(남제주군의 문화유적 409쪽, 제주민속유적 199∼200쪽)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