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묘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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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묘산봉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7.09.05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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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116.3m 비고:81m 둘레:1,658m 면적:157,609㎡ 형태:말굽형

 

묘산봉

별칭: 괴살메. 고살미. 묘산봉(猫山峰)

위치: 구좌읍 김녕리 369번지

표고: 116.3m 비고:81m 둘레:1,658m 면적:157,609㎡ 형태:말굽형 난이도:☆☆☆

 

 

등이 굽은 고양이의 모습이 애처로워 숲이 가려줬으나...

 

제주의 수많은 오름들 중에는 동물의 형상을 빗대어 정해진 곳들이 제법 많이 있다. 소와 말을 비롯하여 돼지, 개, 새 등 다양하게 나눠지는데 과거에 오름의 명칭으로 부르기에는 모양새를 두고서 정하는 것이 편했던 것 같다. 묘산봉도 그런 편에 속하는데 이 오름에 고양이가 살았다는 내용과 모양새가 고양이의 굽은 등을 빗대어 괴살메라고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자로 고양이(猫)를 뜻하는 표기에 산(山)을 붙여 표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괴살메(고살미)라는 별칭으로 부르기에는 다소 부담이 되는 느낌이 든다. 이는 사방 어느 곳에서 바라볼지라도 고양이의 모양새가 나타나지 않는 때문이며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생한 나무들과 조림사업으로 인하여 자라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형성하고 있어 오히려 원추형 화산체처럼 봉긋하게 솟은 모습이 우선 눈에 띄고 있다.

실제는 남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굼부리가 있으면서 등성을 따라 더러 펑퍼짐하게 이어지는 산 체인만큼 아마도 과거의 모습은 고양이를 그려보기에 어울렸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제주의 동부권 중 김녕 마을에 위치하였으면서 해안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는데 인근의 입산봉과 더불어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오름이라 할 수 있다.

기슭과 정상부 등이 변한 것처럼 굼부리 내부 역시 대부분 농경지로 개간이 되어서 농사를 짓고 있다. 오름 기슭을 둘러 농로가 나 있으며 등성을 따라 산책로가 만들어졌고 일부 기슭이나 등성 아래에서 묘들을 볼 수가 있다.

남동쪽 기슭에는 고려 공민왕 때 입도한 광산 김 씨 제주 입도조인 김윤조의 묘가 있는데 고려 양식인 석곽방묘(石槨方墓) 묘형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이 되기도 했다. 또한 그 아래쪽에는 그의 증조부인 김수 장군을 추모하기 위한 사적비가 후손들에 의해 세워져 있는데, 김수 장군은 삼별초 난 때 관군의 부장(副將)이었으며 당시 전사한 인물이다.

전 사면을 포함하여 오름 기슭에는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잡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섰으며 허리와 어깨를 지나는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이 때문에 정상부를 비롯하여 어느 쪽에서도 이렇다 할 전망은 열리지 않고 있다.

고양이의 몸통 중에 등 부분마저도 길게 난 털이 안팎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이러한 환경적 영향과 입지로 인하여 산 체의 외형은 봉긋하게 솟아난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기세가 대단한 화산체로 보이기도 한다.

 

묘산봉과 마주한 입산봉이 두 팔을 벌리거나 활(弓)처럼 휘어진 가운데 내부가 넓게 열린 모습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이런 외형적인 면과 더불어 서로 가까이 위치하고 있음에 연유하여 마치 암수가 짝을 이룬 모습을 연상하게 만든다.

특히나 입산봉의 굼부리 안에 물이 고인 상황은 여자를 상징하고 봉긋하게 솟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묘산봉은 남자로 여길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을 그려보는 데는 외형상으로 북쪽 해안 방향이나 입산봉 정상에서 바라볼 때 더욱더 신비롭고 오묘함을 느끼게 된다.

김녕은 해수욕장과 분위기 좋은 성세기 해변이 있으면서 해안도로가 잘 이어져 있는데 이 유명세 때문인지 오름 산책을 염두에 둔 방문객들은 많지 않지만 김녕 마을의 심지 역할을 하는 오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묘산봉 탐방기-

 

이동성이나 접근성을 비롯하여 현장의 여건 등을 고려할 때 입산봉과 묘산봉은 함께 만나는 것이 바람직한데 역시 입산봉을 찾았던 날에 함께하였다.어느 곳을 먼저 탐방하던지 별 상관은 없으나 탐방에 의미를 둔다면 이 둘은 어차피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입산봉에서 내려온 후 마을 소로를 따라 이동을 한 후 묘산봉 입구에 도착을 하였다.

정해진 산책로를 이용할까 고민을 하다가 백(back) 코스의 부담 때문에 중간의 비 탐방로를 초입으로 선택하였다. 오름의 허리를 따라 기슭의 중간까지 거창하게 만들어진 구성물이 있어서 주변을 살피니 40년 전에 착공이 된 것이었다.

계단을 따라 오르니 동상이 있고 위쪽에는 묘가 있으며 세워진 비석을 살피니 아마 공헌과 관련이 있어 업적을 고려한 배려로 짐작이 갔다. 구태여 이곳을 진입로로 선택을 한 것은 숲이 울창하여 북향의 전망이 어려운 때문이기도 했다. 묘지를 거슬러 오른 후 등성에 도착하기 전에 돌아서니 비로소 나무들 틈으로 해안 방향이 보였다.

그러나 시계가 좋지 않은 탓에 별다른 볼품을 만날 수는 없어 아쉬움이 컸으며, 다음으로 기약을 하고 이동을 했는데 등성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에 도착을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초여름의 풍경을 만나고 잡초가 성장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햇살을 거친 숲 향이 제법 짙게 풍겨왔지만 깊이나 그윽함은 기분을 충족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정상부 근처에 벤치가 있으나 잡목들이 빽빽하게 차지하고 있어서 사방을 가리고 있고 바람마저 접근을 방해하는 때문에 아쉬움이 컸으며 이렇다 할 전망의 조건은 없었다.

산책로의 구성은 괜찮은 편이지만 전망에는 참 인색한 오름이며 배려에 무심한 오름이라고나 할까. 남쪽 기슭의 한 부분은 파헤친 자국이 보였는데 재선충병과 관련하여 작업 차량들이 드나들었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이로 인하여 길 아닌 길이 되었으나 여느 오름들이 그러하듯 복원과 정돈은 남의 일이 되고 만 상태라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허리 능선으로 들어가니 나무 틈새로 입산봉이 보였다. 삿갓오름이라는 별칭을 지녔으면서 마을 공동묘지로 변한 입산봉이나 괴살메라는 별칭을 지닌 묘산봉이 원시적 모습 그대로 남았다면 의미가 있을 법하게 느껴졌다.

삿갓오름의 형세는 굼부리를 중심으로 두 팔을 길게 뻗어 무언가를 감싸 안으려는 형상으로 보였는데 마치 아이나 그리운 사람을 ​껴안고 사랑과 정을 나누려는 자세를 연상하게 하였다. 그런 과정을 상상하다 보니 봉긋하게 솟은 묘산봉이 숫오름이라면 필시 입산봉은 암오름의 형세로 여겨졌다.

 

이 둘은 떨어져 있지만 서로 마주하면서 의좋게 지내려 하고 그리움과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겠지만 공동묘지로 변한 입산봉으로서는 더 이상의 사랑을 포기하고 묵묵히 망자들을 받아들여 한을 풀어주고 넋을 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서툰 상상을 하다가 이동을 했는데 구성이 된지 오래된 산책로의 바닥은 타이어매트가 차지하고 있었고 일부 구석진 곳에는 솔잎이 수북하게 쌓여 구성물을 아예 지워버린 모습도 보였다. 등성을 지키는 소나무들이 떨어뜨린 솔잎들이 일부를 덮고 있어서 발길이 닿는 느낌은 차라리 더 좋았다.

경사가 이어지는 허리 부분은 안전 밧줄과 경계 데크 목을 추가로 만들어 배려를 해 놓았다. 느리게 진행을 하려 해도 특별한 볼거리나 환경의 변화가 적은 때문에 아쉬움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나마 전망조차 없으니 찾는 이들이 적을 수밖에 더 있겠는가.

기슭을 따라서 정상부까지 이어지는 코스와 허리를 따라 능선으로 진행을 하는 두 개의 코스로 나눠진 갈림길에 도착을 했다. 어차피 비 탐방로를 초입으로 한 때문에 마무리 때 만난 셈이었는데 묘산봉의 산책로 구성은 비교적 좋은 편이지만 전망만큼은 아쉬움도 있다. 행여 자연 생태 파괴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정상부에 전망대를 겸하는 정자라도 만들어 놓는다면 그 가치는 대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경우 김녕 해안의 성세기 해변을 비롯하여​ 남쪽의 오름 군락과 한라산 자락도 사정권 안에 들게 된다. 마을과 농지를 비롯하여 숲으로 이어지는 한가롭고 여유로운 풍경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묘산봉은 입산봉과 더불어 김녕 생태탐방로인 빌레왓길 코스에 포함이 된다.

도보여행은 혼자 걷는 경우도 많은데 지금의 환경으로서는 여성 혼자일 경우 다소 부담을 느끼게 된다. 제주의 정취가 담긴 옛 마을 길과 더불어 오름과 해안으로 이어지는 황금의 코스인 만큼 추가 구성을 할 필요가 있다.

마무리를 하고 돌아 나온 후 입산봉 어귀에서 다시 묘산봉을 바라보며 왜 고양이의 등처럼 굽어있는 모습을 먼저 생각을 했을까 하는 궁금함이 생겨났다. 환경이 달라진 지금의 외형만을 참고한다면 솟아오른 숫오름과 포옹을 하려 두 팔을 벌린 암오름으로 남녀의 사랑을 그렸어도 될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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