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이야기]아시나요, 사할린의 망향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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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이야기]아시나요, 사할린의 망향탑을.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17.08.14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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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환경부 국장 역임,,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아시나요, 사할린의 망향탑을.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한 지 72주년이 되는 8·15 광복절이 다가옵니다. 광복절은 기쁨과 동시에 남북 분단의 시점이 되는 슬픔도 함께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남북 분단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국가적 문제입니다.

더불어 이산가족 간의 슬픔과 한스러움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이기도 합니다. 우리 꽃을 사랑하고 보고 싶어서 우리 산들꽃을 찾는 꽃쟁이들에게도 커다란 아쉬움이 있습니다. 우리 식물도감에 실려 있는 우리 꽃이지만 만나볼 수 없는 꽃이 있습니다.

북한에서만 자생하는 우리 꽃들입니다. 우리 땅이지만 가볼 수 없는 북한 땅이기에 우리 꽃을 만나 볼 수 없습니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월남 이산가족과 같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가볼 수 없는 북한에만 자생하는 우리 꽃을 만나보기 위해서는 연변, 연해주 또는 사할린 등 북한 주변국을 찾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에 자생하는 우리 꽃을 찾아 사할린과 쿠릴열도에 다녀왔습니다. 오는 길에 유즈노사할린스크 남쪽 항구에 있는 코르사코프의 망향탑을 들렀습니다. 재작년 꽃 탐방 와서 사할린 이중징용 광부의 한 서린 역사적 사실을 들어 알게 되었습니다만 그때 바로 코르사코프 망향의 동산에 들러 망향탑을 참배할 수가 없어 무척 마음 아팠습니다.

이번에는 꼭 들르겠다고 처음부터 탐방 일정에 포함했지만, 쿠릴열도에 가서 기상 관계로 비행기가 결항한 탓에 일정이 흐트러졌습니다. 하는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원하는 네 명이 탐사대 일행에서 빠져나와 다른 일정을 제치고 부랴부랴 사할린의 망향탑을 급히 다녀왔습니다.

코르사코프 항구를 내려다보는 나지막한 언덕에 조그만 나룻배를 본뜬 파이프 조형물이 외롭게 서 있었습니다. 언덕에서 바라보니 오호츠크 해의 탁 트인 너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멀리 수평선 너머가 바로 동해입니다.

기념탑이 서 있는 곳은 썰렁한 도로와 아파트 몇 채만이 있는 한적한 동산 언덕이었습니다. 기념탑 주변에는 아무런 시설도 없었습니다. 다만 기념탑 양옆 땅바닥에 비문이 새겨진 돌판이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비문에는 하늘도 슬픔을 아는 양 잔뜩 흐린 날씨에 비가 내려 임들의 눈물처럼 빗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습니다. 손수건을 꺼내어 비문에 맺힌 빗물을 닦아내고 비문을 읽어가다가 울컥 목이 메 끝까지 소리 내어 읽지를 못했습니다.

이 망향의 언덕은 사할린 동포에게 통곡의 땅이요 한 서린 죽음의 언덕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온 동포들이 1946년 통계에 따르면 4만 3천 명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났고 대한민국은 해방되었습니다.

멀리 사할린에 끌려간 동포들은 패전국 전범의 국민인 일본인들보다 앞서 고향으로 돌아갈 것으로 굳게 믿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46년 ‘미소 귀환 협정’으로 일본인 30만 명의 귀국이 개시되었지만 사할린 한인들은 일본인이 아니라서 귀국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다음 해 1947년, 중국인(대만인)도 조국이 보낸 귀환선을 타고 모두 돌아갔습니다. 먼저 귀국하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던 사할린 한인의 귀국의 꿈은 한낱 희망일 뿐이었습니다. 소련과 국교가 없고 반공 이념에 몰입된 대한민국은 이들을 찾을 여건과 경황이 없었고 강제로 끌어간 일본은 나 몰라라 팽개쳤습니다.

일본으로부터 사할린을 양도받아 노동력이 필요한 소련은 한인의 억류가 오히려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들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버림받은 국적 미아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귀국의 꿈에 부푼 징용 한인들은 사할린 전역에서 물밀 듯이 모여들어 망향의 언덕을 가득 메웠다고 합니다. 해방된 조국이 반드시 찾아 주리라는 굳은 믿음으로 끝내 오지도 않는 귀국선을 무작정 기다리기만 했다고 합니다.

8월이 지나면 차가운 얼음 땅으로 변하는 사할린 땅에서 하릴없이 수평선 너머 까만 배 한 척만 보면 행여 조국이 보낸 귀국선일까? 까치발, 모둠발 치켜세워 눈 비비며 언덕으로 올라가 하염없이 지나가는 배만 쳐다보다가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미쳐 죽은 한 맺힌 망향의 동산입니다.

이곳에 초라하나마 망향탑이 세워진 것도 불과 10년 전인 2007년 10월 1일이었습니다. 국가도 아닌 가스 플랜트 공장을 짓기 위해 사할린에 진출한 대우건설의 지원으로 세워졌다고 합니다.

 

끝내 목이 메어 다 읽어내지 못한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배를 세우는 뜻은/1945년 8월 애타게 그리던 광복을 맞아/동토 사할린에서 강제 노역하던 4만여 동포들은/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이 코르사코프 항구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제는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이분들을 내 버린 채 떠나가 버렸습니다./소련 당국도/혼란 상태에 있던 조국도/이들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짧은 여름이 지나 몰아치는 추위 속에서/이분들은 굶주림을 견디며/고국으로 갈 배를/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이윽고/혹은 굶어 죽고/혹은 얼어 죽고/혹은 미쳐 죽는 이들이 언덕을 메우건만/배는 오지 않아/하릴없이 빈손 들고/민들레 꽃씨 마냥 흩날려/그 후손들은 오늘까지 이 땅에서/삶을 가꾸고 있습니다.//

조국이 해방되었어도/돌아갈 길이 없어 /아직도 서성이는 희생 동포들의 넋을 /조국으로, 세계로 자유롭게 /모시려는 뜻을 모아/이 “망향의 언덕”에 /단절을 끝낼 파이프 배를 하늘 높이 세웁니다. // 글 : 김 문환

정부도 하지 못한 사할린 동포와 교민의 눈물을 씻어주고 숙원사업을 해낸 대우건설이 참으로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국내의 대기업이 해외에서 영업 활동을 하고 이름을 떨치는 것이 바로 국위를 선양하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남북 이산가족의 재회의 기쁨과 설움의 격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던 2000년 8·15 광복절의 첫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남북 간의 사이는 갈수록 멀어져 가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8·15는 다가옵니다. 우리에게 잊혀 가는 사할린 동포의 애환과 서러운 과거사를 누가 기억이나 해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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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나요, 사할린의 망향탑을


가련다.
나는 가야 한다.
해방된 조국 찾아
고향 땅 부모, 형제 찾아
머나먼 얼음 땅
앞길 막힌 탄광 막장
눈물 빵에 목멘 징용 생활 끝내고.


복음 같은 해방 소식에
미치도록 기뻐했던 사할린 징용 광부
조국 가자, 고향 가자.
사할린 전역에서
물밀 듯이 찾아온 남쪽 항구 코르사코프,


패전국 일본 거주민, 귀환선 타고 떠나고
함께 끌려온 중국인, 고향 찾아 떠났는데
해방 맞은 한국인만 귀국선 소식 깜깜했네.
러시아도 일본도 알 바 없다 손사래 치고

조국 대한민국은 나 몰라라 손 놓고.


하릴없이 눈 빠지게 귀국선 기다리던
오갈 데 없는 사할린 징용 동포들
바다 끝에 까만 배 한 척 보일 적마다
행여 우릴 찾는 귀국선 아닐까
까치발 서다 모둠발 서다 더 높은 언덕에 올라
애타게 목메어 기다리다, 부르다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미쳐 죽은
한 서린 동산, 코르사코프 언덕


임들의 흔적 바람처럼 사라지고
가녀린 한 조각 파이프 배 한 척
외롭고 쓸쓸히 그 자리에 서 있네.
이국 하늘 떠도는 외로운 혼이나마
고국산천 모셔갈 나루터 쪽배처럼.


코르사코프 언덕에 높이 솟아
오늘도 외로운 원혼을 달래는 쪽배 한 척
사할린 망향의 동산, 망향탑을 아시나요.
아직도 마르지 않고 남아 있는
사할린 동포의 눈물을 아시나요.


(2017. 8. 5. 사할린 코르사코프 망향탑 앞에서)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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