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5월을 찬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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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 5월을 찬미함
  • 안종국 기자
  • 승인 2017.05.0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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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문학] 메이퀸(MayQueens)과 플로라(Flora)

 

프리마베라(봄)Primavera. 보티첼리 작, 1482년. 피렌체 르네상스시대의 새로운 봄을 경신하는 상징적 명화이다. 봄의 환희로움을 주제로 메디치가문의 주문으로 그렸다. 중앙의 비너스Venus 왼쪽으로는 삼미신Three Graces이 춤을 추고 있고, 오른쪽에는 플로라Flora가 우아하게 서있다. 가장 왼쪽으로는 전령인 머큐리Mercury가, 서풍의 신 제피로스Zephyrus는 가장 우측에서 그의 연인 클로리스Chloris를 잡고 있다.

 

메이퀸May Queens이란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는 의미에서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신록이 짙어지고, 각종 꽃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자연의 아름다움이 생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 메이퀸이 유럽에서 시작될 때에는 종교적 의미가 강했다.

유럽은 5월의 첫날이 노동절이다. 이는 꽃의 개화기에 맞추어 본격적인 생산의 시작과 노동이 본격화됨을 알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날은 하루를 쉬면서 다양한 종교적 행사와 축제를 통한 노동의식을 다진다.

본래 축제란 고대부터 대지의 생산력과 하늘의 신에 대한 기원이나 감사한다는 의미를 띠고 있다. 우리의 추석과 설날, 가을의 제천의식이 모두 그런 것이다.

영국의 경우 메이퀸으로 뽑히면 축하 퍼레이드를 벌인다.

메이퀸에 선발되려면 순결한 처녀여야 되며, 티아라를 머리에 꼽고 흰 가운에 왕관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든다. 영국에서 메이퀸은 노동절의 축하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녀는 화관을 쓰고 춤을 시작하기 전에 연설을 한다.

 

영국 뉴 웨스트민스트에서 열린 메이퀸 선발(1877년). 오늘날 영국에서는 브렌트햄 가든 교외에서 열리는 메이퀸 선발대회가 가장 오래된 전통 축제로 알려져 있다. 가장 큰 축제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의 Beltane Fire Festival이다. 우리나라 이대의 메이퀸이 스무살안팎인데 비해, 유럽은 대부분 10대 초반의 소녀들이다.

고대시대에는 메이퀸을 뽑는 일은 일종의 나무를 숭배하는 전통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종종 축제가 끝난 후 메이퀸이 제물로 바쳐지기도 했다고 한다.

가장 아름다운 꽃이 질 때 열매가 맺힌다는 자연의 섭리가 가장 아름다운 청춘기의 소녀가 신에 대한 인간의 희생이라는 불길한 전통의 제물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죽음을 당한 그녀가 사회적으로 큰 영예를 지니긴 해도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희생이라는 측면은 오컬트를 연상시킨다.

점차 메이퀸축제는 기독교의 도래로 부활절 주간의 <섬머퀸Summer Queen>으로 전승된다.

 

스페인의 민속축제에서는 메이퀸 선발을 마야페스티발이라고 한다.

그녀는 꽃 왕관이나 장신구를 착용하고는 제단에 앉아 질문에 답을 하고 거리를 행진하며 노래와 춤을 춘다. 마야는 나무를 뜻한다. 그녀를 잡으려는 축제참가자 소년들을 마이요스Mayos라고 부르는데, 마이요스는 나뭇가지를 상징한다.

이 축제의 기원은 고대의 의식에 기원하는데, 여름의 도착을 축하하는 것이다. 이 축제는 오늘날에도 스페인 전역에서 성대하게 벌어진다.

 

스페인의 메이퀸 마야.(출처:위키피디아) 마야란 나무를 뜻한다. 축제가 시작되면 소년들은 초록색의 옷을 입고 마야를 잡으러 다닌다. 소년들은 가지를 뜻하는 마이요스라고 하는데, 이는 나무와 가지의 무성한 생산력을 기원하며 여름의 도착을 축하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중세시대 독일에 속했던 마부륵텀Maibrauchtum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소녀를 위한 메이퀸 선발대회가 있었고, 그녀는 대관식 이후 경매에 붙여졌다. 그녀는 경매에 의해 팔린 사람에게 시집을 갔는데, 왕이 직접 경매를 한 경우도 있었다. 그녀는 후에 여왕이 되어 동전에 새겨지는 인물이 되기도 했다.

 

포르투갈에서는 문과 창문, 심지어 자동차에도 원형으로 만든 꽃목걸이를 걸고 메이데이를 축하한다.

이는 고대의 셀틱축제의 전통으로 여름의 시작을 축하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소녀들은 꽃으로 장식한 화관을 쓰고 하얀 옷을 입는데, 때로는 메이퀸을 사람 크기의 인형으로 만들고 녹색 옷을 입은 소년들은 빗자루를 들고 그 주변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이러한 의식들은 주로 가족과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나쁜 기운을 내쫓기 위한 것이었다.

 

포루투갈에서는 메이데이에 화환을 문과 창문에 내거는 풍습이 있다.(사진출처:위키피디아)

 

우리에게는 단오가 이와 유사한 명절이다.

비록 음력 5월 5일이지만, 4대 명절 중 하나로 일 년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인 단오에 그네뛰기, 창포머리감기, 단오축제, 단오음식 등을 해먹는다.

단오의 단端자는 처음을 뜻하고, 오午자는 오五, 곧 다섯의 뜻으로 통하므로 단오는 초닷새라는 뜻이 된다. 단오를 수릿날이라고도 하는데, 수리란 우리말로 높다는 뜻과 신神이라는 뜻도 있어서 높은 날, 신을 모시는 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단오는 더운 여름을 맞기 전의 초하初夏의 계절이며,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이기도 하다. 단오는 북쪽 지방에서 번성했고 남쪽은 주로 추석행사만 치른다.  

단오날의 풍경을 그린 신윤복의 풍속화

단오제에서도 메이퀸같은 여성적 제의가 있다.

강릉의 경우 대관령국사성황을 강릉시내 여성황당에다 모시는 강릉단오굿이나 경북 경산시 자인면의 한장군놀이에서는 여원무女圓舞라는 춤을 춘다.

또 지방에 따라 여아절女兒節이 있고 지방에 따라 소 시집 가는 날(삼척), 며느리날(경북도), 과부 시집가는 날(강릉)도 있으며, 단옷날에 여인네는 가는 모시베의 잇빛(홍화색, 분홍색) 홑치마를 입고 신을 맞는 날이라고 하여 서양의 메이퀸같이 여성의 생산성과도 비슷한 제의가 있었다.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다. 계절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고 최상의 대지를 만날 수 있다.

눈부신 오월은 또한 꽃의 달이다. 신록이 진해지고, 지천에 피어나는 꽃들은 봄과 여름에 걸쳐 다양한 자태를 뽐낸다.

 

폼페이의 플로라. 서기 10년대. 나폴리국립고고학박물관. 작자미상 프레스코화. 폼페이 인근의 한 빌라에서 화산폭발로 화산재에 잠겨있다가 18세기에 발굴되었다. 꽃을 꺾어 바구니에 담는 처녀의 아름다운 뒷모습으로 플로라를 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프리마베라(봄)로도 불린다. 

플로라는 전통적인 로마 종교에서 식물의 개화를 주관하는 여신이다.

그리하여 플로라는 청춘과 젊음의 상징이다. 그리스 신화의 클로리스와 동일시되나 로마 고유의 여신이다.

그녀는 나무들을 꽃피게 하는 생명의 태동과 생장력을 나타낸다. 아울러 그녀는 꽃피는 모든 것을 지배한다.

플로라는 다른 사비니의 신들과 함께 티투스 티티우스에 의해 로마에 소개되었다. 그녀는 라티움 족과 비 라티움족을 통틀어 모든 이탈리아인의 숭앙을 받았다. 사비니인들은 로마력 4월에 해당하는 달을 그녀에게 바쳤다.

오비디우스는 그리스신화의 클로리스라는 님프를 연관시켰다.

어느 봄에 그녀는 들판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그녀를 보고 사랑에 빠져서 납치했다.

그는 그녀와 결혼을 했고 결혼에 대한 보답으로 그리고 자신의 사랑의 증표로서 그녀가 정원에 있는 꽃들에서 들판의 꽃들까지 모든 꽃들을 다스리도록 해주었다.

무수한 종류의 꽃씨와 꿀은 그녀가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다.  

플로라. Jan Matsys. 1559년. 플랑드르풍의 르네상스기 화가. 

오비디우스는 자신이 지어낸 전설 일 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보레아스가 오레이티이아를 납치하는 장면을 참고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모델로 삼으면서도 특이한 일화를 삽입했는데, 그것은 플로라가 마르스의 탄생에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헤라는 제우스의 머리에서 아테나가 태어난 것을 알고 화가 나서 자신도 남성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식을 갖고자 했다.

그래서 헤라는 플로라에게 도움을 청했고, 플로라는 만지기만 해도 임신이 되는 꽃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하여 헤라는 제우스와 아무런 관계를 하지 않고서도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의 이름은 첫 번째 달인 마르스라고 불렸다.  

플로라. 에벌린 드 모르간. 

로마에는 특별히 플로라를 위한 사제가 있었으며 그는 누마가 제정한 것으로 알려진 열 두 명의 소사제에 속했다. 대사제는 3명으로 제우스와 마르스, 퀴리누스를 섬겼고, 나머지 소사제 12명은 각각의 섬기는 신들이 있었다.

한편 로마에서는 플로라를 위한 플로랄리아라는 축제가 열렸으며, 그녀를 기리는 플로랄리아 축제는 기원전 238년에 시작되어 오늘날에도 로마의 주요 축제로 열린다.

화관을 특징으로 하는 플로라의 머리 초상은 로마 공화국의 동전에도 나타나며, 희극공연과 함께 유녀들도 참여하는 놀이가 있었다.  

플로라.  Francesco Melzi. 1520년경. 다른 제목으로는 모델이름을 따서 컬럼비나라고도 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미술관 소장.

 

피천득은 <오월>이라는 시에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고 예찬했다.

 

오래 전 인류는 오월을 대지의 생산력과 결부하여 신록의 찬미와 여름의 성숙을 통한 결실을 기대하며 축제로 기렸다.

모든 식물은 여름의 도래와 함께 본격적인 생장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꽃으로부터라고 믿었다.  꽃은 희망이요 환희이며, 삶의 풍요였던 셈이다.

이 푸르디 푸른 오월에 우리도 삶을 예찬하는 축제의 들판으로 나가서 대자연에 마음을 기대고 감사의 찬미가를 올려보는 것도 행복한 일이겠다.

 

플로라. John Roddam Spencer Stanhope. 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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