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민간등대..귀덕2리 진질개 도대불
상태바
[향토문화]민간등대..귀덕2리 진질개 도대불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9.19 07: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뿔대 모양으로 쌓아 형태 해안 방사탑처럼 보인다.


귀덕2리 진질개 도대불

위치 ; 한림읍 귀덕2리 진질개 포구 오른쪽
유형 ; 어로신호 유적
시대 ; 일본강점기
모양과 크기 ; 하단 449㎝, 상단 368㎝, 높이 256㎝의 원뿔대

 
 

옛날 등대가 세워지기 이전 뱃사람들의 아낙들은 비바람이라도 부는 밤이면 횃불을 들고 지아비를 마중 나가곤 하였다. 이것을 '갯불'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를 대신하여 1915년을 근간으로 제주의 포구에는 소위 '도대'라는 옛 민간등대가 1960년대까지 축조되었다.(한라일보 2010년 3월 12일 백종진·제주문화원 문화기획부장 글)

귀덕이라는 해안마을은 포구를 중심으로 마을이 길게 늘어서 있다 하여 마을 사람들은 '진질', 즉 '긴 길'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이 곳 바닷가의 이름도 '진질개'라 불린다.

이 진질개의 오른편 한쪽에는 지금의 등대 역할을 하던 도대불이 있다. 원뿔대 모양으로 쌓아 올려진 형태가 언뜻 보기에는 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사탑처럼 보인다.


진질개 도대불은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이 마을의 한 할머니(1994년 74세)는 "17살에 시집왔을 때 벌써 도대불이 있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1930년대에 이미 축조되어 있음을 뜻한다. 외벽은 현무암을 이용하여 허튼층쌓기를 하였고 속은 잡석채움을 하였다. 윗부분에는 호롱불을 놓기 위한 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관망을 겸할 수 있도록 윗면이 넓게 되어 있다. 이 도대불은 크게 대를 이루는 부분과 등화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를 이루는 부분은 진질개 주변에 높은 지형이 없는 탓인지 가급적 높게 쌓으려 했던 흔적이 보인다.

처음부터 밑지름을 크게 잡고 석축하였다. 이는 윗부분이 허물어진 상태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윗부분의 대는 긴 나무를 이용했었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나무를 이용하여 어른키 정도되는 높이에 등화도구를 넣고 불을 밝혔던 것으로 보인다. 불을 켜거나 관망시에 위로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1966년 마을에 전기가 가설된 뒤부터 귀덕리 도대불은 사용하기 않게 되었다. 귀덕리 도대불은 상단부가 훼손되어 있었으나, 나머지 부분은 전반적으로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해체되어 포구 쪽에 다시 복원하여 놓았다.


그 때에는 고기 잡으러 나가는 가구에서 배가 나가는 날에 호롱불을 켰다. 도대불 밑에 발돋움대가 있어 그것을 짚고 올라갔다고 한다.

김은일(1994년 53세)씨의 기억으로는 등피불 담당은 〈불칙〉이라 하여 포구 가까이에 사는 나이가 들어 생업에 종사하기 힘든 어른(마을 유지급)에게 맡기고 고깃배마다 고급 어종으로 1∼3마리를 보수로 드렸다고 한다.


1960년 동력선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 마을에는 풍선 9척이 있었는데, 동력선으로 2시간 거리가 되는 곳까지 풍선으로 조업을 나가기도 하였다.

1966년 전기가 들어오면서부터 이 도대불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많이 허물어져 도대불인지를 알 수 없는 상태였으나 지금은 상단부 시설을 제외한 부분은 전반적으로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제주의 도대불 137쪽, 이영권의 제주역사이야기,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