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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칼럼]잎마다 꽃 되니임철순(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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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승인 2017.10.11  07: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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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마다 꽃 되니
 

   
임철순(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언론인)
긴 추석연휴에 좋은 말을 많이 만났습니다. 사람들과의 대화가 아니라 책과 글을 통해 알게 된 것들입니다. 대표적인 게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의 “모든 잎이 꽃이 되어가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라는 말입니다.

고교 동문 카톡방에서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좀 의아했습니다. 감성과 정서가 동양적이고 한시의 세계에 닿은 듯한데 카뮈의 말이라니 의외였습니다. 알고 보니 가을만 되면 사람들이 읊조려온 명구로, 업소의 간판을 이 말로 만들어 내건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말 번역으로는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다.”라는 것도 있습니다. 어떻게 말하는 게 더 나은 것일까. 아니, 카뮈의 말은 정확하게 어떻게 돼 있으며 어디에 처음 나온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가을이 되자 올해에도 어김없이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가짜 ‘윤동주 시’가 나돌아 이것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영어로는 “Autumn is a second spring when every leaf is a flower.”라고 돼 있더군요. 가장 중요한 것은 프랑스어입니다(카뮈는 “그렇다. 나에게는 조국이 하나 있다: 프랑스 말.” 이런 글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해독할 능력이 없어 프랑스 전문가에게 부탁했더니 “L’automne est un deuxi?me printemps o? chaque feuille est une fleur.(가을은 모든 잎이 꽃인 두 번째 봄이다)”로 돼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영어와 똑같았습니다.

독일어로는 “Der Herbst ist ein zweiter Fr?hling, wo jedes Blatt zur Bl?te wird.” 이렇게 돼 있더군요. 영어 프랑스어와 뚜렷하게 다른 점은 ‘모든 잎’이라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all이 아니라 every, each의 개념으로 잎이 꽃이 되는 걸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직역하면 “가을은 잎마다(또는 각각의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 번역이 훨씬 좋습니다. ‘모든 잎’이라는 획일성과 전체성에서 벗어나 잎에 독자성과 개별성을 부여하는 게 더 옳고 바른 것 같습니다. 유명한 헤르만 헤세의 시 ‘안개 속에서(Im Nebel)’에도 all이 아니라 each와 every의 뜻을 담은 Jeder(각자, 저마다)가 나옵니다.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모든 나무 덤불과 돌이 외롭다/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누구든 혼자이다.” 이렇게 번역(전영애)돼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모든 나무 덤불과 돌이 아니라 각각의 나무 덤불과 돌이 맞습니다. 모두가 혼자인 게 아니라 누구든 혼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번역은 그렇다 치고 카뮈가 어디에서 한 말인지 출전을 알 수 없었습니다. 여러 사이트를 검색해 봐도 카뮈의 말이라고만 기록돼 있었습니다. 가장 유력한 것은 그가 스물두 살이던 1935년 5월부터 교통사고로 숨지기 며칠 전인 1959년 12월까지 쓴 ‘작가수첩’입니다. 그래서 국내에 번역된 ‘작가수첩’ 세 권을 다 훑었지만 이 말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비슷한 것은 있습니다. 폐결핵 재발로 각혈을 하던 카뮈가 29세 때인 1942년 가을, 요양하러 간 중남불의 도시 샹봉-쉬르-리뇽에서 쓴 글입니다. “가을에 이 풍경은 잎새들의 꽃을 피운다. 벚나무는 온통 붉게 물들고 단풍나무는 누렇게 물들고 너도밤나무는 청동빛으로 뒤덮인다. 고원 전체가 또 한 번 봄의 수많은 불꽃으로 뒤덮인다.” 그보다 좀 뒤에 쓴 글은 이렇습니다. “하늘이 파랗기 때문에 강가에서 싸늘한 물 위로 아주 낮게 하얀 가지들을 뻗고 있는 눈 덮인 나무들이 마치 꽃 핀 편도나무들 같다. 이 고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항상 봄과 가을을 혼동하게 만든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알 수 없어 이만 포기할까 하는데 다른 프랑스 전문가가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카뮈가 1944년에 발표한 3막 희곡 ‘오해’에 이 말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극중에서 여인숙을 운영하는 모녀는 손님들을 살해하고 돈과 귀중품을 빼앗습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오자 모녀는 이번에도 살해해 바다에 던지는데, 알고 보니 20여 년 전 집을 나간 아들이었습니다. 저주받은 운명에 어머니는 바다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여동생도 죽기 위해 여인숙으로 돌아가면서 작품이 마무리됩니다.

이 희곡에서 여동생 마르타가 가을이 뭐냐고 묻자 오빠 장이 “모든 잎이 꽃과 같은 두 번째 봄”(“Un deuxi?me printemps, o? toutes les feuilles sont comme des fleurs.”)이라고 말합니다. 영어로는 “A second spring, when the leaves are like flowers.”입니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대사(臺詞)는 그 뒤 약간 변형돼 가을과 봄에 관한 유명한 수사(修辭)가 되었습니다.

원전을 찾는 동안 “글을 쓰는 것은 인간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했던 카뮈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작가수첩’에는 감성과 성찰이 빛나는 에스프리가 많습니다.
-나의 직업은 책을 쓰는 일과 나의 가족, 나의 민족의 자유가 위협받을 때 싸우는 일이다. 그것이 전부다.
-나는 작가다. 내가 아니라 붓이 생각하고 기억하고 혹은 발견한다.
-다시 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더 빨리 두각을 나타내고 싶어서인 것이다. 못된 버릇이다. 다시 시작할 것.
-산다는 것은 확인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느끼는 바를 남들에게 느끼게 하고 싶은 것으로 옮겨 놓는 기술이다. 처음 얼마동안은 우연 덕분에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중에는 재능이 우연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천재의 뿌리에는 행운의 몫이 없지 않다.

카뮈는 너무 일찍(1957년 44세 때) 노벨문학상을 받아서인지 “모든 완성은 속박이다. 그것은 더 높은 완성을 강요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가 더 살았더라면 어떤 글을 썼을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사람이든 천재는 죽을 때 죽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카뮈의 그 글을 나는 “잎마다 꽃 되니 가을은 두 번째 봄”, 이렇게 줄이고 싶습니다. ‘꽃 되니’가 좋을지 ‘꽃이 되니’가 좋을지 고심했지만 역시 토씨가 없는 게 나아 보입니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무슨 글이든 원전을 중시해야 하며 출전을 밝혀 알게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저작물에 대한 존중이며 표절에 대한 경계입니다. 카톡으로, 이메일로, 문자메시지로 매일같이 유포·전파되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말, 멋진 문장 중에는 엉터리나 가짜가 아주 많습니다. 멋지고 좋은 말이라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니 이건 나 자신의 고질적인 병통이겠지만 말입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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