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펴기칼럼]가장 힘들었던 도움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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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펴기칼럼]가장 힘들었던 도움주기
  • 이범
  • 승인 2017.05.1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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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큰 고장 없이 살아 있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구부러져


가장 힘들었던 도움주기/이범의 몸펴기칼럼 


 

 

 


재작년 여름에 흥사단에서 주최하는 역사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일제강점기에 만주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우리 선조들의 독립운동과 관련이 있는 장소를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이었다.

명동학교, 해란강, 안중근 선생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 역,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 지역, 안중근 선생 등 수많은 독팁투사들께서 투옥당해 고문을 받으면서 고생하시며 살던 뤼순(여순)감옥, 당시 영국에 대해 한국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아일랜드 사람으로서 한국인들에 대해 동정심을 가지고 우리 독립투사들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조지 쇼의 이륭양행(怡隆洋行) 터, 마루타로 알려지게 된 그 악랄한 일본인 731부대(여기에는 마루타로 죽은 사람의 시체를 태우던 소각로 건물이 아직 반 이상 남아 있어 모골이 송연하게 한다) 등 선조들의 피 맺힌 절규와 일제의 만행이 뼛속 깊이 느껴지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몸으로 체험하는 12박 13일의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에 학교 다닐 때 같은 서클에서 활동하던 선배 한 분이 동행을 하였다. 당시, 그러니까 유신독재 시절에는 고대에서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의 호)연구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는데, 학교(실은 중앙정보부일 것임)에서는 불온 서클이라 딱지를 붙여 학교에 등록된 서클로서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지는 못하고 지하(?)에서 모암을 갖는 처지였다.

그때의 곤경 때문이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어쨌든 지금은 선후배가 돈독하게 정으로 뭉쳐 석산회(石山會)라는 이름으로 자주 모임을 갖고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있다.

아마도 작년에 칠순이 된 이 모임에서 연배도 제일 높고 또 대장 격인 선배 한 분이 지극정성으로 후배들에게 배려도 해 주고 밥도 사 주고 한 것이 이 모임이 잘되는 원인일 것으로 여겨진다. 이 모임의 한 선배 분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선배의 자세를 보니 나로서는 이 선배가 아직까지 몸에 큰 고장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구부러져 있었다. 조폭의 자세 바로 그것이었다.

어깨는 잔뜩 움츠리고 고개는 푹 숙이고 있었다. 목은 자라목이 돼서 짧았고 짧은 대신 너무 두툼했으며, 위팔은 정상적인 사람보다 두 배는 굵은 것 같았다.

일반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근육이 잘 발달해 있으니 건강한 사람이라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아직까지 큰 탈 없이 살아왔다는 것에 대해 의아해할 정도로 굽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선배한테 얘기했다. “형, 그런 자세로 살면 언젠가 몸에 큰 탈이 날 것입니다. 자세를 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선배는 내 얘기가 전혀 귀에 들어오는 것 같지 않았다.

아마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자식, 지가 뭘 안다고 쓰잘 데 없는 소리나 하고 있어. 나는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데,’ 이 선배는 매주 테니스를 치고 있다고 자랑했다. 자기 건강의 비결이라고. 그 격한 운동을 50대 후반의 나이에 하고 있으니, 자신은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역사탐방에서 돌아오고 1년 2~3개월쯤 지났을까, 정확한 날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현재도 그렇지만 오래 전부터 이 모임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었다. 이 날 이 선배가 올 것인데 몸이 상당히 좋지 않으니, 한번 와서 좀 도와주라는 연락이 동기생한테서 왔다.

옆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몸을 풀어 드렸는데, 예상대로 어깨와 등, 팔이 돌덩어리처럼 굳어 있었다. 웬만한 정도이면 옆에 앉아서 풀어 주어도 거의 다 풀리는데, 이 선배한테는 잘 통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한테 한번 찾아오시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다. 온몸풀기부터 시작해서 영역별, 부위별로 정밀하게 풀어야지, 이 선배한테는 이렇게 앉아서 푸는 것에는 한계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한두 달쯤 지났을까, 토요일이었다. 아침에 이 선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좀 찾아가도 되겠냐는 것이었다. 아파 죽겠다는 것이었다. 선배가 아파서 찾아오시겠다고 하는데, 오지 말라고 할 이유가 있겠는가.

11시쯤 형수와 함께 오셔서 하시는 말씀. 그때 네가 몸을 만지는데, 하도 아파서 또 그렇게 아프게 할까 봐 너한테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더는 못 참겠어서 이렇게 왔다. 3일 동안 하도 아파서 잠을 못 잤다. 소파에서 웅크리고 앉아 잠시 눈을 붙였을 뿐이다. 어떻게 좀 해 보라.

누워 보시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그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잘 눕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용을 써서 겨우 눕는 자세가 나오기는 했는데, 머리 뒤통수가 바닥에 닿지 않는 것이었다.

누워서 하시는 말씀. “아이구, C발.” 머리가 바닥에서 떠 있는 상태에서 목이 너무 아픈 것이었다. 이후 이 선배하고 몇 번 더 만나서 도움을 드렸는데, 심하게 아플 때면 “아이구, C발”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게 이 선배의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어쨌든 목이 아파 머리를 바닥에 대지 못하니, 목베개를 머리에 받치고 눕게 했더니, 이제는 괜찮다고 했다. 그 동안 만 명 이상은 사람들의 몸을 보아 왔는데, 이렇게 머리가 바닥에 닿지 않는 사람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후 사투가 벌어졌다. 손으로 하는 온몸풀기 1단계를 하고 있는데, 이 선배가 “그만, 그만!”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구, C발” 하는 소리가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동작을 멈추고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았다. 선배 왈, “등 가운데로 전기가 찍찍 하면서 흐르는데, 이건 고압선이야, 고압선. 도저히 못 참겠어.” 1단계 온몸풀기를 하면서 어깨나 등, 배, 심지어는 머리까지 아프다고 하는 사람은 많이 보았지만, 다들 참을 만은 하다고 했고, 그리고 이 동작을 계속하다 보면 조만간 그런 통증은 사라졌다.

그런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1단계 온몸풀기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선배는 사정이 달랐다. 고압선이 흐른다고 하니, 어쩌겠는가. 계속해서 이 온몸풀기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통증을 느낄 때에는 우선 그 방법을 중지해야 한다. 계속해서 그 방법을 쓰게 되면 상대방은 그 통증 때문에 거부감을 갖게 되고, 결국은 몸살림운동에 대해서도 불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에는 돌아서 가야 한다. 우회로로 가게 되면 시간은 더 많이 걸리겠지만, 결국은 도달해야 할 지점에는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가락부터 잡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장난이 아니었다.

손가락을 뽑을 때 “또독, 또독” 하는 소리가 잘 나면 팔과 어깨, 등까지도 큰 이상은 없는 것이고, 이런 소리가 잘 안 나면 손가락부터 팔, 어깨, 등, 목까지 ‘근육의 줄기’를 따라 이상이 있는 것이다.

이 선배한테서는 거의 모든 손가락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럴 때에는 손가락을 좌우로, 그리고 뒤로 꺾으면서 풀어 주어야 한다. 이렇게 했더니, 연발해서 “아이구, C발”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도움주기를 하면서 이런 사람은 처음 봤다. 광화문에서 ‘배운 대로가 아니라 본 대로’ 하는 방법을 쓰면서 실수도 많이 했고 실패도 많이 했다.

이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고민도 많이 했다. 참으로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나 나름대로 이론과 방법, 기술을 정립한 이후로는 실패하거나 실수한 적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 선배한테는 통하지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상황은 타개해야 했다. 이번에는 등 쪽의 허리세움근을 잡기 시작했다. 한 번씩 잡을 때마다 “아이구, C발” 하는 소리가 연발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잘 아는 선배이기 때문에 때려치우고 나가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크게 통증을 느끼면 “나, 안 해!”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텐데, 선후배라는 끈끈한 연이 있어서 그런지 이 선배는 잘 참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새 1시 가까이가 됐다. 나는 지칠 대로 지쳤고 배도 고팠다. 도움주기라는 것이 노동 강도가 센 ‘노가다’, 즉 강한 육체노동과 같은 것이어서 한두 시간 세게 하고 나면 힘이 쭉 빠지게 돼 있다.

이제 힘이 거의 소진돼 더 이상 도움주기를 계속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이 선배도 거의 두 시간 동안 통증을 참아 냈으니 나와 마찬가지로 힘이 빠져 있을 것이었다.

통증을 느끼면 심장이 더 빨리 뛰고 숨도 더 빨리 쉬게 되는데, 이는 혈액을 빨리 순환시켜 그 통증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몸의 자구적인 반응이다. 거의 두 시간의 통증, 그러니 이 선배도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밥을 먹고 계속하자고 했다. 식사를 하고 돌아와 또 두 시간 정도 이 선배와 나는 또 사투를 벌였다. 손가락, 팔, 어깨, 등, 목을 잡아 주었다. 그래도 이 선배의 몸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이제 내게는 더 이상 이 사람의 몸을 잡아 줄 힘이 없었다. 보통은 한 번이면 됐는데, 이 선배한테는 통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두 번에 안 되면 세 번, 더 나아가 열 번, 스무 번이라도 해서 몸의 이상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그래서 이 선배한테 얘기했다. “형, 다음에 다시 오시지요. 형 몸이 워낙 굳어 있어 몇 번 더 풀어 주어야 할 것 같아.”

이 선배도 동의를 했다. “거의 1년 가까이 아팠던 몸인데, 한 번에 되겠냐.” ‘누워 온몸풀기’(=와불운동) 자세를 가르쳐 드리고, 이 운동 열심히 하라고 당부를 하고 다음 주에 다시 보기로 했다.

다시 보았을 때 몸은 조금, 아주 조금, 손톱 끝만큼만 좋아져 있었다. 운동 열심히 하셨냐고 물어보았더니, 우물쭈물하면서 조금 했다고 대답하셨다.

이런 경우 그 동안의 경험을 종합해 보면 거의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1주일이라도 알려 준 운동을 열심히 했다면 그래도 몸은 많이 바뀌어 있었을 것이다. 부정맥으로 맥이 빠져 목소리가 완전히 기어 들어가던 사람도 1주일 정도 와불운동을 열심히 운동하고 나서 점검을 하러 와서 보면 목소리가 살아나서 밖으로 튀어 나온다. 몸이 펴져 웬만큼 기운을 회복한 것이다.

이 날도 “아이구, C발”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두 시간 동안 사투를 벌였다. 저번과 차이가 있다면 온몸풀기를 할 때 “그만해!” 하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됐다는 정도였다. 그리고 이 날에는 온몸풀기를 해 주고 나서 본격적으로 흉추 극돌기 위와 등 쪽의 허리세움근을 풀어 주기 시작했는데, 흉추 극돌기 위를 풀어 줄 때 팔부터 손까지 고압의 전기가 흐른다고 했다.

그래도 견딜 만은 하다고 해서 이 부위를 집중적으로 풀어 주었다. 목 바로 아래에 있는 호두알부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풀어 주었는데, 처음에 잡을 때는 흐르던 고압의 전기가 점차 사라져 드디어는 괜찮다는 얘기까지 듣게 됐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직 멀었다. 도대체 얼마나 해야 되는지 가늠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쨌든 다음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다음에 만났을 때에는 이 선배가 조금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제 누웠을 때 뒤통수가 바닥에 닿아도 별로 목에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고. 이것만 해도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심한 통증을 느낄 때 “아이구, C발”에서 “아이구, C”로 소리가 바뀐 것도 진전이라면 진전일 수도 있다.

이 선배와 나는 ‘발’자가 없어졌다며 함께 박장대소를 했다. 그러나 흉추 극돌기 위를 잡을 때 팔부터 손까지 고압선이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은 좀 약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하다고 했다. 아직도 먼 여정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다음에 만났을 때에는 “아이구, C”에서 'C'자가 빠지고 “아이구” 소리만 했다. 통증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얘기이다. 흉추 극돌기 위를 잡을 때에 흐르던 전기의 강도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11개월 정도 계속되던 오십견도 사라져 이제는 양손을 뒤로 돌려서 잡을 수 있게 됐다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에는 “아이구”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전기도 흐르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왼쪽 팔과 목, 등, 어깨의 통증은 다 사라진 셈이었다. 오른쪽 팔을 잡아 보았더니 이제는 아프지 않던 오른쪽 팔이 더 딱딱했다.

이 선배한테 얘기했다. “형, 이렇게 다섯 번이나 내게 온 사람은 형이 처음이야. 이제 운동 좀 하셔야지요.” 이 선배는 새로 시작되는 금요 기초반에 나와서 운동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선배는 금요일에 나오지 않았다.

“똥 누러 갈 때와 밑 닦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속담이 있는데, 역시 그랬다. 아플 때에는 운동해서 다시는 아프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이제 안 아파지면 그런 마음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봄눈 녹듯이 사라진다. 그런 사람들 하도 많이 경험해 보아서 잘 알고 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한 달쯤 지났을까, 일요일이었다. 저녁 9시가 좀 안 된 때였다. 사무실에 나와 일을 보고 집에 들어가려고 하던 차였다. 나는 성인 남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TV에서 다른 것은 보지 않아도 대하드라마만은 거의 빠지지 않고 본다. 당시 KBS에서는 9시 40분에 ‘근초고왕’을 방영하고 있었다.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집으로 가려고 일어서려던 차였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그때 그 선배였다. 허리가 아파 죽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내일 보자고 했더니, 내일은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오늘 보아야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 빨리 오라고 했더니,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가겠냐는 것이었다. 택시비 줄 테니 네가 빨리 오라고 한다. 이게 선배의 말씀이니, 안 따를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여의도에 있는 이 선배의 아파트로 찾아갔다.

도착해서 보니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니, 일어서지도 못한다고 하시더니……?”

“야, 겨우 일어나서 밥 먹고 있는 거야.”

이 선배가 식사를 마치니, KBS에서 막 ‘근초고왕’을 시작하고 있었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느긋하게 이 드라마를 즐겼다. 집에 가서 볼 드라마를 이 선배의 집에서 보게 된 것이다. 이 선배도 이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하여 같이 보았다.

그런데 이 선배는 정말로 문제였다. 저번에 목과 어깨, 팔이 아플 때에도 그랬지만, 한번 아프면 보통 아픈 게 아니다. 근육이 굳어 있는 정도가 보통 사람의 정도보다 너무 심했다.

마치 돌덩어리를 만지는 것 같았다. 허리 아픈 정도야 누구든 아무리 많이 걸려도 1시간이면 충분한데, 이 선배하고는 무려 3시간이나 진땀을 흘리면서 혈투를 벌여 겨우 해결을 했다. 밤 10시 반에 시작해서 1시 반에야 일을 끝냈다. 일을 다 처리하고 나니 내가 진이 다 빠졌다.

 

이로부터 2주쯤 지났을까. 석산회 모임이 있어 나갔더니, 한 친구가 이 선배 얘기를 했다.

“네가 한밤중에 그 선배 집에 가서 허리를 잡아 주었다며? 얘기 들었어.”

“야, 말도 마라. 3시간이나 진땀을 뺐어. 이 선배는 한번 굳으면 왜 그렇게 심하게 굳는지 모르겠어.”

“야, 그게 당연하지. 그 선배 자세를 봐. 구부정하지. 우리 아는 사람 중에는 그 선배보다 더 구부정한 사람은 없을 거야.”

맞다. 이 친구 말이 맞다. 워낙 구부정한 데다 테니스처럼 격한 운동을 하니 근육은 크게 발달해 있으면서 굳어 있었을 것이다. 늘 통증을 달고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이 선배는 1년 365일이 아니라 1년 366일 술을 든다고 했는데, 늘 통증이 있으니 진통제로 술을 들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통증을 잊고 살 수 있었을 테니끼. 이런 상태에서 한번 삐끗하면 갑자기 근육이 빠짝 긴장하면서 그렇게 심하게 굳었을 것이다. 그러니 도움주기를 할 때에도 그렇게 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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