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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모르면 미래도 없다.."(인터뷰)발로 뛰는 향토사학자 고영철 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함덕초 교장)
고현준 기자  |  kohj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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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승인 2017.04.11  10: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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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숨어있는 지역의 대가들을 만날 때는 그들의 노력에 대한 경의로움과 함께,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이런 향토적인 문화재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를 걱정의 눈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묵묵히 이를 해내고 있는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지역의 중요한 숨은 영웅이라 칭해도 충분하다.


교사로 재직하며 제자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알게 해 줘야겠다는 일념으로 제주도의 진정한 역사와 문화현장을 찾아 발로 뛰며 지난 20여년간 끊임없이 이를 정리해 오고 있는 고영철 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함덕초등학교 교장).

   
 향토사학자 고영철 제주문화답사회장(함덕초 교장)

고영철 교장이 꼭 그런 인물이다.

그는 그동안 제주흥사단(대표 김용호)이 운영하는 제주문화유산답사회를 20년 이상 이끌어오고 있고 특히 고영철의 역사기행이라는 홈페이지를 통해 제주도의 숨은 보물들 2천3백여개를 찾아 내 이를 소개해 놓고 있다.

향토사학자로 불리워도 좋을 고영철 회장은 그러나 자신이 역사를 전공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향토사학자로 불리워지는 일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호칭은 제대로 학위를 받은 사람에게나 맞는 호칭이라는 이유에서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 숨어있는 제주도의 보물같은 항토사학자라고 불리워져도 좋을 사람이다.

만약 그의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가 찾은 수많은 제주도의 향토유적을 제대로 알 아 볼수 조차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는 지금도 제주도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그리고 사라져 가고 있는 수많은 문화유산에 대해 안타까움을 갖고 있다.

지금 이런 것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나면 제주도에 남아있을 우리 선조들의 역사가 함께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지난 4일 함덕초등학교에서 그를 만나 학교 학생들과 같은 식탁에 앉아 점심을 먹고 그가 안내한 서우봉 입구 모래들판에 앉았다.

그가 기자를 안내해 찾은 곳 또한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곳”이라며 “빨리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제주 기왓굴’이었다.

그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 앉아 고영철 교장으로부터 그가 살아온 이야기와 함께 그가 말하는 제주도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들어보았다.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고영철 회장

-흥사단과는 언제 인연을 맺으셨는지요..

"흥사단에는 지난 80년 5월에 입단했습니다.
입단 계기는 송광배라는 선배가 있는데 이 분이 학교에 찾아와서 입단을 하라고 권유했지만 처음에는 거절을 했었지요, 그 다음에 3번이나 찾아와 입단하게 된 것인데 그 당시는 125문항에 대한 문답서를 써야 했습니다.


흥사단에 들어가자마자 제주분회보 만드는 일을 맡으면서 행사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등 기자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제주흥사단에서는 그동안 임원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단우 중에 현재는 임창효 권재효 단우가 가장 고참인 분들이지요."

 

-그동안 제주흥사단이 제주사회에서는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흥사단은 시대에 따라 늘 변화해 왔던 것 같습니다.
70년대초에는 단우 중에 학교 교사가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고등학교 대학생 등을 위한 아카데미를 만들어 이를 지도하는 것이 일의 전부였지요.


그러다가 사회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86-87년경 흥사단이 사회변화에 무심하지 말자고 해서 일종의 시국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일종의 시국선언이었지요. 이후 당시 신문에서 기사를 내고 다음날에는 사설로 시국선언에 대한 평가를 하는 등 사회에 눈을 돌리는 첫 활동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또 90년대 초반에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모임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흥사단 역사기행반을 만들었고 이 모임이 2000대에 들면서 제주문화유산답사회로 명칭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번 달이 279차 답사입니다.

처음에는 오름반과 역사기행반(제주문화유산답사회 전신)이 함께 출발했지요.
역사기행반은 제가 책임지기로 하고, 김용호 단우가 오름반을 맡기로 했다가 결국 김성보 단우가 오름반을 맡게 됐고, 현재까지도 두 개의 팀으로 나눠 잘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제주문화유산답사회는 지난 94년 2월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처음 2-3회까지는 사람이 모이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었지요.

처음 모임에는 당시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권재효 단우가 4-5살 된 아들을 데리고 왔고 일반인으로는 이경성 교수만 참여를 했었지요.
걱정이 됐지만 그래도 다음에 또 가보자 했는데 95년 경이 되자 겨울인데도 21명이나ᅟ참가할 정도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제주문화유산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보고 계속 해야 한다고 해서 처음에는 10년간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 할 정도로 하는 일을 즐겁게 했습니다.
실은 다른 분들에게 맡기려고 해도 제주도 역사나 문화재에 대해  모르는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제가 맡게 된 것이지요."

 
   
 세계 유일의 현무암 제주기와터를 소개하는 고 회장

-제주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제주교대 부속초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 국정 초등학교 사회교과서에 한 단원을 각 지역에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역사책으로 실험학교를 운영했는데 저희 학교와 신광초 위미초 등 3개 학교가 그 일에 참여했지요. 그런데  책 내용을 보니 제주도 관광안내서 같았어요.


실험학교니까 평가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해서 제주도 학생들에게 무얼 가르칠 것인가와 역사교과서 내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해 교과서를 보니 글자 하나도 안 바뀌고 그대로 또 나왔습니다


실험학교 교사들의 의견이 반영 안된 건 좋은데, 그 의견에 대해 아무 것도 반영을 안한다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럴 거면 아예 국어국문학과 출신에게 맡겨 교정만 보게 하면 될 게 아니냐고 해서 연구사에게 왜 아무 것도 바꾸지 않았느냐고 따졌지요.
당시 조영배 단우가 마침 이에 대한 교사세미나를 연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교과서 내용 중 틀린 부분을 문제점으로 제기했었습니다.

학자들에게 감수했다고는 했지만 일개 교사가 교육청에 덤비게  돼 버린 셈이 됐지요.

그런 일을 겪으면서 내가 맡은 아이들에게는 제대로된 내용을 가르쳐야 하겠다고 해서 당시 하나 밖에 없던 제주통사(김봉옥 선생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시작한 것이지요.

그 이후 92년에 인화초 다닐 때인데 학생들에게 역사기행을 함께 가자고 해서 차비와 도시락을 싸오라고 했는데 첫날 36명이 참석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내가 전교조를 할 때 선생님 보호하겠다고 나섰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갖고 94년에 역사기행반을 만든 것인데 사실 처음 맡을 때는 문화유산이라고 해봐야 아는 곳이 50군데 정도 밖에 없었습니다.

그 정도면 몇번 다니면 금방 끝나버리니 그래서 다급해지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매주 주말마다 혼자 계속 문화유산을 찾아다닌 것입니다.
답사대상을 조사하고 답사자료를 만들고 책을 복사하는 일은 물론 사람을 모집하는 일 모두가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지요.

그러다가 99년-2000년까지 2년간 추자도로 발령이 나서 가게 됐습니다.
다행히 당시 조지현 김성보 강윤정 단우 등이 나 대신 답사회를 맡겠다고 해서 모든 답사 자료를 플로피디스크에 담아 모두 주고 갔었지요.

이들은 6개월분을 미리 책으로 만들고 답사인원도 미리 모집해서 2년동안 잘 운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일을 해 오면서 보람이라면..

"제주도민으로의 정체성을 찾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보람은 있습니다.

현재 2,290개 정도의 제주향토유산을  조사해서 '고영철의 역사기행'이라는 홈페이지에 다 올려놓고 있습니다.홈페이지는 지난 2003년 조지현 단우가 홈페이지를 만들어 다 정리해 놓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처음에 만든 홈페이지는 서버회사가 망해서 다 사라지는 바람에 1년여간 모아 두었던 5백여개의 자료가 다 사라진 적도 있습니다.

다시 만들자고 해서 만든 지금의 홈페이지에는 제주도의 모든 문화재는 아니어도 지정문화재는 거의 다 수록돼 있습니다.

사실 그 지정문화재보다 많은 게 비지정문화재인데..아직도 저는 배가 고픕니다.
사람들이 살았던 것을 모으려고 보니까 물에 대한 것을 조사해야 했고 그 물을 조사하다 보니까 너무 많았던 것입니다.
물통이 한마을에 5-6는 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매립돼 가고 있어 아쉽지요."

 
   
 그는 발로 뛰는 연구를 좋아한다

-아직 조사하지 못한 분야는 어떤 것이 남아 있는지요.

"분야라기보다 전체적으로 조사할 대상이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물 관련 유적과 4.3사건 피난처는 물론 일제시대 갱도들도 아직 많이 남아 있을텐데 그동안 조사해서 올려 놓은 것은 얼마 안됩니다.

2년전 쯤 아들과 함께 명도암 형제오름을 돌아보면서 일본군 진지동굴 조사를 했는데 대부분 입구가 메워져 있었습니다.
들어가 보려고 해도 길이 너무 좁아  들여다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제주도에 향토문화를 연구하는 다른 분들도 있는지요..

"사실 향토문화라고 한다면 너무 광범위해 집니다.
저는 일단 유형문화재 쪽을 중심으로 조사합니다만..
이처럼 제주문화만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분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답사를 하는 모임은 있었지요.
고희범 회장이 운영했던 제주포럼C는 자연환경과 역사유적 답사를 많이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향토자료나 유적은 제주도민들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역사를 모르면 그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 제주의 역사를 아는 것이 마을단위나 시군단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서우봉에 초제탄이라는 곳이 있는데 함덕주민들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둘레길 안내판에는 초제단이라고 돼 있지만 초제탄(招弟灘)이 맞는 명칭입니다.

1800년대 중반에 이계징이라는 학자가 이곳에 살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이후징이라는 동생이 동네사람들과 바다에 나갔다가 배가 침몰했습니다.
이후 다른 사람의 시체는 다 찾았는데 이계징의 동생사체만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계징이 바다로 나가 후징아 후징아 부르니까 동생 시신이 형이 부르는 쪽으로 떠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지요.

이계징은 동생시신을 집으로 데려와 3일간 집에서 함께 보내고, 제를 지냈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는 곳입니다."

 

-제주도 유적 중에 이것만은 꼭 지켜야 한다는 곳이 있다면..

"서우봉 입구에 세계 유일의 현무암 기와터가 있습니다. 이런 것은 굉장히 시급한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지금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주인이 이를 부숴버려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문화재 지정을 안해 보호되지 않을 경우 부숴버리면 책임도 못 지우게 되지요.

그중에도 시급성이 있는 것은 옛날 성창(방파제)입니다.

아직 모두 없어지거나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시멘트 콘크리트로 옛 유물을 발라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배가 몇 척 이상 있으면 항만 개발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큰 배가 못 들어가는 작은 포구는 긴 방파제를 만드는 일이 필요가 없지요.

옛날 모습을 볼 수 있어야 옛날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삼양동에 있는 포구는 60년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위미나 표선면 세화2리 포구 등은 옛모습 그대로 보전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또 마을 연못도 있는데..대표적인 곳이 납읍의 사장못(1930년대 축조)입니다. 이곳은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신풍리 남산 버덕못이나 신평리의 우마급수용 연못(1960년대 ) 등은 꼭 문화재로 지정돼야 할 곳들입니다"

 
 
   
고영철 회장은 제주도의 성창(방파제)을 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기를 바라고 있다
 
 

-제주지역 문화재에 대한 앞으로 본인의 과제가 남아 있다면..

"저는 답사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과제라고 남길 것은 없습니다. 주위에서는 책을 하나 쓰라고도 하지만 아직 책으로 쓸 마음도 없습니다.

책과 달리 홈페이지가 있어서 잘못 쓴 것은 다시 고칠 수 있고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짜로 다 볼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입니다.

알리고 싶은 것을 알리는 데는 홈페이지가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아직 만들 생각은 없지만 앞으로 종이책보다는 전자책 형태로 만들 생각은 해보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으로써 제자들에게 전해주는 말은 어떤 내용인지..

"역사와 관련 해서는 교육과정 속에 현장을 다니는 편이고 교장으로써 훈화할 때는 도산 선생의 생활철학이 아이들에게 전파됐으면 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훈훈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얼굴이라든가 미국으로 교육학을 공부하러 갔다가 독립운동을 하는 것으로 바꾼 일화 등을 전해 주며 늘 다른 사람을 위해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되도록이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 즉 정의라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즘입니다.

능력이 없거나 능력이 있다 해도 실패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닌 이유로 실패한 것은 정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사회정의가 이뤄지는 쪽으로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주도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그동안 내가 해본 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아무리 책을 읽고 연구하는 사람이라 해도 발로 뛰는 사람을 이기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사학과 교수들과 얘기해 봐도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향토사에서만 10페이지쯤 갖고 가서 얘기하면 아무런 말도 못할 정도로 제주문화나 제주역사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습니다.
요즘은 젊은 교수들중에서도 제주출신이 아닌 사람이 많아 지도를 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도 중요하지만 발로 뛰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저는 발로 뛰는 사람으로 남아있고자 합니다"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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