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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고영철의 향토연구"제주의 원류를 찾아서.."
[향토문화]탐라 후기..종달리 패총(조개무지)3지구이곳 일대는 2천년전부터 조개잡이의 천국,패각층 집중 형성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http://www.jejuhistory.co.kr/index.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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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승인 2017.10.12  01: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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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 패총(조개무지)3지구


위치 ; 구좌읍 종달리 1838-3번지 일대. 종달초등학교 서쪽 우회도로변
시대 ; 탐라시대 초기(기원전 200∼기원후 200년)
유형 ; 조개무지 및 습지유적
문화재 지정 안 됨

 
   
 

   
 

사진 위 ; 2000년 발굴 당시 노출된 조개류 사진(한라일보 2002년 8월 28일)
사진 아래 ; 2001년 발굴 후 2002년 도로 확장공사 완료 후 패총 원경

 

종달리에서는 1991년에 1707번지 일대에서, 1993년, 2000년에는 1838-3번지외 4필지에서 이미 세 차례에 걸쳐 공사에 따른 구제발굴이 이루어졌었다.

2000년 7월, 종달리 4지구(1838-3번지) 조개무지 발굴을 통해 탐라후기(1,500∼1400년전)에 해당되는 종달리식 심발형토기 인화문토기, 손칼, 쇠도끼, 허리띠장식, 낚시바늘, 청동그릇, 굽은 옥, 골각기 등 인공유물을 확인했다.

특히 패각류는 내만성 조개류가 90% 이상 되며 전복, 소라, 성게껍질 등이 확인되었다. 동물뼈는 육상동물인 멧돼지, 사슴, 소, 말, 개과동물, 설치류 등이 보이고, 해양어종으로는 참돔과 혹돔 등의 돔류, 상어, 고래뼈도 확인됐다. 참돔은 현재도 고급어종으로 당시 고대인들의 식생활을 짐작케 한다.

고래뼈 등은 포획물이라기보다 우연히 흘러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10㎝ 크기의 대형 철제 낚시바늘 2점이 발견된 것은 눈여겨 볼 만하다.

이곳에는 조개류만으로 이루어진 순수한 패각층이 집중적으로 형성돼 있었다. 그처럼 패각층의 집적도가 높은 예는 드물다.

제주섬의 대표적인 곽지패총의 경우 고둥류의 비율이 8, 90% 되지만 이곳은 반대로 조개류의 비율이 그 정도를 차지한다. 패각층의 두께 역시 2m 이상 두텁고 면적 또한 넓게 분포돼 있었다.

당시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는 우스갯 소리로 '종달리 고대인들은 조개만을 먹고 살았나'하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약 2천년전 고대인들의 먹었던 조개류는 오늘날도 현대인들이 즐겨 찾는 현생종이다. 이곳 종달리 해안일대는 지금도 조개잡이로 유명하다.

지금은 그 양이 상당히 줄었지만 이곳 일대는 2천년전부터 조개잡이의 천국이었다. 패총에서 확인되는 조개류는 대부분 내만성으로 바닷물과 민물의 교차 지점이나 강어귀 등에 서식하는 종이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당시 이곳 해안선은 현재 지미봉 앞쪽 우회도로 인근 갈대밭과 마을 동쪽의 논밭 부근에 형성돼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당시 고환경과 고지리는 오늘날과 판이했던 것이다.

국립제주박물관이 2001년 12월부터 학술발굴에 들어간 이곳에서는 중국 신대(新代)에 제작된 화천 1매와 호박구슬 1개를 비롯 경남 통영의 늑도식 토기 등 외래계 토기들이 다량으로 출토됐으며 이와 함께 콩과 보리 등의 불탄(炭化) 곡물도 출토되었다.

기원 14년부터 제작돼 40년에 폐지된 화천은 패총의 맨 하부 문화층에서 발견돼 삼양동식점토대토기와 곽지리식토기를 비롯 도내 토기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절대연대자료로 평가된다.

화천은 제주시 산지항과 금성패총에서 출토된 바 있어 기원 1세기대 탐라국이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의 문화양상과 한반도 및 중국·일본 등과의 교류상을 파악할 수 있다.

화천(貨泉)은 한반도와 일본 후쿠오카, 요시노가리 등지에서도 발견되는 등 제주섬의 대외교류와 관련하여 유물 자체의 중요성이 크다.

화천이 종달리 유적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삼양동 점토대토기문화에서 곽지리식토기 단계로의 전개 과정을 밝혀주는 절대연대자료로서 뿐 아니라 탐라국 형성기 한반도와 중국 일본 등과의 문화교류상을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인 셈이다.

또한 눈길을 끄는 것은 전남 군곡리 패총이나 경남 늑도식 토기 등 외래계 토기가 비교적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인데 이는 당시 활발한 대외교류상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물이다.

이외에도 호박제 옥 1점과 대팻날, 철도자, 골각기, 다량의 동물뼈와 각종 패각류가 수습됐다. 화천을 비롯한 각종 유물의 출토양상으로 볼 때 종달리 패총 유적의 중심시기는 기원전 2세기 쯤에서 기원후 2세기 쯤에 해당되는 것으로 판단되나 유물의 분석 비교검토 결과 향후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종달리 패총유적 조사 결과 4m×4m 피트의 맨 하단부에서 두께 60㎝ 정도의 유기물층(有機物層)이 확인되었다.

자연유물층이 발견된 것이다. 진흙색 맨 밑바닥에서는 대형 자연 목재가 깔려 있으며, 도토리열매와 나뭇잎, 갈대 등 초본류와 곤충 날개 등이 확인되었다. 또 나무의 경우에는 껍질이 잔존된 상태이며 말뚝시설과 같은 인위적인 시설물 흔적도 일부 확인됐다.

유기물층 하부 목재집적층의 유적 형성시기는 청동기시대까지 소급될 가능성이 많다고 발굴조사단은 밝혔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기원전에는 이 유적을 중심으로 하도리 철새도래지와 지미봉 남쪽으로 해안이 형성돼 바닷물이 들어와 해안선이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기물층 확인은 도내 발굴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광주 신창동 저습지 유적이 알려지고 있다.(한라일보 2002년 2월 5, 6, 8일, 8월 28일, 9월 11일, 제주일보 2002년 2월 6일)
《작성 041108, 보완 1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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