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성축조 때 아기 희생..수산1리 진안할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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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성축조 때 아기 희생..수산1리 진안할망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5.02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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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축조후 밤마다 아기 울음소리..옛날에는 남자들만 다녀

 

수산1리 진안할망당 堂

 


수산리 진안할망당 堂
위치 ; 성산읍 수산리 수산초등학교 북동쪽 울타리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시대 ; 조선

 

 

 

진안할망당은 수산진성을 시축할 때에 생긴 전설과 관련이 있다. 조선 세종 때 성을 쌓았는데 이 때 주민들이 모두 부역을 하고 공출을 내는데 유독 한 여인만은 공출을 내지 못하였다. 관리가 공출을 독촉하는데 아이가 '으앙' 하고 울자 여인은 '집안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 아기라도 가져가라'고 했다.

공출관리는 어이없어 웃어넘겼다. 그런데 그 후부터는 성을 쌓으면 이유없이 자꾸 무너져내렸다. 어느 날 지나가던 한 스님이 '왜 주겠다던 원숭이띠 아기를 받아다가 바치지 아니하시오?' 하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그 공출관리는 그 여인의 집에 가서 아기를 달라고 하니 여인은 말없이 내주었다. 아기를 땅에 묻고 성을 쌓으니 과연 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런데 성을 완성하고 난 후 어느 날부터인가 밤마다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동네의 한 부인이 제사 지낸 후의 음식을 그 자리에 갖다 놓으니 아기 우는 소리가 그쳤으므로 그곳에 당을 세우고 그 여자 아기를 모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성을 축조할 당시에 주민들의 희생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전설이다.(제대신문 4329. 5. 22)

 

지금은 콘크리트로 포장해 버렸지만 이 당의 제단 밑에는 진안할망의 유품들(열쇠·사기그릇·도자기·함·향로)이 묻혀 있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 당에는 남자들만 다녔었다. 남자 혼자서 밥차롱에 메와 고기·술 등의 제물을 차리고 와서 절을 하고 제를 지내고 가곤 했는데, 지금은 남녀 구별없이 입시를 치를 자녀를 둔 부모들이 모인다. 메는 양푼에 산메를 쪄서 가지고 간다.

이 당의 제일은 쥐날(子日)이나 토끼날(卯日)에 생기를 맞춰 다니며, 특히 밤에는 자시(子時)에만 가는 것이 특징이다.(오성찬, 「제주의 마을 시리즈 제주 동부의 핵심 마을 고성리」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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