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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자유칼럼]'고2 엄마’와 추석 차례이정원(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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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승인 2017.10.11  07: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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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엄마’와 추석 차례

 

   
이정원(시조시인)
가치관은 규범, 도덕, 윤리, 의식, 습관, 생활양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가치관은 동서양이나 국가, 종교, 종족, 성별 등에 따라 다를 수 있고 협의로는 지역, 가문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동양의 유교적 사상과 법도에 따라 혼례, 제례 등에서 가문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하찮은 형식과 순서를 두고도 남의 집 잔치 상에 “감 놔라, 배 놔라”하며 반갑지 않은 참견을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걸 이제까지 미덕으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유교 가문에서 태어나서 제례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합니다. 어려서부터 “홍동백서” 좌포우혜“의 형식에 물든 나머지 과거 아버지께서 생존해 계실 때 제사를 지내면 음식을 놓는 순서와 제례 순서, 술잔을 올릴 때는 ‘초헌’ ‘아헌’ ‘종헌’ 때문에 걱정도 많이 들었습니다.

엊그제 추석을 맞았습니다. 한데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제례의 예법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내외는 불교를 믿는데 아들 내외는 교회에 나갑니다. 기독교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고 그냥 일상에 먹는 대로 차려 놓고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저는 원래 막내여서 제사 걱정은 안 했는데 과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아들이 없는 막내 숙부님께 70세가 되어서 양자를 갔습니다. 막내숙부님은 유교를 신봉하셨기 때문에 대를 잇고 제사를 지내줄 후손으로 나를 양자로 입적하셨고 그래서 바늘에 실 가듯이 손자에게 계속 대를 이어 제사를 지내줄 것을 생전에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양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가 이제 석 달 되었습니다. 첫 번째 맞는 추석 차례입니다.

나는 나이가 80이고 아내도 75세로 둘 다 나이를 먹고, 거기다가 나는 어지럼증으로, 아내는 골 협착증으로 구부리거나 오래 걷는 데 심한 불편을 겪어 제사를 모시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아들 내외에게 우리 대신 추석 차례를 지내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기독교를 믿지만 아들 내외는 제사에 대해서는 효도의 한 형식이라고 생각하고 평소에 별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제사 준비를 하도록 부탁했습니다. 한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아들 집에서 차례를 지내기로 약속했는데 저녁에 제물을 전부 가지고 올라와서 하는 말이 당분간 아버지 댁에서 제사를 지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나와 아내는 황당하여 “무슨 말이냐? 엄마가 아파서 우리 집에서는 못 지낸다고 했쟎냐? 갑자기 이러면 어떻게 하니?” 하고 역정을 냈더니 아들 얘기가 자기 집에서는 못 지내겠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짐작컨대 며느리가 반대를 한 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고2와 중2인 손자 형제가 있는데 “고2 엄마로서는 아이들 뒤치다꺼리와 직장 출근 때문에 앞으로 한 5년간은 저희 집에서는 제례를 올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주 단호하게 잘라 말했습니다.

이때 문득 생각났습니다. “아! 이게 요즘 말하는 강남 아줌마들의 고2, 고3 엄마”라는 특권이자 핑계(?)로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요 몇 년 새 언론을 보면 ‘고3 엄마’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러면 그 많은 고3을 둔 엄마들은 아무도 제사를 안 지낸다더냐? 네 시누이도 고2 중3 딸을 뒀는데도 차례도 지내고 제사도 지내지 않느냐? 올 추석 차례 안 지낼 테니 당장 나가”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그러면 아들과 며느리가 항복을 하고 한 발 물러설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허사였습니다. 죽어도 막내가 대학 들어갈 때까지는 제사를 제 집에서는 못 지내겠다고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아들 내외는 둘 다 대학교수를 하는 맞벌이 부부입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집안 내력과 유교적 가치관을 모를 리가 없는 인텔리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니 조상보다는 자식과 가정이 먼저인 모양입니다. 우리 집에 와서는 차례를 지내도 저희들 집에서는 아이들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니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시위였습니다. 그게 이유의 전부였습니다. 조상보다는 자식과 남편이 먼저인 새로운 세태를 미처 모른 뒷방 늙은이가 되고 말았다는 부끄러움에 우리 내외는 할 말을 잊었습니다.

나는 머리끝까지 치솟는 화를 참을 수 없어 소리를 버럭 지르며 당장 가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아들 내외는 제물을 놔둔 채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더니 현관문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아들네는 바로 한 아파트에 삽니다. 우리 내외는 닭 쫓던 개 모양으로 아들 내외가 사라진 현관문을 야속하게 쳐다보다 아내와 함께 제물을 냉장고에 옮겨 넣었습니다.

그리고 추석날 아침 아내는 양아버지 차례를 안 지내겠다는 나를 달래면서 제상을 펴놓고 제물을 진설하는 것이었습니다. 며느리 이기는 시어머니 없다더니 바로 그 현실을 체험한 것입니다. 어쩝니까, 아들과 며느리에게 지고 만 것입니다. 나는 부모 말을 거역하는 50대의 아들 내외가 괘씸하여 양아버지께 제주를 올리며 분한 생각에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이다음 우리 내외도 제사 밥 얻어먹기는 다 틀렸다는 생각을 하니 이렇게 빠르게 변해가는 세대 차이와 가치관을 눈치 채지 못하는 내가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기는 여론조사 뉴스를 보니 추석이나 설날 차례를 안 지내겠다는 사람이 거의 절반이나 되며 그 시간에 여행을 가겠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난다고 합니다.

현실론이 전통적 관례마저 압도하는 대변혁이 오고 있음을 이렇게 늦게야 깨닫는 걸 보니 확실히 “구닥다리 꼰대”가 맞는 거 같습니다. 제례는 미신을 초월한 효의 상징으로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미풍양속인데 이 전통과 가치가 과연 계속 전승되어갈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쑥스러운 모습으로 차례에 참석한 아들 내외에게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이다음 너희들도 나와 똑같이 네 아들에게 당해 보라”고.

추석을 지내고 막 음복을 하는데 친한 친구한테서 카톡이 왔습니다. “조상 모시는 추석은 이미 쌍놈이 됐고 연휴 즐기는 추석으로 방향을 틀었네. 애들한테 끌려 가족여행 중인데 세대 차이를 많이 느끼고 있음. 구닥다리 늙은이가 된 듯… 나는 불교, 아이들은 기독교… 차례 잘 모시게 ㅎㅎ”(2017.10.6)



 


필자소개

 

이정원

시조시인. 1939년 충남 예산 출생.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고대신문 편집국장 역임. 공직에서 정년퇴임. 2005년 계간 ‘현대시조’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한국시조시인협회·한국문인협회 강남지부 회원. 현대시조 ‘좋은작품상’ 등 수상. 시조집으로 ‘얼레와 어금니’ 등 3권과 산문집 '코드 55'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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